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첫 만남
선호는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역시…” “네, 제가 뒀어요.”
해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듯.
선호는 할 말을 잃었다.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준 거라고. 하지만 직접 들으니 다르게 느껴졌다. 진짜로. 이 사람이. 나한테.
“왜…”
겨우 한 마디가 나왔다.
“왜 그런 걸…”
해주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창밖을 봤다가 다시 선호를 봤다.
“힐끔거리는 눈빛, 알고 있었어요.”
선호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들켰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죄, 죄송합니다. 이상하게 느끼셨죠. 저도 왜 그랬는지…” “이상하지 않았어요.”
해주가 말을 끊었다.
“오히려…”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요?”
선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주가 미소 지었다. 작지만 확실한 미소.
“힘이 됐어요.” “네?” “저도 힘든 시기였거든요. 임용고사 준비하면서. 매일 불안하고 지치고.”
해주가 커피잔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런데 누군가 저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이상한 시선이 아니라… 그냥… 따뜻한 시선?”
선호는 숨을 멈췄다.
“처음엔 신경 쓰였어요. 왜 저러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묵묵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까…”
해주가 선호를 바라봤다.
“응원하고 싶어 졌어요.” “…” “말 걸 용기는 없었어요. 그래서 캔커피를 뒀어요. 자리 비운 틈에 몰래.”
선호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울면 안 돼. 지금 울면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감사합니다.”
겨우 그 말만 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해주가 고개를 저었다.
“저야말로요. 선호 씨 덕분에 저도 버틸 수 있었어요.” “저요?” “누군가 있다는 걸 알면, 버틸 수 있잖아요.”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누군가 있다는 걸 알면. 버틸 수 있다. 선호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서.
* * *
“한 달 동안…”
선호가 말했다.
“안 오셔서… 걱정했습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셨어요.”
해주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병원에 계세요. 간호하느라 도서관에 못 나왔어요.” “아…” “이제 좀 안정되셔서 나올 수 있게 됐어요.”
해주가 다시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 그림자가 있었다. 선호는 그 그림자를 봤다. 힘들었구나. 이 사람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구나.
“힘드셨겠어요.”
선호가 말했다. 해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나온 거예요.” “네?” “도서관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해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귀가 빨개지는 게 보였다.
“선호 씨도요.”
선호의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나도? 나도 보고 싶었다고?
“저도요.”
선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상관없었다.
“저도 해주 씨 보고 싶었어요. 매일요. 한 달 내내요.”
해주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둘 다 동시에 웃었다.
“우리 좀 이상하죠?”
해주가 말했다.
“말 한마디 안 하고 캔커피로 마음 전하고, 힐끔거리면서 서로 의지하고.” “이상해요.”
선호가 인정했다.
“근데 좋아요.”
해주가 웃었다. 환하게. 선호는 그 웃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예쁘다. 진짜 예쁘다.
*12화 이어서 보기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