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뒷문에서
커터칼이 내 등을 가르고 지나갔다.
나는 한순간에 납작해졌다.
비타민 병들을 쏟아낸 뒤,
나는 더 이상 박스가 아니라
길바닥에 붙은 종이 한 장이 되었다.
약국 앞 전봇대 옆은
버려진 것들의 수용소였다.
담배꽁초와 침방울,
어젯밤 누군가 게워낸 냄새가
내 모서리에 스며들었다.
나는 바람이 불 때마다
비명 대신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한 노파가 나타났다.
허리는 정확히
시옷(ㅅ) 자 모양으로 꺾여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오로지 바닥에만 닿아 있었다.
“이놈 봐라. 빳빳하네.”
그녀의 손은
내 표면보다 더 거칠었다.
나는 다른 폐지들과 함께
손수레 위에 던져졌다.
수레는 덜컹거리며
도로를 향해 나아갔다.
할머니는 앞을 보지 않았다.
발끝의 감각과
소리만으로 길을 읽으며
8차선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수레바퀴 하나가
움푹 팬 아스팔트에 걸렸다.
“낑, 낑.”
수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빵! 빵!”
뒤에서 버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때
구두 한 켤레가
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청년은 말이 없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수레를 밀었다.
한 손으로는 수레를,
다른 손으로는
차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수레가 움직였다.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함께
도로를 건넜다.
굽은 등 하나와
그보다 더 깊게 숙인 등 하나.
두 개의 시옷이
겹쳐진 채
길을 건너고 있었다.
골목에 들어서자
청년은
조용히 사라졌다.
“오늘따라
수레가 혼자 가네.”
고물상에 도착했다.
“3,200원입니다.”
할머니는 웃었다.
그 돈으로
삼각김밥과 소시지를 샀다.
나는
그 순간
비로소 쓸모가 생겼다.
압착기 앞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뒤를 보았다.
빈 수레를 끄는
할머니의 등이
조금 가벼워 보였다.
지갑 속에는
영수증 하나가
시옷처럼 접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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