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커피 한잔의 온도[24화]

24화. 슬럼프

by 선비천사

24화. 슬럼프


시험 D-45. 선호에게 슬럼프가 왔다.

아침에 눈을 떠도 일어나기가 싫었다. 온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도서관에 가도 집중이 안 됐다. 같은 문장을 열 번을 읽어도 머리에 남지 않았다. 눈은 글자를 훑는데, 뇌는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왜 이러지.'

선호는 자책했다.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점심시간.

“선호 씨, 밥 안 먹어요?”

해주가 물었다. 선호 앞에는 손도 안 댄 김밥이 놓여 있었다.

“아, 네… 입맛이 없어서.” “어디 아파요?”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해주도 그걸 알았다. 선호의 눈 밑에 짙게 내려앉은 그림자,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 펜을 돌리는 횟수가 평소의 세 배라는 것.

“선호 씨.” “네.” “힘들어요?”

선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고개만 숙였다.

“저도 그래요.”

해주가 말했다.

“요즘 너무 힘들어요. 공부도 안 되고, 아버지 걱정되고, 잠도 안 오고.” “……” “그래서 선호 씨한테 말하는 거예요. 혼자 끙끙대면 더 힘들잖아요.”

선호가 고개를 들었다.

“해주 씨도 힘들어요?” “당연하죠. 저도 사람인데.”

해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맨날 웃고 다니니까 괜찮은 줄 알죠? 아니에요. 저도 매일 울어요. 고시원에서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선호는 가슴이 아팠다.

“몰랐어요.” “알 리가 없죠. 제가 안 보여줬으니까.”

해주가 선호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우리 같이 힘들어요. 같이.” “……네.” “혼자 힘들면 두 배로 힘든데, 같이 힘들면 반으로 나눌 수 있어요.”

선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부끄러웠다. 서른 먹은 남자가 여자 앞에서 울다니.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해주가 선호의 손을 꽉 쥐었다.

“괜찮아요. 울어도 돼요.”

그 말에 선호는 더 울었다. 오랜만이었다. 누군가 앞에서 우는 게.



*25화 이어서 보기

캔커피 한 잔의 온도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

작가 방철호의 블로그 방문하기

[전자책]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

매거진의 이전글캔커피 한 잔의 온도[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