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하나님의 딸

by Momanf

적막한 밤이 깊어지자 상념도 깊어져 수경은 몸을 뒤척였다. 폐암으로 고통받는 진태 할아버지의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나 기침도 수경을 힘들게 했다. 그러다 수경은 암성 고통이 밀려옴을 느꼈다. 배가 칼로 도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자 수경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불을 꽉 물었다. 아프면 누르라고 한 버튼을 한번 올려다봤지만 이상한 오기가 발동해 누르지 않았다. 고통이 밀려오더니 쓰나미처럼 또다시 그녀를 잠식했다. 오후에 와서 웃고 간 아이들 얼굴, Ryan 얼굴이 생각났다.

‘싸워보자. 이 통증을 이기면 더 오래 살 수 있을지 몰라. 이런 통증이 죽을 때까지 올 거고 올 때마다 잘 참으면 죽지 않을지 몰라. 하나님. 나 이 고통이랑 싸워 볼게요. 이 고통에서 이긴다면 더 오래 살게 해 주세요. 하루라도 내 아이들, 내 남편 더 보게 해 주세요. 이길 거예요. 이겨낼 거예요.’

수경은 이런 생각으로 침대 시트를 물고 몸을 비틀었다. 금세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수경은 배를 움켜잡으며 울었다. 신음소리가 거세졌고 맞은편에서 점돌 할머니 곁에서 자고 있던 할머니의 남편이 눈을 떴다.

“애기 엄마. 많이 아파?”

할아버지가 간호실로 연결되는 응급버튼을 눌렀고 그 소리에 병실에 있던 사람들도 잠에서 깼다. 곧 간호사와 당직하던 의사가 들어와 수경에게 주사를 놓았고 잠시 후, 수경은 그 끔찍한 고통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수경은 천장을 멍하니 처다 보고 울었다. 시트를 너무 세게 물어 입안이 터져 시트에 피가 묻어 있었다. 진태 할아버지는 커튼을 치고 다시 잠을 잤고 재욱과 점돌 할머니, 할머니의 남편은 수경을 걱정스레 지켜봤다. 모두들 이럴 때 ‘괜찮냐?’ 말조차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욱은 수경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할머니와 그녀의 남편도 다시 자리에 누웠다. 수경은 자신에게로 향했던 시선들이 사라지자 마침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고통이 썰물처럼 밀려 나갔고 수경은 지쳐서 곧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간밤의 소식을 들은 미정이 수경을 자신의 사무실로 초대했다. 수경의 앞에 따듯한 차를 내밀었다.

“어젯밤 힘드셨죠?”

미정이 수경을 보며 말했다.

“네.”

“고통을 느끼시면 제가 누르라했던 버튼 기억나세요? 고통을 느끼는 순간에 바로 눌러야 해요.”

“알아요.”

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왜 안 누르셨어요?”

“참으려고 했어요. 참아보려고 했어요. 참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미정은 수경의 말에 한숨을 길게 쉬며 수경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모르핀이 마약 성분이라 중독될까 봐서요?”

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것도 있고....”

미정은 수경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침묵했다.

“그 고통을 견디면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죽을 때까지 그와 같은 고통이 주어질 테니 이번에 견디고 다음에 견디고 이렇게 계속 견뎌내 싸워서 이기면 하루라도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수경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고통이 견딜만하던가요?”

미정의 질문에 수경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수경 선생님. 지금 배가 불러오죠? 췌장암이 십이지장까지 침범해 장이 꽉 막힌 상태예요. 간과 쓸개, 십이지장까지 모두 전이된 상태예요. 그래서 수경 선생님의 고통은 절대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산통보다 더 지독한 암성고통을 무슨 수로 이겨요? 싸우는 동안 선생님만 지치고 선생님만 상처투성이가 될 거예요. 그리고 그 고통이 결국 죽는 시간을 더 앞당기게 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모르핀 중독을 잘 못 알고 있어요. 약제의 중독은 1만 명 가운데 두 명으로 초보 골퍼가 홀인원 할 확률과 같고,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보다는 훨씬 적어요. 통증이 더 심해지면 어떡하나, 그때 쓸 약이 없는 건 아닐까 걱정하시는 분도 많은데 대부분의 약은 쓸수록 부작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용량을 제한하지만 모르핀은 아무리 써도 통증에 대한 약효가 줄어들지 않아요. 모르핀은 통증에 대한 내성이 없어요. 모르핀은 해독제까지 있기 때문에 용법만 잘 지키면 어떤 약보다 안전합니다.”

수경은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 톤이 높은 미정의 목소리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떠나 진심으로 자기를 걱정하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죽음의 고통은 일종의 폭력과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잠재우는 게 모르핀이니 앞으로 고통이 밀려오면 바로 연락하셔야 해요. 그 고통과 싸우는 것은 죽음을 이기는 게 아니라는 말. 오히려 통증이 죽음을 재촉할 수도 있다는 말. 다시 한번 드리고 싶어요.”

미정도 흥분한 자기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가다듬으며 덧붙였다.

“죄송해요. 수경 선생님 제가 좀 흥분했네요.”

수경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진짜 친구가 걱정돼 화내는 것 같은대요? 기분 좋아요.”

미정도 수경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한층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플라톤이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와인이라고 했다는. 그런데 전 호스피스 의사가 된 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은 모르핀이라고 생각해요. 모르핀은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 주거든요. 그래서 당부하고 싶어요.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을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요. 하나님은 우리가 아프지 않게 죽어가기를, 그래서 죽음의 맨 얼굴을 응시하기를 바랐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요. 죽음의 맨 얼굴은 사실 평화로워요. 다만 통증 때문에 죽음이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왜곡되었을 뿐이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우리의 생각처럼 폭력적이지 않아요.”

그제야 수경은 왜 그토록 미정이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에 간호사실로 연결된 응급버튼을 신속하게 누르라는 말을 강조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던 그 고통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제가 염려하고 걱정했던 부분을 너무 잘 설명해주어 고마워요. 그리고 모르핀이 있으니 남은 날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물었다.

“조금 있다 아이들 오죠?”

미정이 물었고 수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가방 안에서 립스틱을 꺼냈다.

“어제 화장품 사러 갔다가 제거 사면서 이 색깔 수경 선생님께 잘 어울릴 것 같아 한번 사봤어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수경이 받아 들고 립스틱을 열었다. 분홍색이었다.

“너무 예뻐요. 어머나. 내가 좋아하는 색인데.”

“얼굴색이랑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좋아하는 색이라니 다행이네요.”

수경이 웃었다.

“저 거울 좀 빌려주세요. 여기서 발라보고 싶어요.”

미정이 웃으며 손거울을 내밀었고 수경이 립스틱을 바르고 미정을 보며 웃었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진짜 이쁘네요.”

“빨리 아이들 보여주러 가야지. 머리도 한번 더 빗고. 고맙습니다. 진짜 고마워요. 여러 가지로 다.”

미정은 미소로 답했다. 수경은 문을 닫고 나와서 립스틱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눈을 감았다. 미정이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병실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눈을 뜨고 막 걸음을 떼려는데 아이들과 Ryan이 병원 입구로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보리야. 준이야.”

수경은 여느 때 보다 더 밝은 미소로 아이들에게 두 팔을 벌리며 다가갔다. 아이들이 달려와 수경에게 안겼다.

“엄마. 립스틱 발랐어?”

예쁜 걸 좋아하는 보리가 수경을 보고 말하자 수경이 아이들에게 입술을 더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 무릎을 낮추어 주었다.

“보리야. 너도 발라줄까? 이쁘지?”

“응”

“나도. 나도.”

준이도 보리를 따라 수경 앞에 입술을 내밀었다.

“그래. 식당 가서 점심 먹고 발라줄게.”

수경은 일어나 Ryan과 포옹하고 입을 맞췄다. Ryan의 입술에 분홍 립스틱이 묻자 수경은 웃으며 그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You look beautiful. Sukyeong.” (당신 아름다워.)

수경은 Ryan의 말에 기분 좋아 환하게 웃으며 그의 팔짱을 끼고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 식사를 하며 가족들의 얼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수경은 아이들의 미소가 자신을 많이 닮았다는 재욱의 말이 떠올랐다. 또 수경을 만난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인연이고 혼자 고통을 짊어지지 말고 대신 싸워주실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던 미정의 말도 떠올랐다.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 말씀도 떠올랐다.

“사랑하는 하나님. 그동안 길을 잃고 헤매던 주님의 어린양이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딸을 보듬고 안아주자 그동안 고생했던 짐 주님의 귀하신 두 손으로 내려주오솝서.”

미정의 어머니의 기도 소리와 그때 따듯하게 수경을 안아주던 포근한 느낌도 떠올랐다.

‘많이 힘들었지? 내가 다 안다. 내가 너를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었다. 네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네가 어떠한 마음으로 네 인생을 살아왔는지 내가 다 보았다. 너의 눈물, 너의 한숨, 너의 땀 모두를 기억한다. 내 딸아, 너는 혼자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나는 너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기대어라. 내 어깨에 그 무거운 짐을 벗고 기대어 쉬어라. 편안하게 자거라. 네가 잠든 동안에도 나는 네 곁에서 너를 지키리라. 내 딸아. 여기가 네 집이다. 잘 돌아왔다. 이제 편히 쉬어라.’

그때 들었던 말도 생생히 떠올랐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어요 이제?”

미정의 어머니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네. 믿어요. 내 아버지를 믿어요. 이곳이 천국임을 믿어요. 이제는 고통 속에서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음을 믿어요.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제게 가장 좋은 걸 주시기에 나는 이제 걱정 없어요.’

사람들은 인생의 일부만을 보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전체를 보신다던 재욱의 말도 떠올랐다.

‘제가 지금 이렇게 죽는 것도 다 어떤 의미가 있는 거겠죠? 그리고 내 아이들을 저보다 더 잘 지켜주실 거죠? 재욱 씨처럼 인간적인 부모보다 더 지지하고 사랑하는 엄마가 돼주실 거죠?’

가족들의 미소를 바라보며 수경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와 꼭 닮은 우리 가족의 미소 속에 이제 제가 남겨진다는 것을 알았어요. 죽음은 이별이 아니죠. 아이들과 Ryan은 저보다 하나님이 더 잘 보살펴 주실 테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곳이 천국이네요. 내 아버지, 나의 주님.’

수경은 Ryan이 가지고 온 새어머니가 아이들을 위해 싸 준 떡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교회에서 떡이 예수님의 육신이라는 말, 포도주가 예수님의 보혈이라 했던 말과 그것을 먹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던 성찬식이 떠올랐다. 수경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물만 마시고 있다가 그 떡을 집어 들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Ryan, Could you buy red wine before you leave?” (여보, 떠나기 전에 레드와인 좀 사줄래?)

Ryan은 의아해하며 수경을 쳐다보았다.

“I think a little bit red wine would help my sleep.” (내 생각에 조금의 레드 와인이 내 잠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Ryan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수경은 아무도 모르게 레드와인을 한잔 컵에 따르고 그것을 마셨다.

그리고 그날 밤 병원에 들어온 이래 가장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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