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그날을
“공치는 날”이라고 불렀다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
그 말이 떨어지면
집 안은 묘하게 조용해졌다
빗줄기는 낮은 담장을 타고 흘러
마당의 흙을 천천히 풀어놓고 있었다
어머니의 호미 끝에 매달려 나오던 냉이 뿌리
그 흙내 나는 삶이
비를 타고 집 안까지 스며들던 날
무쇠 솥뚜껑 위에서
기름진 소리로 타오르던 빈대떡
그 뜨겁고 노란 허기를 나누어 먹으며
우리는
젖은 가난조차 고소하다고
믿으며 견뎠다
비는
단지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 아니었다
사립문 너머
끝내 오지 않던 누군가에 대한 기다림이
빗결 사이에 섞여 있었다
모내기를 멈춘 농부들의 노랫가락이
흙탕물처럼 번져
마당을 맴돌던 오후
나는 그때는 몰랐다
비 오는 날의 멈춤이
뒷걸음질이 아니라
다음 계절을 위한
숨이었다는 것을
마당 한편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서 있던 아이의 발등 위로
이제야
젖은 그리움이
파란 싹처럼
조용히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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