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어머니가 보내준 주소대로 부모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수경은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새어머니는 문 앞에 수경이 서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하며 손을 잡고 집안으로 이끌었다.
“점심 차려놨다. 어서 와 앉아.”
수경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음식 냄새가 풍겼고 수경은 소위 ‘친정 집 냄새’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은 어디 있어요? 손 좀 씻고 올게요.”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묻지 않았다.
“응. 여기야.”
새어머니는 화장실 불을 켜주었고 수경이 손을 씻고 거실로 나오자 아버지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저 왔어요.”
수경은 짧게 고개를 숙이며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그래.”
아버지가 수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봉지를 식탁에 올려놓았고 봉지 안에서 천도복숭아 한 두 개가 굴러 나왔다. 천도복숭아는 수경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임신했을 때, 식감에 예민해 이것저것 잘 먹지 못할 때에도 천도복숭아만 먹었다.
“당신도 손 씻고 오세요. 밥 다 차렸어요.”
수경이 식탁에 앉고 아버지는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수경이 어릴 때부터 너무 좋아했던 그 복숭아를.
수경은 한동안 그 천도복숭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새어머니가 차린 음식들로 시선을 옮겼다. LA 갈비와 새어머니만의 특별한 느타리버섯을 넣은 구수한 된장, 가끔 생각났던 오징어순대와 몇 가지 수경이 기억하는 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새어머니가 아침부터 자신을 위해 얼마나 분주했을지 상상이 갔다.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자 수경은 새어머니의 김치부터 손이 갔다. 새어머니는 수경의 앞으로 반찬들을 밀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말했다. 음식들과 함께 학창 시절의 기억도 따라왔다. 요즘 들어 부쩍 소화가 힘들어 죽을 먹고 있는 사실조차 잊은 채, 식욕이 돌아 밥 한 공기를 다 먹고도 젓가락을 쉽게 놓지 못했다.
“수경아, 밥 한 공기 더 먹어라.”
새어머니는 수경의 빈 밥공기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곧 수경은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너무 많이 먹었어요.”
수경은 빈 그릇과 수저를 들고 치우려는데 새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 너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라. 내가 치우마. 매일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여기서라도 하지 말아라.”
수경은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새어머니가 수경의 손에 들린 그릇과 수저를 빼앗아 테이블 위에 두었고 수경은 머뭇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눈에 삼삼하다. 어찌나 올망졸망 귀여운지. 이쁘고.”
새어머니의 말에 수경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예뻐요. 하는 짓도 예쁘고 착해요.”
“영어도 잘하겠네?”
“한국말을 더 잘하지만 아빠랑 있을 때는 그래도 영어로 해야 되는 걸 알고 영어로 대화하려고 애써요.
“보리는 말하는 것도 똑 부러지대? 준이한테 TV 보면서 뭐라고 설명하는데 눈빛도 그렇고. 애가 너 닮았어.”
수경은 아버지가 둘의 대화를 경청하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부끄럼이 좀 많아요. 밖에서는 인사도 잘 못하고 집에서 만큼 잘 말하지 못해요. 하지만 집에서는 제 흉내 내면서 준이에게 야단도 치고 누나처럼 챙겨요. 그래도 2분 먼저 태어난 누나라고.”
“그래. 딸이 그래. 아들은 좀 어리숙하고. 그래서 또 귀엽고.”
아버지는 식사를 이미 다 마쳤지만 옛날처럼 먼저 일어나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수경은 느낄 수 있었다. 수경은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고 새어머니는 크게 웃으며 수경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수경은 지난번 못다 한 Ryan 가족에 관한 이야기나 Ryan과 어떻게 만났고 연애를 시작했는지, 함께 어느 곳을 여행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계를 모르고 미래를 위해 달려야만 했던 수경의 20대에 Ryan은 ‘B is OK, You don’t need to get A+’ 라며 자신을 격려하고 위안을 주었고 불같이 화내는 자신의 강한 성격이 매력이라 말해줬던 것도 잊지 않았다. Ryan이 아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수경에게 전해 들으며 부모의 얼굴은 내내 미소로 번졌다.
“그래. 말이 안 통해서 그렇지 사람이 좋아 보이더라. 잘생기고.”
새어머니는 그렇게 말하자 수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학창 시절에 인기가 많았대요. 친구가 이야기해줬어요.”
갑자기 수경의 위장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더부룩하게 가스가 차이고 답답해 숨이 가빠졌다. 수경은 고통이 밀려올 것 같아 두려워 약을 먹기 위해 당황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맛있게 먹어 과식했나 봐요. 급하게 먹어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수경의 말에 새어머니가 일어서며 걱정스레 물었다.
“소화제를 좀 줄까?”
“괜찮아요. 제가 소화제를 갖고 다녀서 그거 먹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수경은 토할 것 같아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고 화장실로 들어서자마자 수경은 변기를 잡고 토하기 시작했다.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갈까 봐 얼른 세면대 물을 틀었다. 먹은 것들이 소화되지 못하고 다시 역류해 변기에 다 버려졌다.
정성 들여 잘 차려진 수경이 좋아하던 음식들, 고스란히 소화되어 수경의 살이 되고 피가 될 음식들이 새어머니의 정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 게웠다. 그렇게 두 번을 더 게워낸 수경은 입을 씻어내고 거울로 자신의 매무새를 다듬은 후 화장실 문을 열었다. 새어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경에게 다가왔다.
“괜찮니?”
“소화가 좀 안돼서 약을 좀 먹어야겠어요. 죄송하지만 소화제를 먹고 좀 누워있을 수 있을까요? 한 30분만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어머. 너 체한 건 아니니? 어서 이리 들어와라. 안방 가서 눕자. 자리 깔아줄게.”
아버지도 걱정스레 수경을 보며 안방 문을 열었다.
“잠시만 쉬면 괜찮을 것 같아요. 잠깐만 들어가서 누울게요.”
수경은 가져온 가방을 챙겨 안방으로 들어가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체한 거면 내가 손을 좀 따줄까?”
“아니요. 쉬면 괜찮을 듯해요.”
수경은 얼른 주방으로 다시 나와 물컵에 물을 받아 방으로 들어갔고 그 사이 이부자리가 준비되었다. 수경은 새어머니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가방에서 허겁지겁 췌장암약을 꺼내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괜찮다. 괜찮다. 잦아든다. 잦아든다.’
수경은 천천히 자리에 누우며 혼잣말을 계속 되뇌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수경은 고통이 소리 없이 지나길 바라면서 감은 두 눈을 뜨자 벽에 붙은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8월도 이제 끝자락. 의사의 말대로라면 10월에 나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새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요즘 부쩍 소화가 안되고 허리가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상태로라면 갑자기 병원에서 자신의 병을 고백을 해야 하거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떠날 수도 있다.
수경은 습관처럼 시계를 봤다. 1시. 2시간 후면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야만 했다. 수경은 마침내 오늘 자신의 병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부모에게 전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상대에게 남은 시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수경은 다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속은 조금 답답했지만 심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자 수경은 이불을 정리했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마음의 준비를 마친 후, 방문을 열고 나왔다. 식탁에 마주 앉은 부모는 안방에서 나오는 수경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봤다.
“괜찮아졌어요.”
수경은 두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며 새어머니 옆에 앉았다. 어머니는 수경이 나오자 식탁에 놓인 천도복숭아를 자르기 시작했고 수경은 그것을 보자 또 군침이 돌았다. 먹은 것을 다 개워서인지 허기감마저 느껴졌다. 수경은 무엇보다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새어머니가 복숭아를 잘라 접시에 올리자마자 무리인 줄 알면서도 덥석 집어 복숭아를 먹었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녀가 여전히 천도복숭아를 좋아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예상대로 천도복숭아는 여전히 너무 달콤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만 사느라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을 오랫동안 먹지 못했다.
“이 복숭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저 임신했을 때도 진짜 이것만 먹었어요. 어떤 날은 10개도 더 먹었어요.”
수경은 아버지를 향해 웃으며 말했고 아버지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래. 너 어릴 때부터 이 복숭아 참 좋아했었지.”
새어머니가 수경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잠시 복숭아를 먹으며 침묵이 흘렀고 수경은 복숭아를 먹던 포크를 식탁에 놓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수경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수경에게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눈은 불안으로 떨렸다.
“죄송해요 이런 말을 전해드려서. 하지만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수경은 떨렸다.
“저 아파요... 저 좀 많이 아파요.”
수경이 아버지 눈을 보며 말했다.
“어. 어디가... 어떻게?”
새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빛은 수경의 대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췌장암 말기예요. 4월 중순쯤 6개월 정도 산다는 진단을 받았고 의사의 말대로라면 이제 한 달 반 정도 남았어요.”
수경은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뱃속의 음식물을 게워낼 때의 느낌처럼 말을 게워내자 가슴이 쓰라리고 목이 죄어 왔지만 답답하게 누르던 불쾌한 느낌도 동시에 가셨다.
“아아... 아. 어쩜 어쩌면”
새어머니는 충격받은 얼굴로 수경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도 충격받은 얼굴로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다. 수경은 그런 아버지의 시선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해 시선을 떨어뜨려 고개를 숙였다.
‘복수.
나는 그에게 복수를 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아주 큰 한방을 제대로 먹인 것 같다.’
20년 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던 딸이 집을 나가 홀로 가족을 만들어 20년을 살다 돌아왔다. 고맙게도 돌아온 딸은 ‘이 세상에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용서와 지나간 시간을 만회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물들었을 이때, 이 절묘한 타이밍에. 수경은 또다시 복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누가 이 세상에 나오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나? 왜 나를 이 세상에 낳아 이토록 괴롭히는 거야?’ 어김없이 술에 취한 아버지가 수경에게 시비를 걸던 밤, 뺨 한대를 맞고 발로 배를 차이던 수경이 마침내 장롱에 머리를 찧으며 죽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제야 아버지는 더 이상 그녀에게 손지검도 하지 않고 그냥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수경은 그 등 뒤를 향해 발악을 하며 소리쳤었다. ‘죽여. 죽이고 가라고. 자식을 낳아 자식을 때리고 부인을 때리고 가정에 폭력만을 일삼는 당신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악마라고.’ 발악을 하며 소리쳤었다. ‘죽이지 못할 것 같으면 내가 죽는 꼴을 보라고. 내가 죽어준다’고 죽을힘을 다해 울부짖었다.
그날, 수경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혈서로 아버지 때문에 죽는 것이란 유서를 남기겠다고 생각했다.
‘말이 씨가 되었다. 내 마음은 변했는데 내 말은 자라났다.’
“병원 몇 군데 가 확인해봤니?”
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도 검사하고 여기서도 몇 군데 확인했어요. 안된대요. 그래서 약을 먹고 있어요. 항암치료도 하고요.”
아버지는 의자에 몸을 기대려던 손이 미끄러지며 휘청거렸다. 남편이 비틀거리자 새어머니는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 잠깐 바람 한번 쐬고 들어와야....”
아버지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수경의 마음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새어머니는 수경의 옆에 앉아 손을 잡고 울기 시작했다.
“어떡하니? 어떡하니? 어쩌면 좋니?”
수경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현실이 버거웠다.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에 죽는 것도 그저 홀로 유유히 떠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병을 짊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찼다. 하지만 어린 자식을 떠나야 한다는 죄책감에 부모를 앞선다는 죄책감이 더해졌다. 구석으로 몰려 버겁고 답답해 숨어버리고 싶었다. 이른 죽음이 이토록 잔인한 것은 죽을 사람의 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기회비용이 있다. 시한부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사고사보다 시간을 벌었기에 더 나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남은 날들을 죄책감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시간을 얻은 대가는 병에게 몸도 마음도 잠식당해 받는 고통이었다.
아버지는 어깨를 떨며 숨죽이며 울다가 과거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술 취해 딸을 때리던 날, 울음으로 범벅이 된 붉은 얼굴로 자신을 죽이라며 벽에 머리를 찧는 딸의 얼굴.
아버지는 애써 노력해봐도 그 딸에게 잘해준 기억이 전혀 없다. 오로지 그 어린 딸을 울리고 괴롭히던 악마 같던 자신의 모습들만 떠올랐다. 잊고 살던 기억까지 쓰나미처럼 그에게 밀려와 그는 몸을 휘청거리다 넘어져 오열하기 시작했다.
문만 열면 그런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겠지만 수경은 그것이 아버지 몫이라는 것을 안다. 수경에게도 이 모든 것이 버거웠기에 아버지를 위해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었다. 20년 만에 부모 자식이 만났을 때, 이것은 모두가 겪어야 했던 일이었다. 새어머니는 수경을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되뇌며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쏟아내야지만 잠잠해지는 감정을 이해했기에 수경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부모의 울음소리를 모두 들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고요함을 가장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의지로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감정들을 잡고 있었다.
얼마 후, 현관문이 열렸고 아버지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이 퉁퉁 붓고 붉어져 있었다. 수경은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죄송해요. 찾아오지 않았던 게 더 나을지도 몰랐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러려고 찾아온 게 아니었어요.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아이들...”
수경은 아이들이란 말에 울컥 목이 메어왔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참았던 눈물이 수경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아버지는 울음이 새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아버지가 수경에게 천천히 다가와 두 팔을 잡았다. 잡은 두 손이 미끄러져 내려가며 수경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다 내가 잘못했다. “
아버지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고 수경도 그 말에 울음이 터졌다.
‘차라리 미안하다는 말을 아버지가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수경은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온 몸을 떨며 우는 노인이 된 아버지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수경에게 한 조각 기억이 떠올랐다. 다리가 아프다고 찡찡거리는 여섯 살 무렵의 자신을 아버지가 등에 업어 주었다.
수경은 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으며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수경의 무릎에 고개를 묻고 울었다.
그렇게 한 사람은 자신을 업어주던 아버지의 등이 처음 기억나 울었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과오들과 그때 미처 보지 못했던 아파하던 상대가 너무도 선명해서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