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실력이란 능력이 아니라 꾸준함

스승의 날 선물

by Momanf

동네 미용실 사장님의 부탁으로 작년 봄부터 약 1년간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둘 다 아이 둘씩 있는 엄마에다 그분은 미용실도 운영하고 있으니 빠지는 날도 많았고 몇 주나 몇 달 수업 안 한 달도 부지 기였다.


나는 영어 한 자 못했지만 우연히 22살 영어 학원에서 관리 업무 일을 하게 됐는데 어린 학생들을 돕다 유치원 원서부터 보기 시작하게 됐다. 또 외국인 강사와 어울려 다니며 발음이 좋아지고 배운 것을 바로바로 써먹으며 흥미를 갖고 공부하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수업 준비가 내 영어 공부가 됐고 내가 강의하며 반복이 된 생활을 시작하고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니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을 하며 영문과로 뒤늦게 편입을 했다. 나이 차 많은 동생들이 영어를 너무 잘하고 일상회화만 조금 하던 내 영어실력이 그리 좋지 않음을 직면했다. 그저 문법이나 구조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에 불과했던 것이다.

30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첫 학기부터 판판이 내 영어 실력이 깨지며 적나라한 내 실력과 마주했다. 그때부턴 4시간 수업에 8시간 숙제하는 식으로 다시 미국인이 쓰는 그들의 방식대로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10년 영어선생, 영문과 졸업. 다 필요 없었다. 첫 학기 2달 곤혹을 치르며 서양인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감으로 익혔다 할까? 내 굳은 머리가 삐거덕 거리며 움직이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는데 30살 인생에 평생 처음이었다. 그렇게 2년 유학생활을 했다. 그 후, 영어는 일취월장으로 성장하는 게 느껴지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한국 학생 하고도 무조건 영어로만 대화했다.


그렇게 돌아와 국제회의 전문가 일을 하며 모셨던 세계 유명한 박물관 관장님들께, 특히 대영박물관 관장님께 영어 잘한다 소리도 듣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늘 생각하고 답답했던게 외국어 배우는데에 재능이 없구나였는데 그저 그래도 10년을 하게 되니 되는구나 싶었다.


8년 동안 결혼 대학원 출산 육아로 영어 가르치는 일에 손을 놓았다가 내가 가는 미용실 사장님의 부탁으로 한국식의 영어교육이 아니라 내가 배운 그대로 우리말과 성격이 전혀 다른 영어로 접근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 6개월은 기존에 배웠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고집에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진도가 더뎠다. 난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접근하니, “아~ 이 말이었군요~” 감을 잡았다. 그날도 나는 드디어 이해했구나 싶어 기뻤다. 그 후에는 결석도 많았고 사정으로 몇 주 몇 달 빠져 그런 들쑥날쑥한 스케줄이 싫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해선 몇 개월 한국생활밖에 남지 않은 내가 다 알려주기에도 무리고 그녀의 영어실력에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수업을 그만하는 쪽으로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 말을 던지고 몇 주 후 머리를 하러 갔더니 진지하게 부탁을 했다. 아무리 바쁘고 결석도 잦고 숙제를 잘못해도 수업을 못하니 정말로 하나도 안 보게 된다며 수업을 해달라는 거였다. 그 맘때 동네 부동산 사장님 수업도 그런 식으로 그만뒀던 터라 그 부탁이 의외였다. 그 열정이 대단해 좀 귀찮았지만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약 3개월 만에 다시 영어수업을 시작하고 전주에 작문 숙제를 내서 읽어보는데 놀라웠다. 그동안 새로운 구조를 가르치느라 힘들었는데 파악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동사를 바르게 쓰고 시제까지 시도해보며 그간의 배운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아, 배운 것은 절대로 어디가는 게 아니구나. 다 남는구나!

너무 자랑스러웠고 작문을 바탕으로 문법과 문장 구조를 설명하니 찰떡같이 철썩 알아들었다.

보람되었다.


정말로 대단합니다. 전혀 몰랐고 자기의 머리와 이해력이 나쁜가 보다며 탓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그 끈기에 실력이 정말 쌓이는군요~ 하며 칭찬을 하니 나이 많은 내 학생은 정말로 이번 작문이 예전보다 쉬워졌음을 고백하며 나를 더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기분이었다. 이 보람찬 기쁨 때문에 얼마나 즐거웠던가? 나 스스로가 좋은 선생이라 얼마나 뿌듯했었던가? 실로 오랜만에 느낀 기분이었다.

스승의 날에 받은 큰 선물이었다.


그날 밤 내 학생은 두 아이들을 재워놓고 영어 작문의 열정이 넘쳐 긴 문자를 보내고 나는 그런 그녀의 열정에 손뼉 치며 수정해주었다. 미국에 가서도 꼭 그녀의 영어를 최선을 다해 서포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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