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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May 03. 2022

33. 모든 것이 주님 허락과 통제 안에서만이 이루어진


마태복음 26장에서 27장을 묵상하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끌려가실 때의 사람들의 유형을 보자. 죄인을 잡아가듯 무기를 들고 온 로마인들은 높은 이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해 잡으려는 자들에게 넘기고 제자들은 도망간다. 그리고 예수님은 차분하게 “천사를 부를 수 없을 줄 아느냐? 그렇지만 그러면 구약에 말씀을 이루겠느냐?”라고 칼을 꺼내 로마 군사의 귀를 자른 베드로를 나무라신다. 오늘날의 인간들의 모습의 유형들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윗사람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자기 일만 충실한 자, 배신하는 자, 도망가는 자, 그리고 자기의 능력을 쓰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예수님.

그 후, 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에게 끌려간 예수님 앞에 계속 거짓된 증인들이 서고 마침내 두 증인이 서서 성전을 허물어 사흘 만에 짓는다고 해 그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예수님을 때리고 얼굴에 침까지 뱉는다.

그 후, 총독 빌라도에게 데려간다. 빌라도는 죄가 없고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으로 예수님이 끌려온 걸 알지만 사람들을 선동하는데 이용한다. 예수님이 의인이라는 아내의 꿈과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자기 양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죄가 없으니 풀어주겠다고 단호히 명령하지 않는다. 바라바라는 죄수와 둘 중에서 누구를 풀어줄까? 하는 질문으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들을 따르는 무리를 한 목소리로 예수를 십자가에 박으라고 소리치는 선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는 그 죄와 상관이 없다며 손을 씻으며 책임을 회피하고 유대인에게 전가한 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준다. 그리고 예수님은 로마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 면류관이 박히고 희롱과 조롱을 심하게 당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에 박히기까지 예수님과 사람들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도망간 제자들, 예수님을 핍박하고 조롱하고 죽이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모습.


앞선 많은 사건들을 통해 예수님은 병자도 고치고 귀신도 몰아내시고 폭풍우도 잠재우시는 능력이 있는 줄을 우리는 안다. 말씀대로 천사들을 불러와 자신을 헤하는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 모든 능력으로 그 모든 사람들을 쉽게 죽여버릴 수도 있지만 주님은 결코 그렇게 능력을 쓰시지 않는다. 담담히 그 모든 고난을 겪으시면서도 때론 침묵하시고 꼭 필요한 말만 하시며 구약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이뤄가신다.

솔직히 내가 예수님이라면 이미 내 능력을 써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밝히고 죄를 물어 죽일 것 같다. 어디서 감히! 본떼를 보여줄 것만 같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시고 절대자인 그분께 온전히 순종하신다.



내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빌라도가 아니라 성난 군중, 로마 군인들이 아니라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이었고 계획이었다.

거기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자율의지로 예수님을 죽이는데 참여했고 그랬기에 그 죄는 반드시 책임을 물게 될 것이다. 이 말은 곧 주님은 절대자이지만 절대로 독재적이거나 조정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존중하셔서 우리를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키신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해 우리 인간을 만드셔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것이었다. 주님이 제대로 누구인지 안다면 그 영광에 기꺼이 참여하는 자가 되고, 자신의 자율의지로 직접  5,10 달란트를 받아 성실히 일해 2배로 남긴 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님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 주님을 알지 못하는 종은 1 달란트를 받아도 묻어두고 주님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욕심쟁이 하나님, 이기적이고 벌주는 하나님으로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고 무익한 종을 내쫓으며 바깥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신다.


내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생각해봤다. 화가 나는 일, 억울한 일, 무시당하는 일. 참 많은 인생의 문제들이 일어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방법이나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 문제들을 내 힘으로 대처하곤 했다. 내 힘으로 안되면 한동안 속상해하며 억울하다고 여기저기 욕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내가 착각한 것은 남들의 잘못, 잘못된 상황으로 인해 내가 고난을 겪게 된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남을 원망하고 상황을 원망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상황이 주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내가 대처하던 태도가 결국 또 내가 주인이 되어 사납고 칼을 든 베드로처럼 급하게 상대를 찌르기도 했다는 것. 하나님이 계획이 있으셔서 허락하신 일을 내 주관으로 그르치고 똑같이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내가 대처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도 그것을 참는 것이 온유이다. 그렇게 침착한 태도로 침묵할 때와 정확하게 말해야 할 때를 알아 대처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어떠한 억울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 일어나도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 그것을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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