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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Jul 30. 2022

36. 살아있기 때문에 아픈 거야

만 6세인 내 딸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긁히거나 다친 상처를 보여주며 울상을 짓는다. 대부분 육안으로도 대수롭지 않은 상처가 많은데 공감을 원하는 아이라서 말하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안타까워하는 시선으로 아팠겠다고 말하면 그 상처에 대서는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다음 날 새 상처들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은 매일 반복된다.


나는 하나님을 믿은 ,  가지 상충되는 마음을 고민한다.

하나는 비록 내가 매일 아프고 다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해 넘어지지만  크고 작은 고난은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평강이 있다.

다른 하나는 이토록 거듭 넘어지는  보니  죄성의 뿌리는 아주 강하며 살아있는 동안 나는  옛사람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라는 절망감이 있다.

살아있는 몸은 다치고 아프고 회복되고 죽고 하는  알지만 다치고 아플  좌절하고 벗어나고 싶다. 이러다 죽을까  려울 때도 많고 반복되는 실수로 똑같은 곳에서 넘어지는 내가 싫다.


나도 어찌 보면  딸과 똑같은 행동을 매일 반복하고 다.

세상이란 밖에서 놀다 보면 벌레에도 물리고 내가 모르는 사이 작은 상처가 생길 수도, 조금 친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 벌레 물린데 가려움, 쓰라림, 긁히거나 피가 난데 따가움이 싫어 불평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공감해주길 바래 이야기한다.

내가 놀이를 포기하고 가만히 집에 온 몸을 싸매고 얌전히 누워 자지 않는 이상은 계속 나를 괴롭히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긴다. 매일매일 생긴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 우리는 생명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주님께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그전에 보고도 보이지 않던, 들어도 들리지 않던 말씀들이 가슴에 들어오고 이해할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감각이 하나님의 영과 하나가 되어 부활하는 것이다. 새로 태어난 살갗은 부드럽고 예민하다.  경우를 예로 들면 나는 주님을 만나 새로 태어난  1 7개월이 되었다. 내 새 살갗은 19개월 밖에 되지 않은 예민한 것이다.


세상은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캠프와도 비슷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아이들의 몸을 보호하는 실내 놀이터가 아니기에 나무나 바위에 긁히고 벌레와 각종 식물들에 의해 피부가 가렵기도 하고 따갑기도 하다. 물속에서 놀다가 미끄러져 다치기도 한다. 하지만 실내놀이터 보다    재미있다.

그래서 세상 속의 진리나 정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세상을 재밌는 놀이터로 생각하기에 나의 죄성과 타인의 죄성이 끊임없이 부딪히고 다치고 긁히고 넘어지고 아프다.


자, 이제 내 딸에게 나는 엄마로서 어떤 충고를 할 수 있을까? 네가 다치고 벌레 물린 데가 싫으니 안전한 집에서 정적으로 조심히 놀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나가서 놀지 말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다치겠지만 세상에서 자유롭고 재밌게 놀아보라고 말할 것인가?


나라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네가 싫어할 상처도 매일 생기고 벌레에도 끊임없이 그것들이 너를 귀찮게 하겠지만  모든 상처는 다시 회복되고 회복되는 동안 굳은살이 생겨날 것이다.

네가 반드시 기억해야  것은

 속은 놀이터이고 너에게는 아침에 숲으로 나갔다가 저녁이 되면 숲에서 돌아갈  집이 있다는 . 그곳너의 상처를 치료하고 보호하고 휴식케 하고 너를 가르쳐  부모가 있다는 것을 잊지마라.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숲에서 놀다가는 돌아올 집도 잊고 거기서 죽어버리고  것이니 영적으로 부활해  집이 어디고  부모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숲이 놀이터임을 인지하며 맘껏 놀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의 숲은 놀이터지 집이 아니다. 밤에 숲에서 잠들다가 배고픈 짐승의 밥이  확률이 높다.


나의 하루와  일생의 처음은  집에서 부모와 아침을 먹고 대화하며 집을 나서는 일이다. 부모가 매일 반복해서 가르쳐 주는 독이 있는 동물이나 식물들, 위험에 대해 울 수도 있다.

세상의 숲에 빠져 실컷 노는 동안 굳은살이 박히고  가지 실수를 통해 자신만의 조심하게  팁을 얻게  것이다. 그렇게 쌓인 노하우와 굳은살로 점점  상처에 무뎌지게 되며 맘껏 즐길  을만큼 성장할 것이다.

나의 하루와 내 일생의 마지막은 매일 그 재미들에 너무 빠져 돌아갈 시간이나 집을 잊지 않도록, 그곳에서 잠들다 짐승의 밥이 되지 않도록 제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아직 빛이 있는 시간에 집으로 잘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온 집에서 부모를 만나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나누고 필요한 충고와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상처를 치료받고 더러워진 몸을 깨끗하게 씻고 부모가 차려준 따듯한 저녁밥을 먹고 편안하게 잠을 잔다. 영적육적으로 모든 것이 제공되는 부모와 집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 아침, 저녁 부모와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과 휴식을 갖고 오후에는  속에서 실컷 놀면 된다. 이것을 사는 동안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부모인 우리의 일상이다.


하나님이 그 집에 우리를 입양해 자식으로 삼아주신 이유는 숲 속에서 만나는 친구들을 도우라는데 있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친구들, 집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방황하는 친구들, 숲에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받았다고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놀지 않고 우는 친구들, 집에 돌아갈 시간인데 돌아갈 준비하지 않고 그곳에서 잠을 청하려는 친구들, 거기서 집을 짓고 살아가려는 친구들, 돌아갈 집도 부모가 없는 친구들을 내 아버지가 너를 입양해 줄 것이라는 굿뉴스를 전하는 것이다.


내가 잠깐 착각한 것이 있었다.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아는데 나는  아직 주님처럼 살지 못하느냐 하던 불만. 그것으로 평생 나는 바뀔  없다는 절망감을 졌었다.

주님을 만나게  순간은 주님처럼 라고 명령하신 날이 아니다. 애초에 인간은 하나님이   없다. 주님은 우리 부모고 우리는 그의 자녀이다. 자녀와 부모 자리가 뒤바뀔  없고 뒤바뀌었던 자리다시 제자리를 찾도록 영적으로 부활해야 한다. 부활후에야 우리는 주님은 우리 부모이고 우리에게 태초부터 예비된 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 속은 더럽고 상처받기 쉬우니 집에만 있겠어요. 숲은 귀찮으니 주님 하고만 집안에만 있을 거예요.” 아니다.

 속에서 뛰어놀며 위험을 배우며 굳은살이 박히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속에서 만난  잃은 자들, 상처받는 자들돕고 밤에 돌아갈 집과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매일매일 긁히고 물리고 피가 나는 이유는  속에서 뛰놀고 있다는 증거이며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돌아갈 집과  집에서 나를 치료하고 깨끗하게 씻기고 따듯한 밥을 제공하고 재워줄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세상은 두려운 곳이 아니다. 내 부모는 숲에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고  성장을 위해 그것들을  허락하시는 분이다.

나는 이 사실 덕분에 매일 크고 작은 상처들을 겪으면서도 어렴풋이 주님 안에 있는 증거라고 안심할  있었던  같다.


매일 새로운 상처에 대해 불만과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인 내게 공감을 원하는   블레어, 하지만  다음날 집에 있겠다 하지 않고 밖에서 재밌게 뛰어노는  애는 어렴풋이 내가 깨달은  심오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같다.

비록 상처 나고 다쳐서 불편하지만  상처  곳을 들여다봐주고 공감하고 치료해줄 부모가 있다는 ,  상처들로 인해 굳은살이 생기고 그렇게 단단하게 성장해가기에 부모가 그 상처들을 허락한다는 사실,

아이당장에 무서움, 공포를 낄 수 있는 새로운 도전들을 부모가 허락하는 것은 진짜 아이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걸, 부모는 여차하는 상황에 대비해 절대로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는 점을 은연중에 아이가 느끼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렇게 하나님은 나를 지켜본다는 것을 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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