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신앙 고백은 하지는 못했지만 수경은 교회를 다녀온 이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 제가 미국에 있을 3주 동안 가족들과 부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가족들에게 제 병을 차분히 설명하고 시누들에게 남편과 아이를 잘 부탁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이 둘을 보살피며 네 식구 짐을 싸는 일과 3주 동안 비울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며 세금이나 아파트 관리비 등 제 때에 잘 수납하기 위한 준비로 수경은 분주했다. 강아지를 맡아줄 집을 찾아 부탁하고 필요한 짐을 싸는 일도 해야 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 친구들의 선물과 아이들의 장난감 책으로 가방의 부피와 수는 늘어났고 마지막까지 자동차를 아파트 주차 단지 구석에 잘 주차시켜놓았는지, 전기와 가스 소등은 잘했는지, 창문은 모두 잘 잠겄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새벽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안고 김해공항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짐을 싣고 나서야 수경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1주일 동안신경 쓰며 분주했던 첫 번째 일이 마무리된 것 같았다. 아이들을 각 각 한 명씩 끌어안고 컴컴한 버스 안에서 아이들을 재우며 부부도 긴장이 풀리면서 함께 잠이 들었다. 1시간이 걸려 김해 공항에 도착했고 티켓팅을 마치고 수화물이 그들 손에서 떠나자 둘은 또 한 번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우리 비행기 탈 거야. 하늘을 나는 거야. 너무 신나지? 가서 컴퓨터로만 보던 고모들도 직접 만나고 함께 지낼 거야. 어때? 좋아?”
보리와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항에 있는 사람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속을 마치자 아이들은 창가로 뛰어가 비행기를 보며 흥분했고 Ryan도 연신 미소를 지었다. 가족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무리했지만 이번 여행은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담당 의사는 미국으로 가는 수경이 걱정되어 끝까지 여행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시누들을 직접 만나 남편과 아이들을 부탁해야 한다는 수경의 의지가 강했기에 각종 약과 주사를 처방해 주었다. 혹시나 갑작스럽게 수경의 상태가 나빠져 병원으로 이송될 경우를 대비해 영문으로 의사 소견서도 준비해 주었다. 그렇게 ‘만약에’ 대비한 준비를 마쳤지만 두 시누에게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들뜬 미소에 집중하며 애써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은 처음 타본 비행기에 흥분하며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수경에게 조잘조잘 떠들었다. 이륙 준비가 시작되었고 준이는 일어나 천장에 있는 에어컨이나 전등을 만지고 보리는 의자의 버튼을 마구 눌러대기 시작했다. 수경은 아이들을 침착하게 앉히느라 이륙 전부터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륙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불안해하며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수경은 마지못해 출국 전에 미리 구입해 두었던 중고 갤럭시 패드를 꺼내 아이들에게 건넸다. 미국까지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아이들에게는 긴 시간이었고 예상대로 게임에 정신이 빼앗긴 아이들은 더 이상 칭얼대지 않았다. 마침내 수경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쉬자 건너편에 앉은 Ryan이 수경의 손을 잡았다.
“Aren’t you tired?” (피곤하지 않아?)
Ryan이 수경을 보며 물었고 수경은 그의 손이 따듯하다 생각하며 대답했다.
“I am OK. Are you excited?” (난 괜찮아. 당신 좋아?)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Ryan에게 물었고 Ryan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You must be exhausted, honey.” (당신 정말 피곤하겠어.)
수경은 떠나는 전날까지 늦게 일한 Ryan을 보며 말했다.
“You must be, too. Do you want some sleep?”( (당신도 마찬가지지. 잠 좀 잘래?)
Ryan이 새벽부터 고생한 수경에게 물었다.
“I am OK, now. Why don’t you get some sleep. It will help you.” (난 지금은 괜찮아. 당신 잠 좀 자지 그래? 도움이 될 거야.)
Ryan이 고개를 끄덕였다.
“Wow, as soon as you said that, I feel really sleepy. Just wake me up when you need my help.” (와. 당신이 그렇게 얘기하자마자, 진짜 잠이 와. 당신 내 도움이 필요하면 깨워줘.)
수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Ryan은 눈을 감더니 곧 잠이 들었다. 그의 잠든 얼굴이 지쳐 보여 안쓰럽게 바라보던 수경이 승무원에게 담요를 부탁해 덮어 주었다. 수경은 아이들의 눈이 걱정돼 그만하자고 다독여 갤럭시 패드를 껐고 기내에 있던 잡지나 비행기 준수 사항들이 적힌 팸플릿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해주고 작은 크로키 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게 했다. 그 사이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고 미국행 비행기 환승까지 2시간이 남아 아침 식사를 했다. 다행히 공항 안 실내 놀이터가 있어 식사 후 아이들은 지루해하지 않게 시간을 잘 보낸 후,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조그만 피겨들을 꺼내 인형놀이를 하며 수경은 Ryan에게 조금 더 쉬라고 말했다. 수경은 아이들과 끊임없이 놀아주느라 피곤했지만 긴 시간 동안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답답함을 이해해 아이들과 비행기 한 바퀴까지 돌아 주었다. 자리로 돌아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틀었고 아이들이 몰입하자 수경은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잠시 쉬고 있자 점심 식사가 준비되었고 너무 곤히 자는 Ryan을 깨울 수가 없었기에 수경은 혼자 아이들 밥을 먹였다. 다행히 식곤증이 밀려온 보리가 곧 잠이 들었고 준은 억지로 잠과 싸우느라 칭얼대기 시작했다. 수경은 지쳤지만 일어나 준을 업고 기내를 한 바퀴 돌았고 그 사이 준도 잠이 들었다. 미국행 비행기에서 그렇게 5시간을 보낸 후에야 아이들은 모두 잠이 들었고, 수경은 겨우 참았던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었다. 수경은 아이들 식사를 거드느라 정작 자신은 먹지 못했던 점심을 주문해 영화 한 편을 틀었다. 홀로 조용히 식사를 하며 영화를 보는 시간은 꽤 달콤했다. 식사를 마친 후, 영화를 보면서 수경은 잠이 들었지만 보리의 뒤척 거림에 잠든 지 1시간도 안돼 다시 눈이 떠졌다. Ryan은 여전히 자고 있었고 아이들도 비행기 소리와 흔들림 덕분인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수경은 급히 화장실을 다녀와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5시 뒤면 미국에 도착한다는 사실에 ‘아이들이 그때까지 조금 더 자준다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보리가 눈을 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수경은 잠든 준이를 확인하며 보리를 얼른 화장실에 데리고 돌아오니 둘의 부석거리는 소리에 준이도 눈을 뜨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수경은 침착하게 보리에게 영화를 틀어 주고 준이를 화장실에 데리고 다녀오자 Ryan이 일어났다. 시간을 확인하던 그는 자신이 6시간 동안 정신없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놀라며 수경에게 말했다.
“I am so sorry. Did you get some sleep?” (미안해. 당신 잠 좀 잤어?)
Ryan이 수경에게 물었고 수경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수경의 얼굴엔 피곤함이 영역했다. Ryan은 금방 화장실에 다녀온 후, 수경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말했다. 수경은 1시간 정도 눈 붙였다며 오히려 Ryan이 배고플까 봐 식사를 주문하라고 말했다.
“You should sleep a little bit more. I can take care of kids. Come here.” (당신 더 자야 해. 애들 돌볼 수 있어. 이리 와.)
Ryan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에게 배가 고픈지 물었다.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고 간식이 든 주머니를 Ryan에게 내밀며 ‘아이들이 배고프면 먹이라’고 말했다. Ryan의 자리로 바꿔 앉은 수경에게는 집 떠난 지 12시간 만에 처음 갖는 완전한 휴식이었다.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머리 위까지 담요를 덮자마자 수경은 금방 잠이 들었고 비행기는 어느새 시카고에 도착했다. 시카고에 도착해 미국 입국 수속을 마친 가족은 마지막 목적지인 애틀랜타를 남겨두었다. 이제 환승 시간 포함 5시간 후면 가족들이 기다리는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