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망각의 동물

by Momanf

하루의 일과로 수경이 지쳐 있을 때, Ryan은 퇴근을 해 집으로 왔다. 수경이 아이들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야채와 고기를 다져 볶음밥을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그 속에 있는 당근이나 양파를 골라내며 잘 먹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How are you? Guys? Oh! Dinner time!” (잘 보냈어? 저녁식사 시간이네.)

Ryan은 주방으로 들어와 수경의 뺨에 입을 맞추었고 아이들은 아빠가 오자 반가워했다.

“Did you have dinner?” (저녁 먹었어?)

수경은 Ryan에게 물었다.

“I am fine now. Oh, I have a bowling game tonight with a couple of buddies. I will grab something with beer then” (난 괜찮아. 참, 나 오늘 친구들과 볼링 치기로 했어. 그때, 맥주랑 뭘 좀 간단히 먹으려고.)

그 순간 수경은 맥이 풀렸다. Ryan이 퇴근해 집에 오면 자신도 식사를 하고 아이들의 목욕을 부탁할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What time?” (몇 시?)

수경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I need to get there by 8:00. Is it OK?” (난 8시에 거기 도착해야 해. 괜찮아?)

Ryan은 수경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수경에게는 일방적인 통보로 여겨져 이미 그가 야속했다. 하지만 남편이 자주 이런 시간을 갖는 게 아니니 나가지 말고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오늘만큼은 수경도 다른 날 보다 지쳤다. 어린이집서 제공하는 부모 교육이 있어 3시간을 할애한 후, 집에서 청소하고 간식, 저녁 준비하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 놀아주고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쉬지 못했다. 게다가 아침 식사 후, 속이 편치 않아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배가 고팠다.

“Yes.”

수경은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했고 Ryan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서재로 들어갔다. 퇴근한 Ryan이 아이들의 식사를 도와주길 원했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와 맥주 한잔 마시며 홀로 쉬는 Ryan에게 차마 부탁할 수는 없었다. 수경은 한숨을 쉬며 큰 대접에 밥을 푸고 물을 부어 말았다. 물에 만 밥과 김치를 허겁지겁 먹으며 아이들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을 수 있도록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주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아이들이 옷을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I gonna go out. Good night” (나 갈게. 잘 자.)

Ryan이 옷을 갈아입고 나와 아이들과 수경에게 입을 맞췄다. 수경은 그런 Ryan에게 환하게 웃어주며 잘 다녀오라 말하고 싶었지만 몸과 마음이 지치니 분노가 일어 그를 보고 웃을 수 없었다.

“Are you all right?” (괜찮아?)

Ryan이 수경의 굳어진 얼굴을 눈치채고 물었다.

“Could you just put kids into the bathtub? I have to vacuum their room.” (아이들 욕조에 좀 넣어줄래? 나 애들 방 청소해야 해.)

수경이 욕조의 물의 온도를 확인한 후, Ryan의 시선을 피하며 욕실에서 나가며 말했다.

“Sure” (물론이지.)

Ryan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티셔츠를 벗고 있는 준을 도와 옷을 다 벗기고 욕조안에 넣어 주었다.

“I won’t be late because I have 9a.m class for tomorrow.” (나 내일 아침 9시 수업이라 늦지 않을 거야.)

Ryan은 수경과 아이들의 볼에 짧게 입 맞추고 나갔다. 아이들이 욕조안에서 노는 동안 수경은 아이들 방에서 어질러진 장난감을 치우며 청소기로 바닥을 밀다가 중간중간 아이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불을 펼쳐 잠자리를 준비하고 스탠드 불을 켠 후, 헤어 드라이기, 베이비로션을 준비하고 재빠르게 욕실로 들어갔다.

“아이고 잘 노네 내 새끼들. 이제 씻자!”

그렇게 아이들을 씻기고 양치를 시켜준 후, 얼른 자신도 세수를 하고 양치를 끝냈다. 잠이 와 칭얼대는 아이들을 달래며 머리를 말려주고 로션을 정성 들여 발라주고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수경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럴 때, 친정 엄마에게 좀 와달라고 할 수 있었으면....’

아이들을 눕히고 불을 끈 수경은 아이들과 함께 누워 땀을 닦았다. 갑자기 준이가 흥얼거리 시작했고 수경은 그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 음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이 되었어요. 쿨쿨 꿈나라로 가요. 꿈속에서 무얼 할까? 인어를 만나러 갈 거야.”

그렇게 아이들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자장가 노래를 대여섯 곡 부르니 속상했던 수경의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보리와 준이도 흥얼거리며 수경을 따라 노래를 불렀고 그런 아이들이 귀여워 꼭 껴안았다.

“보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보리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준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준이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방은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수경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은 수경의 양쪽에 누워 수경의 배나 다리에 자신들의 팔과 다리를 걸치고 꼭 붙어 잠이 들었다.

“보리야, 준아, 사랑해. 좋은 꿈 꾸고 오늘도 푹 잘 자. 너무너무 사랑해~.”

수경은 두 아이들을 꼭 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아이들은 뒤척거리다 잠들기 시작했고 모두 잠들 동안 토닥여 주었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조심히 문을 닫고 거실로 나갔다. 저녁식사로 어질러진 주방을 치운 후, 욕실로 들어가 아이들이 마구 벗어던진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고 어질러진 장난감을 정리하고 욕조를 씻었다. 수경은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마침내 곤한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새벽 3시, 수경은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일어났고 거실과 주방은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늦게 들어온 Ryan이 주방에서 뭔가를 챙겨 먹었는지 냉동 피자 박스와 피자 조각들, 맥주 캔들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수경은 얼른 소변을 보고 나와 주방, 거실 불을 끄고 아이들 방으로 향하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불을 켰다. 테이블에 있던 맥주캔을 분리수거 통에 버렸다. 그리고 먹다 남긴 피자를 쓰레기 통에 넣고 피자 박스를 분리수거 통에 버렸다. 음식물로 얼룩진 테이블과 바닥을 닦으며 조용한 공기 속에서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경은 주방과 거실을 한번 둘러보며 널브러진 남편의 옷을 정리해 빨래 바구니에 담고 바닥에 떨어진 소파 쿠션을 하나씩 소파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보이는 장난감을 바구니에 담고 컵을 식기 세척기에 넣었다. 물티슈를 꺼내 거실 바닥에 보이는 스티커를 떼는데 얼룩이 잘 닦이지 않아 힘을 주어 닦아내는데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물을 팔로 한번 쓰윽 닦았다. 그렇게 한참을 바닥에 붙은 스티커를 닦아내고 눈물을 닦아 냈다. 거실 바닥에 있던 스티커를 다 떼냈을 때, 거실에 있는 선풍기를 켜고 그 앞에 앉아 눈물과 땀을 식혔다. 시원하게 부는 선풍기 바람에 가슴속 뜨겁게 복받쳐 오르던 감정도 식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쉴 틈 없이 집안일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강박처럼 시간을 체크하던 자신이 떠올랐다. 가끔 지저분한 집을 허용하고 집안일을 미뤄보려 했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리 완벽하게 집안일을 해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남들은 직장생활도 잘하면서 똑 부러지게 집안일도 잘하거나 완벽하게 자신의 외모와 집을 가꾸고 아이들 교육에도 힘을 쓰는 것 같았다. 자신만 겨우 하루하루 버티는 나약한 사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보다는 다 잘나 보였고 자신의 삶이 너무 미미하게 느껴졌다. 무엇 하나 변변치 못해도 가족 곁을 지켜 주기만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수경은 실패감을 느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시한부 인생은 자신처럼 집안일에 동동 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은 생애 의미를 찾고 사랑하는 이들과 소중한 시간과 추억을 나누거나 배우자들의 지극한 간호를 받고 부부간에 사랑을 확인하는 이야기들, 무엇보다 남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묵묵하게 참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수경은 맥주캔과 피자 상자를 어질러 놓고, 수경의 지친 기색도 눈치채지 못하고 볼링 치러 나가 버린 남편이 너무도 야속하고 미웠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집을 치우고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물에 말아 김치랑 허겁지겁 먹을 자신의 인생이 서글퍼졌다. 돌아가는 쳇바퀴가 너무 힘들어도 내려올 엄두가 나지 않아 울면서 돌고 또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라는 자리는 가족의 편안함과 쾌적함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야 하는 자리, 남몰래 홀로 울며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하는 자리, 죽는다는 말도 죄스러워하지 못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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