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와 모든 짐을 푸는데만 1주일 정도가 흘렀다. 약 한 달간의 여행에도 정리할 물건이 많다는 사실이 수경을 한숨짓게 만들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시차 적응으로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고 Ryan은 휴가 동안 밀린 개인 수업을 채우느라 바빴다. 하지만 대학 개강까지는 보름 정도 남아 있었기에 수경이 무리하지 않도록 육아와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Ryan은 대학 개강이 시작되면 개인 과외를 줄이고 아내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으로 수업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감사한 것은 수경이 아직까지는 약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Ryan이 출근하면 최소한의 집안일은 무리 없이 해 낼 수 있었고, 컨디션이 좋으면 옷장 정리나 냉장고 청소를 하기도 했다. Ryan은 반대했지만 그저 누워서 쉬는 게 산 송장처럼 여겨져 수경은 일부러 집안일을 했다.
아직까지는 생활에 큰 지장을 줄 만큼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다는 것이 수경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달라진 것도 많았다.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거나 피곤해하며 불만을 갖는 대신 매 순간 가족과 함께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부부는 한순간이라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서로를 아프게 하는 말을 하는 대신 서로를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했고 애정 표현을 더 많이 했다. 수경은 가끔 오래 살 수 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상상도 해보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하는 계획까지 맞춰져 있겠지? 남편도 그때까지 아이들을 뒷바라지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일만 하겠지? 남편과 나의 노후 자금을 위해 아이들이 중학교쯤 되면 내가 일을 해야 할지도 몰라. 생각만으로도 숨이 차네. Ryan과 나는 각자의 삶을 무시하고 아이들에 맞춰서 그럭저럭 살아가겠지?’
그때 문득, 어릴 때 만나 친구처럼 지내던 남편과 이혼한 Shelly가 떠올랐다.
‘그래. 함께한 시간이 길다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몰라. 나와 Ryan도 죽음이 아니었다면 과연 돌이킬 수 있었을까? 원망만 차있던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안쓰럽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었다. 삶이란 좋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나쁠 수 있고 나쁜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결국 가치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 결국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가령 오래 사는 일은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매일을 불평과 불만 속에 가족을 원망하고 싸우고 남들과 경쟁하는데 몰두한다면 삶 자체는 고통이 될 것이다. 고통의 시간만 연장되고 가중되는 격이 될 것이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질적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은 아니다.
‘그저 일상을 견뎌낸다는 생각으로 겨우 살아가겠지. 가끔 즐거울 때도, 보람을 찾기도 하고 다투고 속상해하며 살고 있겠지. 그렇게 소소한 것이 행복이 줄 알고 살아가겠지.’
죽음으로 인해 이전과 다른 일상이 오히려 단순해진 것에는 만족했다. 아니 오히려 질적으로 나아졌다. 컨디션을 좋은 날은 눈뜨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모든 것에 기쁨을 느꼈다. 음식이 맛있는 것도, 그것을 부담 없이 소화시킬 때도 감사했다. 편안하게 누워 쉴 집이 있다는 것과 그곳에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는 사실에도 새삼 감동했다. 맑은 하늘과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 조차 감사했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나 나무가 아름다워 한참을 서서 보기도 했다. 때로는 아스팔트 사이로 난 잡초에게도 끈질긴 생명력을 칭찬하며 감탄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는 순간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눈과 귀, 감각들을 갖게 되었다. 일상은 똑같았지만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자신의 감각은 완전히 달랐다.
다만 그녀의 두려움은 일차적인 신체적인 고통이었고 막연하던 시간이 재촉을 받음으로써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또, 오랫동안 응어리져 있던 고집스러웠던 마음이 곧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서서히 헐거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 죽을 때까지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
‘상처를 받은 쪽은 오로지 나뿐이었다’라는 고집스럽던 생각이 얼마 전부터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식에게 외면당한 ‘아버지도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라는 생각. 그동안 복수라 부르며 부여잡고 있던 그 원망이 죽음 앞에서 점차 힘을 잃어갔다. 딱지가 앉으면 뜯어내고 쓰라려하다 또 뜯어내며 스스로를 아프고 힘들게 해왔던 부모. 그것을 부여잡고 그것에 묶여 뒤엉킨 자신을 속박하던 그 탄탄하던 밧줄이 하나둘씩 끊어지는 듯했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속박의 끈이 끊어지자 조금씩 공기 중으로 오르려는 듯 내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두려워 웅크리던 주먹도 서서히 힘을 빼 손을 펼쳐 바람을 믿고 몸을 실었다.
수경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두 팔을 허공으로 펼치고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
‘죽음은 이 상태야. 이 자유함. 그동안 알고 있던 죽음은 세상 속의 거짓말이었어. 병원, 보험, 살아생전 사용해야 할 물건들의 광고들. 그것들은 삶에 집착하게 만들려고 죽음을 두렵게 만든 새빨간 거짓말들이었어. 죽음은 삶에 대한 집착으로 오는 걱정, 불안에서 자유롭게 하고 용서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거였어.’
수경은 생애 처음으로 그녀를 속박해오던 모든 집착에서 해방되어 깊은 자유를 느꼈다. 공기 속에 자신의 몸이 녹아든 것과 같아 한참을 아주 고요히 공중에서 이리저리 바람에 동화되어 나부끼는 깊은 명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기분이 암까지 내몰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한줄기 생각이 떠오르자 수경은 멈칫하며 눈을 떴다. 부력으로 물속처럼, 하늘 속처럼 자유롭던 그녀를 중력으로 잡아끌어내렸다. 순식간에 바람처럼 흐르던 날개 위에 무수한 상념들의 무게가 떨어지며 중력을 향해 추락했다. 그것은 찰나였다. 욕망이 어떻게 자신 안에서 군림하고 살았었는지, 자신의 사지를 꽁꽁 묶어 놓았던 그 욕망들이 하나씩 선명해졌다.
수경은 다시 심호흡을 하며 숨을 가다듬고 이전처럼 자유롭던 바람을 느끼려고 두 팔을 허공으로 펼치며 명상에 빠지려고 노력했다. ‘명상이 암을 내몰아 낼지도 몰라’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수경을 떠오르지 못하도록 잡아 끌어내렸다. 하나의 욕망 순식간에 많은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붙어 머릿속을 시끄럽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 하나의 욕망에도 순식간에 더러워질 수 있는 마음 안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다양한 욕망을 붙잡고 그것의 진실 여부도 따지지 못한 채 거짓말들에 끌려다니며 살아왔었는지.
수경은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모든 욕망은 세상이 만든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변호하다 보니 더 많은 변명들이 필요했고 삶은 복잡해졌다. 그것들을 사회 속에서 지향하는 목표, 자신의 성격, 기호, 혹은 신념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괴롭혀왔다. 애초부터 인간에게 진실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각색하고 진실은 외면해 버리는 것 따위였다.
그동안 자기의 진실이 절대적인 냥 세상 속에 적과 아군을 만들어 왔다. 세상이 만든 행복을 기준 삼아 그것에 방해가 되면 나쁜 것이라 꼬리표를 달고 선을 그어댔다. 그 선들은 좋은 것, 나쁜 것 이분법적인 사고로 모든 것에 선을 긋고 나쁜 선에 닿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살아왔다. 애초에 좋은 것, 나쁜 것은 태어나는 순간 각색되어 진실을 모르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음은 내게 축복이다.’
그 하나의 진실 앞에 오랫동안 세뇌당한 거짓말들이 앞다투어 변론하고자 했다. 수경은 강제로 그것들의 입을 틀어막을새 힘이 생긴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중력으로 묶고 있는 마지막 밧줄이 눈앞에 선명했다.
‘끊어내기 위해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