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들과 Ryan은 오후에 병원을 다녀갔다. 수경은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입을 맞추었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하는 모든 말에 일일이 귀를 기울여 대답해 주었다. 아이들은 많이 웃고 즐거워했다. 떠날 때는 아쉬워했지만 이제 받아들이는 태도로 수경을 꼭 끌어안고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수경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가 같은 병실 청년 재욱을 발견하고는 그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보리와 준이가 너무 예뻐요. 누나”
재욱이 수경이 자리에 앉자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번번이. 아이들 오면 귀찮을 법도 한데.”
“아니에요. 정말 귀여워요. 보리와 준이 오는 시간만 기다려져요. 날마다 그 해맑은 얼굴 보면 행복해요.”
“어쩌면 나이도 어린데 그렇게 아이들을 예뻐하나요? 난 젊었을 때는 아이들이 좀 귀찮았거든요.”
“사실 제가 건강할 때는 교회 어린이부 담당 교사였어요. 아이들이 너무 좋았거든요. 아이들은 그냥 걱정 없이 웃고 천진하잖아요. 어른들은 굉장히 복잡하게 살면서 겉과 속이 다르지만.... 제가 평일에 취업문제로 여기저기에서 깨지는 일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주일 교회에 가서는 아이들의 순진한 말과 순수한 미소에 많은 힘을 받았어요.”
수경은 하마터면 ‘좋은 아빠가 되었을 텐데’라고 말할 뻔했다. 당낭암 말기인 그에게, 그것도 한창나이 25세. 그 꽃 같은 나이에 곧 죽는다는 게 억울할 만도 한데 그는 늘 미소 띤 얼굴이었다.
“재욱 씨 그거 알아요? 늘 재욱 씨는 미소를 짓고 있어요. 그래서 재욱 씨 얼굴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 좋아질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재욱 씨 얼굴에 있었네요.”
재욱이 수경의 칭찬에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감사합니다.”
“많이 힘들죠?”
수경은 재욱의 젊은 나이가 너무 아쉬워 말했다.
“힘든 건 저희 부모님과 누나예요. 사실 저는 하나님 곁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요. 여기 들어오고 나서 통증도 심하게 느끼지 않으니 견딜 만도 하고요. 오히려 제가 가족들을 위로해야 하죠.”
수경의 앞으로 식사가 준비되었다. 이미 식사 중이던 재욱은 씩씩하게 죽을 떠먹었다.
“하나님이 정말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답고 아까운 재욱 씨를 살려줄 법도 하잖아요.”
수경의 말에 재욱이 빙그레 웃었다.
“누나. 우리는 부분만 볼 수 있어요. 전체를 보시는 건 하나님이시죠. 우리는 그분의 크신 뜻을 다 알 수는 없어요.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게 해가 될 수 있고 우리 눈에 나쁜 게 복이 될 수도 있죠. 다 하나님의 계획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에요. 가장 좋은 것만 주시죠. 우리를 사랑하시니까요.”
수경은 재욱의 말이 그저 놀라웠다.
‘미정 씨나 재욱 씨, 미정 씨 어머니는 어떻게 하나님을 이같이 믿고 사랑할 수 있을까?’
신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수경에게 그 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범적인 사람들이었다. 공통점은 표정이 온화하고 맑으며 늘 미소 띤 얼굴이었다. 성실하게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고 이해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삶에 감사를 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서 오히려 얻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교회는 언제부터 다녔어요?”
“음.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일 거예요. 그냥 친구 따라갔어요. 게임도 많이 하고 선물도 많이 주길래 재미있었죠. 그러다가 교회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그 애들이랑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다니기 시작했죠. 그렇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어요. 제 또래뿐만 아니라 중. 고등학생 형 누나들, 대학생, 20-30대 어른들. 정말 다양하게 만나게 되었죠. 제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님과 많이 다퉜어요. 그때 교회에 다니던 형들이나 어른들과 이야기하며 조언, 위로, 이해를 받게 되었어요. 그때, 제 신앙심도 더 깊어졌던 것 같아요. 교회가 없었다면 전 아마 고등학교 때 자살을 생각했을지 몰라요.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수이시고 누나도 두 분의 바람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갔어요. 저에게도 당연히 기대가 컸죠. 두 분은 제가 교회 다니는 것도 못마땅해하셨어요. 공부할 시간에 교회나 다니면서 논다고 생각하셨지만 저는 교회에서 위로를 받으며 견뎠죠. 결국 저는 부모님이 원하시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때부터 사이가 더 멀어졌어요. 취업 걱정하며 힘들 때에도 저를 잡아준 건 하나님 말씀이었어요. 외롭고 힘들고 아플 때에 부모님보다 하나님이 제게 계셨죠.”
“미소 속에 한 번도 그런 걱정은 없이 보였는데... 학창 시절 많이 외롭고 힘들었겠네요.”
수경은 재욱이 동생같이 여겨져 안쓰러운 눈길로 말했다.
“시련 덕분에 하나님을 만났잖아요. 몸이 아파야 의사를 만나는 것처럼 제 마음이 아팠기에 하나님이 제게 오셨죠. 그래서 저는 행복해요.”
수경은 재욱에게서 상처 입고 울먹이던 소년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 재욱을 보면서 생각했다.
‘진짜 미소는 다 울고 난 후에야 지을 수 있는 것이구나. 진정으로 많이 울어 본 사람만이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거구나.’
순간 재욱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누나 미소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시죠?”
수경이 자신의 생각을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누나가 아이들과 웃고 있을 때면 완전히 아이들과 똑같은 얼굴로 웃어요. 누나 아이들 웃는 모습이 누나와 완전 판박이예요.”
“아...”
수경은 재욱의 말에 기쁨이 차올랐다.
“아이들 얼굴 한가득 누나의 아름다운 미소와 웃음이 남겨져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거울을 보면서, 웃는 자기 얼굴들 보면서 누나를 보며 살 거예요. 그러니 엄마가 보고 싶거든 많이 웃으라고 전해두세요. 지금은 무슨 말일지 모를 수 있으니 편지를 남겨 두신다거나...”
수경은 재욱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아. 죄송합니다. 누나를 울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
수경은 얼른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아니. 아니. 재욱 씨의 말이 너무 좋아서.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 왜? 너무 기쁠 때 눈물 나잖아. 그런 종류야.”
재욱은 다행이라며 웃었다.
“재욱의 말이 너무 좋았어. 내 미소가 이제 타인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내 삶이 아름다운 거 맞지? 내 미소와 아이들의 미소가 닮았다는 말 감동이야. 내 미소가 아이들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우리가 지금껏 서로를 보고 많이 웃었기에 닮은꼴이 되었다 여기고 싶어. 그렇다면 나 정말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산 거 맞지? 앞으로 아이들은 내가 그리워질 때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울지 않고 웃겠지? 고마워. 재욱 씨 덕분에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더 생겼어.”
재욱은 두 엄지를 척 수경 앞에 내밀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름다운 미소였다.
비가 그친 후,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있듯 다 울고 난 뒤에 지을 수 있는 진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