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만성

by Momanf

수경은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생각과 나름의 계획을 세우다 팝업창에 뜨는 쇼핑 문자 알림에 곧 휴대폰을 확인했다.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신발과 가방이 있는 브랜드의 세일 알람 문자였다. 수경은 오랫동안 갖고 싶어 했던 가방을 검색해 이미지를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갖고 싶어 했던 가방이었다.

수경의 또래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있다. 그것은 결혼할 때나 출산했을 때, 남편이 아내에게 명품백을 사주는 것이다. 특히 출산 후, 남편들은 힘든 임신 과정을 견디고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해줘서 고생했다는 의미로, 고맙다는 의미로 명품백을 선물한다. 수경의 친구들은 대부분 남편에게 명품 백을 선물 받았고 그것은 출산을 한 여자들에게는 훈장과도 같았다. 평소에 꿈도 못 꾸던 사람들도 출산 때만큼은 다들 무리하기에 수경도 출산 전부터 들떠 있었다. 수경은 오랜 고민 끝에 이 가방을 선택했고 자신의 고생을 남편이 꼭 보상해 주리라는 기대가 컸었다. 그래서 출산 후, 남편에게 가방을 보여주며 갖고 싶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Ryan은 수경의 말에 당황하며 그 금액이면 중고차 한 대나 자신의 임플란트 비용과도 맞먹는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수경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Ryan에게 서운함 마음이 들었다. 그 서운함은 자신이 얼마나 고생해서 아이들을 갖고 임신해 출산했는지 Ryan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Ryan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Ryan은 서운해하는 아내의 마음을 눈치채고 동영상과 꽃다발을 준비해 그녀에게 출산에 대해 감사했지만 이미 Ryan에게 화가 난 수경은 그저 돈 아끼려고 하는 수작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수경은 남편이 쌍둥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자신의 수고를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 명품 백은 Ryan이 가족들에 대한 헌신을 하는 수경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이는 상징이 되고야 말았다. 그 상징은 Ryan이 수경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하지만 Ryan은 돈은 만일을 위해 대비해둬야 하는 안전장치였다. 그렇기에 명품 백에 돈을 쓴다는 건 그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경도 그의 생각이 합당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친구들이 자랑처럼 매고 다니는 명품 백이 너무 부러워 가슴으로는 화가 났다. 특히 같은 시기에 아기를 함께 낳은 조리원 동기들 모두 남편들에게 받은 명품 백을 자랑할 때에는 혼자 못 받은 자신이 초라했다.

“우리 남편은 외국인이잖아. 명품 백은 사치이고 애 낳았다고 그런 걸 사주는 우리나라 문화를 이해 못 해. 애들 좀 키워놓고 유럽여행이나 가재.”

수경은 일부러 ‘그런 걸 이해 못 해’에 강세를 주면서 그녀의 자격지심을 숨겼다. 친구들을 속물근성과 돈에 개념이 없는 사람으로 깎아내리고 우리나라 문화가 미국 문화보다 의식이 낮다고 비하하는 말투는 그녀의 초라함을 숨기기에 좋았다. 그것은 수경의 진심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 감정은 반복되었고 명품 백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가는 동시에 Ryan에게 대한 분노도 깊어졌다.

‘나의 고생을 몰라주는 사람, 한국인인 내 문화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 친구들 앞에서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 명품 백을 사주지 않는 Ryan에게 그렇게 극단적인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그 불만에 눈이 먼 수경은 더 이상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Ryan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돈 번다는 핑계로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해방돼 홀로 휴식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수경은 Ryan을 미워했고 이제 이 명품백만이 수경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답이 되어버렸다. 명품 백은 두 사람의 가치관과 문화의 충돌이 되었고 각자의 신념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은 이 문제로 몇 번을 크게 싸웠고 더 이상 깊은 대화를 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엄마!”

갑자기 잠들어 있던 준이가 소리를 질렀다. 나쁜 꿈을 꿨는지 아이의 목소리는 찢어지듯 날카로웠고 수경은 준이의 등을 토닥이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준이는 새벽에 잠을 설쳐서인지 기분이 좋지 않아 칭얼거렸다. 수경도 3시간밖에 잠을 못 잤기에 피곤함을 느꼈다. 물에 젖은 스펀지 마냥 몸이 무거운 것에 더해 간밤에 봤던 명품 가방과 Ryan과의 갈등도 떠올라 준이의 칭얼거림에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수경은 문득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웠다. 죽음을 앞둔 자가 아직도 그 명품백을 가지고 싶어 하고 칭얼대는 자식에게 짜증을 느끼고 있다.

‘남겨질 남편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으로 명품 가방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워 그 어떤 칭얼거림도 다 받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왜 죽는다는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화내고 짜증내고 있을까? 조리원 친구가 또 다른 명품을 샀다고 자랑하는 게 왜 이리 얄미울까?’

수경은 그런 생각을 하며 평소처럼 일어나 아이들 세수를 돕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아이들을 주방으로 데리고 나와 시리얼과 우유를 준비해 주었다. 준이 시리얼 볼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만하고 숟가락으로 먹어. 준이.”

하지만 아이의 장난은 계속됐고 주의를 주는 수경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준이는 주의를 줄 때만 장난을 멈추었다가 수경이 보지 않으면 시리얼 볼에 다시 손을 넣고 먹었다. 그 모습을 본 보리도 키득대며 준이를 따라 했고 테이블과 바닥은 떨어뜨린 우유와 시리얼로 금세 지저분해졌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그 모습을 본 수경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만해. 먹지 마 더 이상 먹지 마. 엄마가 몇 번을 말했어? 그만하라고.”

수경은 아이들의 시리얼 볼을 훽 뺏어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보리가 수경의 큰 목소리에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다. 준이도 소리 지르며 울었다.

“시리얼 줘. 시리얼”

“먹지 마. 먹는 것으로 장난칠 거면 먹지 말라고. 이것 봐. 테이블이고 바닥이고 늘 이렇게 더럽잖아. 엄마가 몇 번을 말했어? 먹을 때, 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앉아서 먹는데 집중하라고.”

수경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목이 아플 만큼 고함을 치고 있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수경을 더 자극시켰다.

“시끄러워 뭘 잘했다고 울어? 조용하지 못해? 입 다물어. 안 다물면 진짜 아무것도 안 줄 거야. 조용해지면 다시 시리얼 그릇 줄테니까 울음 그쳐.”

아이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질렀고 아이들은 엄마가 화를 내자 울음을 꾹꾹 참았다. 그 모습에 수경은 곧 시리얼 볼을 아이들 앞에 놓았고 아이들은 눈물을 닦으며 숟가락을 들고 시리얼을 떠먹기 시작했다. 수경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게 엄마가 우리가 먹는 소중한 음식에 손 넣고 장난치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숟가락으로 똑바로 앉아 먹는 거예요. 음식으로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보리, 준이 알았어 몰랐어?”

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준이는 엄마의 시선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준이. 엄마가 뭐라고 물었어? 먹을 때, 장난칠 거야 안칠 거야?”

준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수경은 준이의 얼굴을 잡고 자신의 눈을 쳐다보게 했다.

“엄마 눈 봐. 엄마가 뭐라고 했지? 대답해. 먹는 걸로 앞으로 장난치지 마. 알겠어?”

수경은 준이에게 매서운 눈과 강한 어조로 말했고 준이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경 자신이 느끼기에도 강제적이었다.

“똑바로 대답해. 말로.”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응”

준이는 다시 먹기 시작했고 아이의 고개 숙인 정수리를 보며 수경은 자괴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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