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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Dec 14. 2021

14. 최선을 다하고 착하게 살아도 여전히 죄인인 이유

예전에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을 읽었을 때,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왜 아벨의 제사를 받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아 가인을 서운하고 노엽게 해 동생 아벨을 죽이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나는 그 살인에 하나님도 조금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가인을 이해했었다.


하지만 창세기 3장 만을 두 달 공부하고 나서 읽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달랐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은혜 안에 풍족하게 살던 아담과 이브가 소위 부족한 게 없게 되자 자신의 연약함을 몰라 죄에 넘어지게 되었다. 그 후, 마음에 죄성이 들어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둘은 자기 자식인 가인과 아벨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가르쳤을 것이다. 죄를 지었기에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때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다는 것, 그것은 그들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썩어지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는 게 아니라 죄 없는 동물이 희생이 되어서 가죽옷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리어진 것처럼. 반드시 피 흘림, 죽음이 있어야 죄 사함이 있게 된 것이다. 피 흘리지 않고는 어떤 죄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지시를 받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밭에 소산물을 거두어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지냈다.

자, 그럼 한눈에 봐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실 제사는 명백하다.

우리가 직장을 잡을 때도 그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식대로 지원하듯,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도 양식이 있다. 그것은 피 흘림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흠 없는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도 여전히 종교생활과 말씀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명백하게 이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가인도 땅의 소산물로 정성 들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얼마나 정성 들여 지냈는지 제사를 받지 않은 하나님께 분하여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기에 이른다.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면 자기가 양심에 찔리는 바가 있기에 아벨을 쳐 죽이기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인은 자신의 한계보다 더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고 하나님이 받지 않자 분노해 살인까지 저지르고 만다. 하나님이 제시하는 양식을 자신의 부모인 아담과 이브에게서 듣고 자랐으면서도 자기의 임의대로 땅의 소산물로 제사를 드린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결코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 자기가 주인 되어 판단하고 하나님의 양식을 무시하는 교만함이다.

이 모습은 예수님을 죽인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그들만큼 하나님을 율법적으로 믿고 열심히 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율법을 지키며 많은 규율들을 만들며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 앞에서 수많은 기적을 보이고 말씀으로 알려주어도 자신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예수님을 죽이고야 말았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하나님을 정성 들여 섬기고 순종하는 것은 좋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지가 우선순위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죄를 위해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가르쳤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양식이다. 우리 죄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고서는 아무리 교회 출석을 열심히 해도, 봉사를 하고 이웃을 돕고 자기의 시간과 정성을 할애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일 뿐이며 정성을 다해 땅의 소산물로 제사를 지내는 가인과 같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해 교회에 봉사하고 이웃에 봉사해도 그는 결국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죄인일 뿐인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자기의 생각대로 가장 착하게, 자기를 헌신하며 산 사람이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것에 분노가 심하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질투한다. 그런 자기가 가장 옳다고 여기는 교만함도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오히려 종교의 틀에 열심히 거나 그저 착한 사람이 그래서 더 무서울 수가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것.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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