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떻게 가진 너희들인데?

by Momanf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수경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시리얼을 먹다 야단을 맞은 아이들은 눈물을 닦으며 아침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어린이집 가는 길에 울던 것도 금세 잊고 수경의 손을 잡고 쫑알거렸다.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는 수경을 크게 팔 벌려 안아주고 엄마의 볼에 뽀뽀하며 아쉬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수경은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엄마인 나를 용서한다.’

수경은 자신이 단지 시리얼 문제로 소리 지른 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잠들기 전, 조리원 채팅방에서 한 친구가 명품백을 샀다고 자랑했고 새벽에 그 명품 사이트에 들어가 갖고 싶던 가방을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준이는 그저 새벽에 잠을 설쳐 조금 예민했고 늘 그렇듯 아이들은 아이답게 음식을 먹으며 조금 장난을 친 것뿐이었다. 작고 힘없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우주인 아이들에게, 너무 쉽게 화를 낸 자신의 모습이 후회스러웠다. 신체적으로 느낀 피곤함, 친구에게 느낀 질투와 남편에게 느낀 서운했던 부정적인 감정이 애먼 아이들에게 인내심 없이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정 쓰레기를 훈육이랍시고 힘없는 아이들에게 배출했고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가엾은 아이들에게 화냈다는 죄책감과 자괴감만이 남았다.

집으로 들어온 수경은 다리에 힘이 빠져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시리얼 볼을 보자 눈물을 닦으며 시리얼을 먹던 아이들이 생각나 울컥해졌다.

‘내가 어떻게 가진 아이들인데? 얼마나 귀한 내 새끼들인데?’

수경은 Ryan과 사귀며 피임을 했었고 결혼 후, 피임약을 끊으면 자연스레 임신이 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두 사람에게 아기는 오지 않았다. 임신이 당연할 줄로만 알았던 수경은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Ryan과 불임 전문 병원을 찾았다. 수경에게는 검사부터 힘든 과정이었다. 특히 나팔관에 연기를 쏘아 나팔관이 막힌 것을 확인하는 조영검사는 비명을 지를 만큼 아팠다. 남편과 다양한 검사를 거친 후, 의사로부터 들은 결과는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수경의 자궁 상태는 아주 좋았다. 의사는 다만 남편의 정자 활동이 조금 느려 임신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처음 두 달을 난포가 터지는 약을 받아와 임신 가능성이 있는 기간에 맞춰 잠자리를 시도했다. 하지만 날짜를 맞추어 억지로 해야만 하는 섹스는 오히려 두 사람을 경직시켜 두 달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다음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인공수정은 난포를 자라게 하기 위해 때에 맞춰 약을 먹고 좌약을 넣어야 했으며 자신의 배에 며칠 동안 주사를 직접 놓아야 했다. 어릴 때, 주사 바늘이 부러진 경험이 있는 수경은 처음에는 주삿바늘을 보는 것조차 겁이 났지만 아이를 갖겠다는 일념으로 대범하게 자신의 배에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억지로 많은 난포를 자라게 했기에 인공 수정 기간 동안 늘 배가 빵빵했고 몸이 무거웠기에 수경은 늘 시술 후, 임신한 것 같았지만 인공 수정 과정도 세 번을 실패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어떡하지?’

거듭되는 실패로 수경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세 번의 인공 수정이 실패한 후, 의사는 시험관 시술을 권했다. 인공 수정이 추출한 건강한 정자를 인위적으로 난포를 많이 터트린 자궁으로 밀어 넣는 것이라면 시험관 시술은 수경의 난자까지도 추출해 외부에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켜 그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는 것이었다.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간 배아는 자궁에 잘 착상만 되면 임신이 되는 것이었다. 수경의 몸에서 난자 여덟 개를 추출했고 최상의 배아 두 개가 수경의 자궁에 이식되었다. 가장 상태가 좋은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켰다는 의사의 말에 수경은 임신에 대한 확신을 했고 이식하자마자 임산부처럼 행동을 조심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병원 검사를 하기로 한 전 날, 생리가 터져 버렸고 그날 수경은 화장실 바닥에 앉아 목놓아 울었다. 거의 10개월을 불임 센터를 다니며 고생했었지만 시험관이라는 마지막 관문에 희망이 있었기에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실패한 것이었다. 임신을 확신했던 시험관 과정 1차 실패는 임신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강박 관념이 높아져 2차 시술을 두렵게 만들었다.

Ryan은 힘들어하는 수경에게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다시 시작하자고 제의했고 수경도 그것에 동의를 했다. 수경은 시험관 시술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헬스장에서 2시간씩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그동안 먹지 않았던 음식이나 술도 마셨다. 그리고 휴일 때마다 Ryan과 여행을 다니며 충분히 지친 몸과 마음을 쉬었다. 6개월 후, 남은 여섯 개의 배아 이식을 마칠 때까지는 울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다시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두 개의 배아가 이식되었고 1차 피검사 후, 간호사의 기쁜 목소리가 수화기로 전해졌다.

“수치가 높아요. 임신 가능성이 있어요.”

그 후, 2차 피검사에서 수치가 월등히 높아 쌍둥이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얼마 후, 초음파로 두 개의 아기집을 볼 수 있었다. 초음파로 처음으로 아기들의 심장 소리를 듣던 날, Ryan과 수경은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수경은 아이들의 성별이 아들, 딸이기를 원했고 4개월 뒤, 성별을 확인한 때에는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했었다. 임신 실패로 좌절감을 느낄 때 주위에서 들려오던 임신 소식만으로도 위축되던 날들, 아이를 갖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잠 못 들던 밤들을 다 보상받은 것 같았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임산부인 수경에게 안부를 건넬 때에도 힘차게 ‘아들, 딸 쌍둥이 임신했어요.’ 하며 대답했고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복 많은 배라며 만져보고 싶어 하면 기꺼이 배를 내밀기도 했다. 쌍둥이들을 가진 터라 남들보다 배가 빨리 커져서 6개월쯤, 이미 수경은 보통 사람의 만삭의 배가 되었다. 그 후로 출산까지 3개월 동안 수경은 눕지도 못해 소파에 앉아 잠이 들면서도 행복했다. 물론 걱정과 고비도 컸다. 고령에 속했기에 다양한 검사를 해야 했고 자궁 경부 길이가 짧아져 아이들이 너무 이른 출산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갈까 봐 전전 긍긍했다. 다행히 모든 염려에도 불구하고 쌍둥이는 쌍둥이의 만삭인 37주를 무사히 채우고 태어났다. 두 아이 모두 한 명의 신생아 무게만큼인 3kg로 아주 건강하게 태어나 주위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을 다 가진 만큼의 환희와 기쁨을 준 아이들에게 수경은 오늘 아침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쳤다. 아이들이 놀라고 두려운 얼굴로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늘 부족해 자신을 다그치기도 하고, 그래서 지치기도 한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감정이 앞설 때가 많아 결국 화를 내기도 하고, 일관성을 가지려고 하지만 때에 따라 흔들리기도 한다. 책으로 배운 이성적인 훈육도 자신의 감정 앞에서 늘 외면되기 일쑤이며, 부모의 컨디션에 따라 아이들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의 훈육은 훈육이라기보다는 연약한 아이에게 감정을 배출해 버린 격이 된다. 그것은 곧 후회와 죄책감의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부모를 참 쉽게 용서해준다. 준이와 보리가 아침에 야단을 맞고도 수경에게 해맑게 웃으며 안겼듯, 아이들은 부모의 잘못을 쉽게 용서한다.

부모는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자신과 아이들의 욕구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외다리 줄타기하는 곡예사처럼, 늘 아슬아슬하다.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서도, 그렇다고 아이만을 위해서도 살 수 없어 늘 예민해 있다.

수경은 오늘 그 줄에서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가지고 싶어 했던 가방 하나 못 가져보고 이 세상을 떠날 자신의 인생이 그랬다. 동시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가방을 여전히 가지고 싶어 하는 자신이 그랬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로 이미 많이 아플 작은 가슴에, 남은 시간 더 많이 사랑해주기는 커녕 화를 내 울리고만 자신이 나쁜 엄마 같아서 그랬다. 그렇게 사랑했던 남편을 이토록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고 두 사람이 이제 대화조차도 하지 않으니 아내로서도 실패였다.

모든 것이 실패한 기분이 들었고 실패한 채로 죽는다는 사실만 남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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