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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Sep 25. 2021

3. 화

화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인간 문명이 발달해 많이 진화했는데도 여전히 화는 진화하지 못했다. 특히 요즘 미디어를 보면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마저도  때가 있다.


나는 화라는 문제에 대해 참으로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화는 나를 대변하는 감정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고 학대를 일삼아 친엄마가 도망가고 아빠에게 새엄마와 학대를 당하며 살았다.  어린 시절 가정환경은 내가 화로 가득 차기에 충분하다고 친구, 친척들, 나조차도 타당하다 여겼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미친 듯이 분노하며  많이도 싸웠다. 몸싸움은 고등학교, 20살 때까지도 지연되었고 친구들은 자신들을 위해 나서서 싸워주는 나를 고마워하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며 좋아했다. 이렇게  화는 많은 사람에게 두둔받았고 내가 화를 내며 처리하는 과정을 친척들이나 친구들은 영웅담을 나누듯 재밌어했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고 강한 내가 좋았다. 결혼해서 남편도 그런 강한 성격이  매력이라고 했으니 화는 내게 무기였다. 내가 화를 내는 것에는 정당한 이유들이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과 끊임없이 싸우고 상처를 내고 상처를 받으니 삶이 힘겨워졌다. 화를 내고 난 후에는 늘 수치심과 자책감이 따라왔다. 소중한 자식에게 화내는 내 모습을 바라볼 때면 괴물처럼 여겨져 싫었고 상처 받아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책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때뿐,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화의 근원이 사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탄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시 무시한 괴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나 평범해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얼굴로 우리를 염려하듯, 우리를 위하듯 곁에 머물다가 우리를 지배한다. 사탄이 제일 손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화였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염려가 생길 때,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는 순간 사탄이 놓치지 않고 그 틈으로 우리 마음에 쑥 들어온다. 내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사탄이 들어왔다는 증거이다. 교묘하고 은밀한 사탄은 상대에 대한 분노가 타당한 것이라고 내게 속삭인다. “상대가 틀렸고 네가 맞아. 네가 화낼 수 있는 상황이야. 화를 내야만 해.”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은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사탄이 궁극적으로 노린 것이었다.

우리는 이성을 잃고 상대에게 화를 내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에게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폭력은 물리적이  수도 언어가  수도 있다. 언어폭력도 물리적인 폭력만큼 잔인한 것이 언어에도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상대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말 한마디로 상대를 죽일 수도 있다. 그래서 관계에 불화가 생긴다. 사탄이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마저 화를 부추긴다.  2병이 정당하고 호르몬 때문에 임산부, 갱년기의 화는 정당하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게 정당하고 다만 화내는 방법에 주의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화를 느낄 , 먼저 사탄이  마음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바라보며 상대와 불화로 이어질 마음 상태를 정리부터 해야 한다. 내가 옳다고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상황과 상대를 이용해 사탄이 원하는 게 뭔지. 그리고 사랑과 화합을 목적으로 상대와 대화해야만 한다.

또, 성경에서도 거룩한 분노를 하라고 말한다. 사탄이 마음을 사로잡아 내는 분노가 아니라 정당하게 분노해야  , 분노를 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거꾸로 가르치고 있다. 화내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 화를 내라고 말하고, 방법을 알려준다. 정작 화를 내야 할 때는 웬만하면 타협하면서 살아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세상의 법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질 수 밖에야….

화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당당하게 화를 표현하라고 이 세상이 부추기는데 어떻게 화를 잘 조절하며 살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분노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더 대단하다.


성경에는 끊임없이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내밀기까지 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사탄에게 휘둘리지 말고 선으로 악을 무찌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사탄을 상대해 분노하며 응징하는 것이 사탄이 원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분노와 갈등은 사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복수는 사탄의 메시지다. 눈에는 , 이에는 , 이것이 정의라고 가르치는 세상의 모든 메시지는 사탄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미 죄성 많은 인간이 화를 내고 살지 않기는 참으로 어렵기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마음대로 분노하지 말라는 소리 같아 하나님을 거부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대로 분노하는 것이 정당하고 그것을 하나님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화를 내는 나를 정정당당하다고 말해주길, 그러면 마음 편히 주님을 믿을  있다고 여긴다면 이미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서 복수해버려 없애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의 결정체여야만 하고 우리의 더러운 모든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매일 저지르는 더러운 죄들을 거듭거듭 용서해주신다. 복수가 아닌 사랑으로. 이것은 분명히 힘들다. 정말로 하나님만이 완전한 사랑을   있다. 그래서 복수로 똘똘 뭉친 나가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통치할 때만이 원수를 사랑할  있기 때문이다. 죄성 많은 내가 주인 되어 용서 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한 번은 겨우 참았다고 해도 지속하기 힘들다. 그래서 두렵고 불안하고 염려되는 상황에서 분노하기 , 예수님을  붙잡아야 한다. 사탄이 나를 이용해 무섭게 상대를 공격하고 내가 죄를 짓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내가 정작 미워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이어야 한다. 사람을 이용하고 죽이고 버리는 “사탄에게 분노해야 한다. 그것이 거룩한 분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사랑으로 사탄에게서 구출해야만 다. 분노하는 상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을 사랑하라는, 사랑은 나를 주라는 주님의 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주님을 왕으로 알고 주님의 법을 제대로 준수하며 사는 것이 주님이 만든 천국이다. 화내는 상대주님이 사랑하시도록 한다면 사탄으로부터 상대를 구출할  있다. 사람을 이용한 사탄의 농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상대의 나쁜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함께 공격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악마는 키득거리며 즐긴다. 모든 불화는 악마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에게 하는 거룩한 분노만이 나와 상대를 지키는 제대로  분노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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