10분 일기: 풍경은 보이는 게 아니라 보는 것
서호 미술관에 갔다. 남양주에 있는 작은 미술관이다. 매번 작가가 바뀌며 전시를 하는 곳이다. 그곳의 경치가 일품이었다. 그곳에는 앞마당이 있었는데, 앞마당으로 들어서면 멀리 북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풍경이 보였다. 마당을 넘어서 강 근처로 가까이 갈수록 무성한 잡초와 어여쁜 꽃들이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중에는 죽은 고목나무들과 담쟁이 덩굴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니 마치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는 듯했다. 삶과 죽음의 공존. 이전의 나 같으면 새싹이 가득한 나뭇가지의 끝트머리와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보느라 고개를 들고 다녔을 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자꾸만 죽은 고목나무들에게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죽어있는 나무에 담쟁이가 타고 올라 작은 싹을 틔우고 있는 걸 보고서는 '저 나무는 산 것일까 죽은 것일까'라는 고민을 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대리로 삶을 영위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작은 새싹들이 살 수 있게 기둥이 되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찌 보면 둘 다 의미가 있다.
풍경은 객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주관적이다. 같은 풍경이라도 내가 보는 느낌은 타인과 무척 다를 것이다. 같은 곳에서 누군가는 생명만을, 누군가는 죽음만을, 누군가는 공생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편견을 주지 않는다. 편견과 시각은 우리 자신의 눈에 담겨 있을 뿐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환경일 뿐이다. 일어나는 사건도 사건일 뿐이다. 그곳에 감정을 대입시키거나 해석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환경도, 사건의 탓도 아니며, 이유도 없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풍경 앞에서 때로는 빛을 때로는 그림자를 본다. 그것을 보고 희망을 느낄지, 슬픔을 느낄지는 우리의 마음이 결정한다.
한 걸음 떨어져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을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감정은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풍경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이미 보는 것을 찾아낼 뿐이니까.
2019년 04월 28일 남양주
[제목: 풍경은 보이는 게 아니라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