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에 화장장에서 밥을 먹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 부평 화장장에서 마주한 생의 지독한 물리적 실체에 관하여

by 선비천사

그날, 나는 처음으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부평 화장장의 공기는 매캐하고 묵직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별의 예법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라, 이별의 물리적 충격에 무뎌지기를 기다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간 숱하게 드나들었던 병원 중환자실의 기계적인 신호음이나, 면회실의 차가운 유리가 주는 차단된 슬픔은 차라리 서정적이었다. 하지만 부평 화장장의 그 매캐하고 묵직한 공기는 서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죽음은 관념이 아니라 소음이고, 철학이 아니라 타오르는 열기이며, 무엇보다 거부할 수 없는 비릿한 허기였다.


새벽의 부평 화장장은 고요한 안식의 처소가 아니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주차장은 밀려드는 운구차와 유족들의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공기 중에는 미처 타지 못한 누군가의 생(生)이 그을음 섞인 냄새로 부유한다. 한 시간 남짓한 대기 시간 동안, 우리는 번호표를 받아 든 순례자처럼 무력하게 차례를 기다린다. 사회 교과서 속에서 평생 가르치던 '인간의 존엄'이나 '역사의 도도한 흐름' 같은 거창한 문장들은 이 거대한 연소의 공정 앞에서 힘없이 바스러진다. 여기서 인간은 그저 연소되어야 할 유기물, 혹은 처리되어야 할 물성(物性)에 불과하다는 서늘한 자각이 뒷덜미를 친다.


관이 화로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 화장장은 비로소 인간의 공간이 된다. "뜨겁다, 빨리 나오라"는 유족들의 외침은 정제된 슬픔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본능적인 공포, 즉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비명이다. 마치 사금파리 조각이 목구멍을 긁고 나오는 것 같은 그 외마디 소리는 화장장의 시멘트 벽을 타고 흘러내려 내 가슴속에 단단한 혹처럼 매달린다. 죽은 이는 제 몸을 연료 삼아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데, 산 이들은 그 불길의 잔상에 데어 발을 동동 구른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연민이 고작 '뜨거움에 대한 걱정'이라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처절하다.


화장이 진행되는 두 시간, 역설은 2층 식당에서 정점을 찍는다. 아래층 화로실에서는 영혼이 증발하는 곡소리가 천장을 때리는데, 2층 식당의 공기는 육개장 김과 소주 냄새로 자욱하다. 이 지독한 이분법적 공간에서 상주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손님들에게 밥을 권한다. 비명이 벽을 타고 올라오는 와중에도 인간은 입을 벌려 밥을 씹고 국물을 삼킨다. 혀끝에 닿는 고기 한 점의 질감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주의 알싸함.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작동하는 이 생존의 비릿한 생동감은 지독하리만치 정직해서 차라리 치욕스럽다. 밥 한 술의 무게가 누군가의 일생이 타오르는 무게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는 이 지독한 일상성이야말로 장례가 감추고 있는 가장 잔인한 진실이다. 우리는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죽음이 남긴 공동(空洞)을 다시 식욕으로 채우며 비루한 삶을 연장해 나간다.


화장이 끝나면 고인은 한 줌의 뼈로 돌아온다. 거친 뼈 조각들이 분쇄기 속으로 들어가 무심한 기계음에 의해 가루가 되는 과정은 짧고 명료하다. 한 인간이 가졌던 고집과 취향, 그가 밤새워 썼던 시와 소설, 그가 목숨처럼 사랑했던 이들의 이름이 모두 무채색의 가루로 평준화된다. 분쇄된 가루가 유족이 준비한 유골함에 담길 때, 나는 비로소 그 함의 온기에 소스라친다.


유골함은 한참 동안 따뜻하다. 방금 전까지 화로 속을 달구었던 천도의 열기가 질그릇을 뚫고 내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그 온기는 "부디 평안하라"는 사치스러운 축원이 아니라, "나는 방금 전까지 이곳에 존재했다"는 존재의 마지막 항변이다. 품에 안긴 유골함의 무게는 가볍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물리적 온도는 그 어떤 철학적 수사보다 묵직하게 심장을 누른다. 죽음은 먼 곳에 있는 신비나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지금 내 손바닥을 데우고 있는 이 구체적이고도 도망갈 곳 없는 열기였다.


화장장을 나서는 길, 가슴에 매달린 혹 같은 통증은 여전하다. 그것은 죽음을 목도했다는 훈장이 아니라, 나 역시 언젠가 저 뜨거운 함 속의 온기가 되어 누군가의 손바닥을 데울 것이라는 명확한 예감이다. 죽음은 영원한 안식도, 거창한 귀결도 아니다. 그것은 유골함의 온기만큼이나 물리적인 실체이며, 곡소리 뒤에서 꾸역꾸역 삼켜야 했던 밥 한 술의 무게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생의 연장일 뿐이다.


나는 이제 안다. 남겨진 자의 슬픔은 유골함이 식어가는 속도만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상의 비릿함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부평 화장장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는 그 서늘한 잔열을 가만히 쥐어본다. 그것은 내가 오늘 삼킨 밥의 무게이자, 내일 또다시 견뎌야 할 생의 비릿한 증거다. 삶은 그렇게 죽음의 온기를 빌려 제 갈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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