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너는 사장이 아니잖아

사장 같은 직원이 있을 리가 만무하잖아요

by 박햇살

20대 초반의 나는 강박적으로 규칙을 지켜야만 하는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혹시 실수할까 봐, 실수로 인해 여기저기 피해를 끼칠까 봐, 애초에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게 나에게는 꽤나 큰 스트레스였던 모양.


무튼 처음으로 카페의 '직원'으로 고용됐던 곳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이었다. 새로 여는 가게의 오픈 멤버로 들어가게 됐는데, 그때가 22살이었으니깐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면서 다 큰 줄 아는 미성숙한... 그런 시절이었던. 그러니깐 쓸데없이 몰입도가 강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나는 이 가게의 오픈 멤버로서 이 가게를 크게 키워내고야 말겠다는 쓸데없는 그런 몰입말이다.


아침마다 에스프레소의 맛을 잡느라 빈 속에 몇 샷을 때려 넣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가게를 쓸고 닦고, 주말마다 맛집 카페(커뮤니티)에 홍보글을 올려가는 등 참으로 열심이었다. 이상한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던 나는 내가 사장님의 딸인냥 열심이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런 가르침으로 잘 자란 나) 다만, 그런 곳에서 나와 상성이 맞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사장님의 동생인 점장(님)이었다. 원리원칙대로인 나와는 달리, 좋은 말로는 유들유들하게 그렇지만 나쁜 말로는 제멋대로인 사람. 무려 나와는 2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엄마뻘인 사람. 손님들이 싫어하는 농담 따먹기까지 즐겁게 해 버리는 사람.


여튼 나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6개월만 근무하기로 했었는데,(6개월 후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처음 적응기를 마친 1개월을 제외하고는 엄청나게 신경전을 펼쳤던 것 같다. 싸웠다는 표현은 애매한 게 그냥 나만 답답했던 것 같다. 다른 직원 두 명도 나와 같은 답답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보다는 성격이 다들 부드럽고 좋았던 탓인지 나만큼 큰 트러블이 일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6개월, 여러 사건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격한 에피소드들은 희미해지고 내 독불장군 같은 모습만이 잔상으로 남아있는 시절.


하지만, 이때가 사회생활의 시작이었을까. 왜 항상 열심인 걸까. 왜 에너지 조절을 하지 못해서 기어이 탈이 나고 마는 걸까. 사람에게 주어진 몰입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20대에서 30대를 건너오며 다 써버린 건 아닐까.


일용직 근로자로 하루하루 일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돌이켜보니, (이 에피소드는 9월.. 마지막 급여를 받으면 쓰게 되리라) 사장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을 뽑고 싶다는 그런 욕심은 좀 아니지 않냐고 묻고 싶은 거다. 우리네 피고용인들은 수고나 마음가짐은 사장이여하지만 권리나 역할은 사장이 아니잖아요. 근데, 사장이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직원은 어쩝니까..? 아니면 사장이 능력이 없으면 직원은 어떻게 합니까..? 배울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그냥 사장만큼만 하면 되는 거 맞죠..?


몰입의 열정이 남달랐던, 점장님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싸우며 얼굴을 붉히는 사장 같은 22살의 열정적이었던 '직원'은 이제 없다. 30대 중반, 사장(님)의 수준을 파악하고 그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려 마음먹은 '직원'만 남아있을 뿐. 그래도 상황에 몰입하는 것은 여전한지 아침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 큰 통유리창을 열심히 닦아댔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하던 직원은 티가 나지 않는걸요.


열심히 하지 마. 아니 열심히 해. 아니 열심히 하지 마. 열심히 하지 않는 거 어떻게 하는 건데..?

오늘도 열심히 해버렸다. 마지막 근무날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지만 너는 사장이 아니잖아..

'적당히' 열심히 하는 나를 그리며, 다시 탈출!

수미쌤의 말을 잘 받들어 다시금 다른 직장을 또 찾아보겠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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