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머무는 그림자

by Momanf

수경은 여느 때처럼 아이들과 함께 9시쯤 잠이 들었고 새벽 3시쯤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수경이 복통을 느끼기 시작한 건 다시 잠들고 나서 약 1시간 후였다. 수경은 아이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죽여 약이 든 파우치를 들고 방에서 나왔다. 허리를 곧게 펴서 걷는 것도 힘든 복통에 신음하며 주방으로 기어갔다. 입 안에 정신없이 약을 털어놓고 바닥에 누워 배를 움켜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했다. 가족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입을 꽉 깨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몸부림쳤지만 고통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수경은 파우치에 손을 뻗어 주사기를 꺼내 자신의 팔에 찔렀다. 고통에 몸서리를 치며 몸을 비트는 순간, 테이블 다리를 발로 차 그 위에 있던 유리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리잔이 고요한 새벽에 굉음을 내며 깨졌고 파편들이 바닥으로 튀었지만 수경은 수습할 처지가 아니었다. 참고 있던 신음 소리가 거칠어졌다. 죄어오는 고통에 수경은 배를 움켜잡고 이리저리 구르다가 깨진 유리잔 파편에 얼굴과 손이 긁혀 피가 흘렀다. 머리카락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고 수경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안방에서 Ryan과 함께 자던 강아지 시월이가 수경의 소리를 듣고 앞발로 문을 긁기 시작했다. 시월이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수경에게 나가기 위해 문을 핥기도 해 보고 긁기도 해보다 짖기 시작했다. 깊이 잠들었던 Ryan이 그 소리에 눈을 떴다.

“Hey. What’s up, Siwol?” (무슨 일이야, 시월?)

잠이 덜 깬 Ryan이 시월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다가 수경이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Ryan이 문을 열고 주방으로 뛰어 나가자 깨진 유리잔 파편에 얼굴과 손, 다리에 피를 흘리며 배를 움켜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수경이 있었다.

“Sukyeong!”

Ryan은 놀라 그녀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녀 곁에 널브러져 있는 뜯긴 약봉지, 주사기를 보고 그녀가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애썼지만 이번에는 쉬이 고통을 잠재울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Ryan은 수경을 안아 얼른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그녀의 땀과 눈물에 묻어 있던 유리 조각을 털어낸 후, 고통스러워 사지를 떠는 그녀를 안았다. 그녀의 얼굴을 들어 그녀의 젖은 머리를 쓸어내리는데 그녀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Ryan은 눈물을 터트리며 휴대폰을 찾아 119를 눌렀다.

“여보... 세요?”

서툰 한국말을 더듬거렸다.

“아... 파... 요. 내 아내가 너무 아파요.”

곧 수화기 너머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주소를 물어왔고 Ryan은 답했다. 시월이 수경의 볼을 핥았고 그녀는 이미 정신을 잃어 가는 듯 신음 소리가 잦아들었다. Ryan은 그녀가 그대로 정신을 잃을까 봐 두려워 그녀의 볼을 두드리며 깨웠다. Ryan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지 몰라 손까지 떨며 휴대폰을 잡았다. 한국말이 서투른 자신이 이날처럼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던가? Ryan은 수경의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휴대폰을 찾아 나왔다. 수경은 반 의식 상태로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했고 Ryan은 ‘은주’라는 한글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시간은 새벽 4시 30분. 한참 신호가 울렸지만 은주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Ryan은 넋이 나간채로 다시 전화를 걸었고 그제야 잠결에 은주가 전화를 받았다.

“Eunju? I am sorry. It’s me, Ryan. Sukyeong must go to hospital. Could you come here and take care of kids please?” (은주? 미안해요 나 Ryan이예요. 수경이 병원 가야 해요. 와서 아이들 좀 봐줄 수 있어요?)

은주는 Ryan의 말을 듣고 놀라서 벌떡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OK. Ryan. I go.” (알겠어요. Ryan. 가요.)

은주가 서툰 영어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고 Ryan은 수경을 품에 안고 그녀가 의식을 잃지 않도록 그녀의 볼을 손으로 토닥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수경은 Ryan의 무릎에 누워 신음했다. 다행히 곧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구급대원들이 집으로 들 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부산한 소리에 보리가 빼꼼히 문을 열고 눈을 비비며 나왔다.

“엄마?”

보리가 거실로 나왔고 두 명의 구급대원들이 축 늘어져 있는 수경을 들것에 실었다.

“엄마. 엄마.”

보리가 갑작스러운 이 광경에 당황하며 울기 시작했다. Ryan은 보리를 보고 놀라 보리를 안았다. 준이도 환하게 열린 문 틈 사이로 보리가 울자 잠이 깨 눈을 비비며 나왔다. 구급대원들이 들 것에 엄마를 싣고 있는 모습에 준이도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아앙”

두 아이들은 들것에 축 늘어져 실려 있는 엄마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며 울었고 Ryan은 아이들을 안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수경이 가느다랗게 실눈을 떴다. 가늘게 열린 눈 안으로 보리와 준이가 엄마에게 다가오려고 손을 뻗고 울고 있는 모습이 들어와 수경은 울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려고 했지만 손이 들려지지 않을 만큼 무거웠다. 아이들의 모습이 눈물로 흐릿해져 갔지만 우는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려 수경은 마음이 찢기는 것 같았다. 구급대원 한 사람이 Ryan에게 데리고 갈 병원의 명함을 내밀며 나중에 그곳으로 오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병원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는 것을 구급 대원도 금방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Ryan은 병원 이름이 적힌 약봉지를 내밀었다. 수경이 다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 달라는 의미였고 두 구급대원들은 그것에 관해 잠시 대화를 하다가 Ryan에게 말했다.

“OK. I will text you where we can take her.” (네. 우리가 데려갈 수 있는 곳을 문자로 보내줄게요.)

Ryan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수경은 그렇게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고 Ryan은 보리와 준이를 꽉 껴안았다.

“It’s OK. It’s OK. Mommy is sick. She will be OK. Don’t cry. Don’t cry Bori, June.”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아파. 괜찮을 거야. 울지 마. 울지 마 보리, 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Ryan도 아이들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병원으로 갔고 의사 선생님께서 잘 치료해주실 테니 걱정하지 말라 달래며 다시 아이들을 재웠다. 아이들을 재우고 방에서 나오는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든 아이들이 깰까 봐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문을 두드린 사람은 은주였다. 은주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Ryan은 울컥 눈물을 흘렸다. 은주는 그런 Ryan의 등을 두드리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Ryan은 완전히 다 치우지 못했던 유리 파편을 치우려고 주방으로 들어섰고 은주는 바닥에 약봉지, 주사기가 나뒹굴고 핏자국이 있는 것을 보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얼른 Ryan을 도와 청소하기 시작했다.

“Thank you. Eunju. I didn’t know what I can do and who I can call. Just I remembered that you are Sukyeong’s best friend.” (고마워. 은주. 내가 뭘 해야 할지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 몰랐어. 단지 당신이 수경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게 기억났어.)

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children?” (아이들은?)

그녀가 물었고 Ryan은 아이들 방을 포인트 하며 자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Go to hospital. I am here.” (병원 가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은주가 Ryan에게 그렇게 말하자 Ryan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휴대폰과 수경의 휴대폰을 챙기고 차 키를 찾기 시작했다.

“Thank you so much. Eunju.” (고마워요. 은주.)

은주는 두 손을 흔들며 걱정 말라는 제스처로 말했다. Ryan은 병원으로 가기 위해 옷을 대충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이전 08화52. 마지막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