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이 보내준 약도대로 Ryan은 운전해 병원에 도착했다. ‘이곳이 아내가 혼자 다니던 병원이었구나’라는 생각에 입구를 들어서며 Ryan은 먹먹해졌다. 수경은 링거를 팔에 꽂은 채 응급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의사가 Ryan에게 간략하게 수경의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전이가 확장되어 고통이 심해졌고 기존에 쓰던 약보다 더 강한 약을 써 현재는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상태로 잠이 든 것이라 말했다. Ryan은 수경의 곁에 앉으며 그녀의 하얀 손을 잡았다. 많이 수척해진 그녀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Ryan의 따듯한 온기에 수경이 살며시 눈을 떴다.
“Hey. Honey.” (여보.)
수경이 나직이 고개 숙인 Ryan을 불렀다.
“Oh! God! Sukyeong.” (세상에! 수경.)
Ryan이 놀란 눈으로 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I feel ok now.” (나 지금은 괜찮아.)
수경은 Ryan을 보고 미소 지었다.
“Thank you, God.” (감사합니다. 주님.)
Ryan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Where are the kids?” (아이들은 어디 있어?)
수경은 Ryan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Eunju is with them.” (은주가 그들과 함께 있어.)
수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Ryan을 보았다.
“I searched your phone and find out her number. I think I have to get some of important contacts of yours and I really need a translator.” (내가 당신 휴대폰을 검색해 그녀의 번호를 찾았어. 내가 당신에게 중요한 전화번호를 좀 받아둬야겠고 통역자가 필요해.)
수경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Do you remember, Mijung who worked with us at the Wins English school? She wanted to be a doctor.” (당신 우리랑 윈즈 영어학원에서 일했던 미정 기억해? 그녀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어.)
Ryan은 곰곰이 생각하다 미정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I will give you her phone number. She can help you.” (그녀의 번호를 알려줄게. 그녀가 당신을 도와줄 거야.)
Ryan은 수경의 두 손을 꼭 잡았다.
“I calculated how long I can live if the doctor was right.” (의사의 말대로라면 내가 얼마 살 수 있는지 계산해봤어.)
수경이 Ryan 눈앞에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One Month.”
수경이 눈물을 머금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Ryan은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둘은 한참을 아무 말없이 손을 꼭 잡고 서로의 눈만 바라보았다. 눈물이 두 사람의 뺨 위로 흘러내렸다.
“I have a plan. Would you like to hear?” (내게 계획이 있어. 들어볼래?)
수경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고 Ryan이 고개를 끄덕였다.
“According the doctor’s opinion, I think It’s better that I can stay at the hospice hospital. Mijung is working there and I thought about it before. I asked her already and she said I can stay her hospital. I want to live without pain until I die, honey. Mijung is there, and she will explain you everything.” (의사의 소견이라면, 나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지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미정이 거기서 일하고 있고 나는 전에 그것에 관해 생각했어. 미정에게 이미 물어봤고 내가 그녀의 병원에서 지낼 수 있대. 나 죽기 전까지 고통 없이 살고 싶어, 여보. 미정이 거기 있고 그녀가 당신에게 모든 걸 설명해줄 거야.)
고통에 정신을 잃어가던 오늘 아침의 수경을 떠올리며 Ryan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And could you hold off your private class for a month? If you work at the university only, you have more time with kids and me. After finish your class everyday, could you bring kids to see me in the hospital?” (당신 한 달 동안 개인 과외를 미룰 수 있어? 당신이 대학에서만 일한다면, 나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나를 보러 와줄래?)
Ryan은 고개를 끄덕였다.
“I will ask my parents to help you and kids, too.” (당신과 아이들을 도와달라고 부모님께도 부탁드려 볼게.)
Ryan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쓰다듬었다. 수경은 아마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이 모든 것을 계획했으리라. 아니. 매일매일 준비해 왔던 거겠지. Ryan은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까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수경은 그동안 약과 주사로 통제되던 고통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버티며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가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새벽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고통과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또 내일이 당연히 거기 있어줄 것처럼 살다가 오늘처럼 고통을 느끼고 집에서 죽게 되면 그 집에 남겨질 죽음의 흔적이 가족들을 힘들게 할 것 같았다. 지금부터라도 호스피스 병원에 머물며 가족과 거리를 두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어가며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려면 최소한 암성 통증에서 가급적 신속하게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기에 여러모로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는 게 옳은 결정이었다. 고통과 씨름하며 낯낯이 부서지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Honey. Even though I said that I have one month, that’s just the doctor’s opinion. Nothing can be promised our lives. Therefore, I will forget about one month. I will focus everyday. I will live a day by day because a day is present.” (여보, 비록 내가 한 달이라 말했지만 그것은 의사의 소견이야. 어떤 것도 우리 인생을 약속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한 달에 관해 잊을 거야. 매일에 초점을 둘 거야. 나는 매일매일을 살 거야. 하루는 선물이니까.)
수경의 말에 Ryan이 아내를 꼭 껴안았다.
“That’s so true, Sukyeong. Let’s love everyday fully.” (당신 말이 맞아, 수경. 매일 가득 차게 사랑하자.)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매일 잊고 살았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현재에도 인간인 의사의 예상 시간을 당연하게 여겼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면서 내일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어리석고 오만이었다. 산다는 것은 실시간 과거가 되는 찰나이며 인간은 그 반복적으로 과거가 되는 찰나를 살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아는 것은 단지 그 과거뿐이면서도 아침에 눈을 뜨면 다가올 시간은 그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일 뿐이라 자만한다. 하루는 어제와 또 다른 날이고 미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경이로운 선물이다는 뻔한 사실을 시한부인 수경은 마음에 깊게 새긴다. 그래서 남은 날을 계산하기보다 오늘이 축복이고 오늘이 선물임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그 찰나에 집중해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입을 맞춘 후, 서로의 눈을 보며 미소 지었다.
“I love you.” (사랑해.)
수경이 Ryan을 보며 말했다.
“I love you, too.” (나도 사랑해.)
Ryan은 어느 때보다 한 단어 한 단어에 마음을 꼭꼭 눌러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