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We all have limited time

by Momanf

수경의 집으로 아침 일찍 꽃, 케이크, 각종 음식 배달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은주는 그것들을 책임지고 분주하게 파티 준비를 시작했다. 수경이 웨딩 촬영처럼 파티를 사진 속에 담아두고 싶어 했기에 은주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스튜디오에 촬영 약속도 잡아 두었다. 은주는 바쁜 와중에도 사진 촬영 기사와 확인 전화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미정은 남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수경이 보고 싶어 하는 모두를 초대했다. Ryan은 미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 Julie와 Daniel을 온라인 미팅 방으로 초대했다. 밤낮이 바뀐 시간이라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모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간밤에 고통스러워 모르핀을 맞고 잠이 들며 수경은 파티 당일 컨디션에 대해 걱정하며 잠들었다. 정말 몸이 괜찮아진 건지 준비해둔 파티에 꼭 참석해야만 하겠다는 정신력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아침에 컨디션이 좋았고 수경은 감사했다. 미정과 함께 수경이 집으로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한참 은주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경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강아지 시월이 와도 한참 입을 맞추고 쓰다듬으며 그동안의 그리움을 나누었다. 시월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수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녀의 발뒤꿈치를 따라다녔다. 수경이 주방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반가워하며 엄마를 큰 소리로 불렀다.

“엄마!”

“내 새끼들 밥 먹고 있었구나.”

수경은 아이들 한 명 한 명 품에 안으며 볼을 쓰다듬었다.

“은주야, 또 이렇게 신세를 진다. 아이들 아침까지 챙겨 먹이랴 많이 바빴지? 고마워.”

아이들이 먹고 있는 반찬을 보며 수경은 은주가 방금 만든 따뜻한 요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야. 아침에 우리 애들 먹이려고 준비해둔 거 그냥 싸왔어. 우리 애들은 오늘 자기 아빠랑 고모랑 놀이 공원 간다고 좋아하며 집을 나서더라. 너는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

“응. 다행히 괜찮아.”

수경이 보란 듯 밝게 미소를 지었다.

수경은 오랜만에 안방도 들어가 보았다. Ryan은 수경이 집에 온 것도 모르고 안방에서 가구를 닦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Wow. I didn’t use this bed almost for 5 years.” (와. 내가 이 침대를 거의 5년 동안 쓰지 않았네.)

아이들의 임신기간에는 소파에 앉아서 잠들었고 태어나면서 아이들과 다른 방에서 잤기에 정말 오랜만에 안방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수경은 새삼 놀라며 말했다.

“Oh, you are here. Sorry, I couldn’t hear you.” (오, 당신 왔구나. 미안해, 못 들었어.)

수경이 Ryan을 안았다.

“Mijung said that I have to rest until party starts. Honey. Could you change kids clothes? I will take out their clothes.” (미정이 내가 파티 시작할 때까지 쉬라고 했어. 여보. 당신이 아이들 옷 좀 갈아입혀 줄래? 내가 꺼내 놓을게.)

“Sure. Relax in here. I almost finish to clean up this room.” (물론이지. 여기서 쉬어. 이 방 청소 거의 끝났어.)

수경은 아이들 옷을 들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청소를 마친 Ryan에게 옷을 건넨 후, 침대에 누웠다. Ryan은 그녀의 몸 위로 얇은 시트를 덮어주었다.

“Thank you. I am sleepy.” (고마워. 졸려.)

Ryan은 시계를 확인했고 오전 10시였다.

“You have 2 hours. Relax.” (당신 2시간 여유 있어. 쉬어.)

수경을 따라다니던 시월이가 수경이 침대에 눕자 폴짝 뛰어올라 수경 팔 밑을 파고들었다.

“You want to sleep with mommy? You must miss me a lot, Siwol. So do I.” (너 엄마랑 자고 싶어? 너 엄마 많이 그리웠지, 시월아. 엄마도 그래.)

수경은 강아지 시월에게 입을 맞추고 눈을 감았다. Ryan은 얼른 안방 청소 마무리를 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은주는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자 소파에 앉혀 TV를 보게 했다. 그리고 식탁 위를 치우고 설거지를 시작했고 미정은 준비해온 남해여행 사진을 액자에 넣고 있었다. Ryan은 미정의 곁에 앉아 사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Do you like it?” (맘에 들어요?)

미정이 물었고 Ryan은 수경의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How was she yesterday?” (어제 그녀는 어땠어요?)

간밤에 수경이 아팠다는 것을 미정에게 전해 들은 Ryan은 조심스레 물었다.

“She was not good, but after a shot, she became calm and could fall a sleep soon. Ryan. I know this is really hard for you but you must prepare. I think she can’t make that much.”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주사를 맞고 곧 차분해져서 잠들었어요. Ryan. 당신이 정말 힘들겠지만 준비해야 해요. 내 생각엔 그녀가 오래 버텨주지 않을 것 같아요.)

벌써 10월 31일. Ryan도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정은 그동안 수경과 죽기 전에 준비해두어야 할 것들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고 Ryan에게도 이 사실을 설명하며 상담을 해왔었다. Ryan은 침착하게 미정을 통해 전해 들은 수경의 의견에 동의하며 자신과 아이들의 남은 삶을 준비했다. 또 하루하루 수경에게 더 많이, 더 자주 사랑을 표현하며 그녀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도 했다. Ryan은 수경 없는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고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는 일이 수경의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에 3개월 정도 한국에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 기간 동안 한국에서 정리할 집 문제, 퇴직으로 관련된 보험이나 급여문제, 이사 문제를 처리하며 미국에서 직장을 알아볼 계획을 세워 두었다. 혼자 사는 큰 누나 Shelly와 의논 끝에 그녀의 집에서 미국 정착 준비를 하기로 했다. 이 모든 홀로서기 과정에서 그는 아내의 자리가 얼마나 컸었던가를 새삼 깨달았다.

Ryan은 옷을 갈아입혀주기 위해 아이들을 방으로 데려간 사이 수경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도착했다. 미정은 오늘의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기에 사진 디스플레이가 끝나자 도착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전화로 부탁했던 편지를 확인했다. 수경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에 대해 잊지 않고 전달하기를 바래서였다. 보리와 준이는 어젯밤 아빠와 함께 엄마에게 주려고 하트를 그렸다며 미정에게 보여 주었다. 그림 속에는 네 명의 가족과 시월이가 있었다. 삐뚤하긴 했지만 정성 들여 적은 자신들의 이름과 mom이 적혀 있었다.

“보리, 준이. 엄마는 많이 아파서 지금 병원에 가서 너희들과 함께 집에 없잖아? 그런데 이제 병원에서도 엄마를 볼 수 없을지 몰라.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너희들은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생각주머니.”

보리는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준이도 보리를 보며 심장에 손을 얹었다. 미정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배꼽을 누르고 말하면 우리 엄마가 들을 수 있어.”

보리가 미정을 올려다보며 똑 부러지게 말하고는 티셔츠를 들어 미정에게 배꼽을 보여주었다. 미정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준이는 “배꼽 배꼽” 하며 장난을 쳤지만 늘 어른들의 얼굴 표정을 살피는 보리는 오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웃지 않았다.

“나 엄마 보고 싶어.”

갑자기 보리가 그렇게 말했고 미정은 당황해 보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 지금 좀 자고 있으니까.... 음. 보리야, 이모가 예쁘게 머리 묶어 줄까?”

보리가 고개를 끄덕였고 미정은 머리를 묶어주며 아이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11시 30분쯤 부모님이 도착하셨다. 아이들은 반가워하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기 방으로 손을 잡고 끌고 가 놀기 시작했고 수경의 친구들은 방으로 와 부모에게 인사했다. 새어머니와 수경의 친구들이 안부를 나누는 동안 아버지는 말없이 아이들 노는 것을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은주는 케이크 4개의 상자를 열었다. 그때 친구 혜진이 주방으로 나와 은주를 도왔다.

“케이크가 4개네요?”

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혜진을 봤다.

“네. 하나는 수경이가 태어난 생일 케이크, 또 하나는 Ryan과 결혼 기념, 아이들의 생일, 마지막 하나는 죽음으로 완성하는 수경을 기념하기 위해 서래요.”

둘 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슬프긴 해도 장례식보다 좋은 거 같아요. 그죠? 수경이 말대로 당사자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가슴속 이야기를 나누고 수경이에게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분들도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네요. 모두 수경이를 사랑했고 수경이가 사랑한 사람들이라 어쩐지 오래 알고 지낸 것만 같아요.”

은주가 혜진을 보며 말했다.

“사실 저희 세명은 지난번 마지막으로 수경이랑 식사하면서도 이렇게 심각하게 아픈지를 몰랐어요. 요새 왜 이렇게 수척해졌냐 물으니 다이어트를 한다는 거예요. 우린 너무 심하게 다이어트하지 마라고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미정 씨 전화를 받고....”

혜진은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수경이가 암에 걸려 곧 죽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나중에 수경이랑 통화하니 그날 너무 재미있었고 웃는 얼굴이 너무 보기 좋아 그렇게 웃으며 헤어지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이해가 되고 그러면서도 서로 사느라 자주 못 본 시간들이 후회스럽고. 뭐가 그렇게 바쁘다 했었는지. 늘 모이면 애들 키워놓고 더 자주 보자, 꼭 여행 한번 가자고 약속했는었는데.... 말뿐이게 되었네요. 여전히 수경이가 죽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혜진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네. 저도 그래요.”

은주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때 미정이 주방으로 나와 말했다.

“12시네요. 모두 오셨으니 제가 안방에 들어가 수경 선생님 상태 확인하고 모시고 나올게요. “

두 사람은 미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마침 주방을 지나가다 미정의 말을 들은 지원도 긴장한 표정으로 마시던 물 잔을 들고 개수대로 가 컵을 씻기 시작했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하시면 돼요. 눈물 나면 눈물 나는 대로. 웃음도 참지 말고 눈물도 참지 않아도 돼요. 수경 선생님은 모두와 가장 진실하게 울고 웃으며 이 파티의 시간을 보내길 바랬어요.”

혜진은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수경이 곧 나온다는 것을 알렸고 모두 조금씩 긴장하며 거실로 나와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미정은 방문을 노크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수경이 그 소리에 눈을 가늘게 떴다.

“기분은 좀 어때요?”

미정이 침대로 다가오며 조심스럽게 수경에게 물었고 수경은 천천히 일어나며 대답했다.

“잘 자고 났더니 컨디션 최상인데요?”

수경은 미정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미정은 그 말에 안심을 했다.

“시간이 다 되었네요. 초대한 손님들 모두 오셨어요. 주인공은 좀 늦어도 되니 천천히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제가 화장하는 걸 도와드릴까요?”

수경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화장은 안 해도 돼요. 그냥 자연스러운 내 얼굴로 모두들 볼래요.”

미정은 수경의 말을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경은 문고리에 걸어두었던 준비한 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수경이 말끔히 세수하고 꽃이 잔잔하게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너무 예뻐요.”

미정이 감탄했다.

“다행이네요. 마지막 모습이 이쁘길 바랬는데.”

“그리고...”

수경은 곁에 있던 가방을 들었다. 얼마 전에 가족여행에서 Ryan이 주었던 가방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가방 한번 들고나갈래요. 결국은 안방에서 거실이지만. 이 가방과 함께 많은 사진을 찍어두고 싶어요. 나중에 우리 보리가 내 생각하며 이 가방 들고 다닐 수 있게.”

“물론이죠. Ryan도 아마 선물한 보람을 느낄 거예요.”

수경이 방문을 열고 가방을 어깨에 메고 미정과 함께 거실로 나갔다. 사람들은 수경을 보며 반가움에 미소를 지었다.

“모두 참석해줘서 고마워요.”

수경은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 모니터에 뜬 미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들 수경이 나타나자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수경은 아이들 사이에 앉으며 아이들을 안고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사진사는 그런 모습을 부지런히 셔터에 담고 있었다. 색색의 꽃이 집안 곳곳에 장식이 되어 있었고 케이크 네 개가 놓인 테이블 주위로 새어머니가 직접 준비해오신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실 한 중간에 놓인 TV 옆으로 가족 여행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미정이 그 TV 앞에 서서 사람들을 마주 보며 인사했다.

“모두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경 선생님께서 생애 가장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오늘 이곳에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미리 준비하신 마음을 수경 선생님께 들려주세요. 모든 분들이 편지로 적어 오셨으니 순서를 말씀드릴게요. 동네 친구 지원 씨, 초등학교 친구들 혜진, 명경, 은정 씨, 그다음은 고등학교 친구 은주 씨, 저, 미국에 계시는 수경 선생님 시누 두 분, 부모님, Ryan과 아이들입니다.”

미정은 말을 마치고 컴퓨터 Zoom에서 지켜보는 미국 가족들과 친구를 위해서도 영어로 전달했다. 지원을 시작으로 친구들과 미정은 수경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하며 함께 추억을 나누었다. 살면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수경이 큰 의지가 되었고 감사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모두들 편지를 읽으면서 목이 메어 잠시 편지를 읽어 내려가지 못하거나 한참을 목놓아 울기도 했다. 사람들은 편지를 읽는 내내 흐느끼기도 했고 추억을 회상하며 함께 웃기도 했다. 은주의 차례가 돌아와 편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경아,”

은주는 수경의 이름을 부르고는 그녀를 보며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꼭 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열여덟 꽃다운 나이를 떠올려 보았어. 우리 참 어렸더라? 그때는 우리가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지, 어떤 이상형을 만나 사랑하고 싶은지, 함께 어디로 여행 가고 언제쯤 같은 동네에서 살지, 참 많은 꿈을 꿨고 우리는 그 꿈들을 나누었어. 우리 나이 서른아홉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꿈들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더라. 평생 살 것처럼 계속 나중으로 미뤄 두었던 꿈들. 결국 지킬 수 없는 꿈들로 남게 되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비록 우리가 꿈꾸던 것들은 다 이루진 못했지만 죽을 때까지 우정 변치 말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만은 지킬 수 있었더라. 그래서 정말 다행이야.”

은주는 눈물을 흘렸다. 잠시 울음을 참으려고 눈을 감고 침묵했고 수경도 은주를 바라보며 울었다.

“우리가 나누었던 21년의 이야기들이 살면서 참 많이 그리울 거야. 우리는 늘 했던 얘기들을 하고 또 하며 참 많이 웃었는데.... 이제 그 얘기들을 반복하며 함께 웃을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게 살면서 내내 내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아. 하지만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을 기억하며 너를 잊지 않을 테니 최소한 내 기억 속에 너는 영원히 나와 함께 살아가리라 믿을게. 모든 것이 그저 고맙다 내 단짝 수경아.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시간이 다해 죽게 되면 너를 만나는 것이라 여기고 기쁘게 기다릴게. 그때는 꼭 네가 나를 데리러 와주라. 우리 그때 못다 한 남은 생의 이야기를 또 지겹도록 나누고 반복하며 웃자.”

은주가 눈을 감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너도 네가 가는 그곳에서 이야기 많이 쌓아둬라. 나도 여기서 에피소드 많이 만들어 가져 갈게. 우리 다시 만나 밤새도록 못다 한 이야기 나누자. 내 친구 수경아, 나는 너의 힘든 시간을 알기에 그 시간 속에서 견뎌내 지금의 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 네가 늘 자랑스러웠어. 친구였지만 네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나가는 모습에 존경심을 느꼈다는 것을 이제와 고백할게. 사랑해. 정말로 많이 사랑해. 너는 내가 죽을 때까지도 내게는 영원한 단짝 친구야.”

은주가 편지를 접으며 수경을 보았고 수경이 은주에게 두 손을 뻗으며 일어나 그녀를 안았다. 둘은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둘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눈 후, 자기의 자리로 되돌아갔고 다음 차례인 미정이 편지를 들고일어났다.

“우리가 약 5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났던 서점이 떠올라요. 우리는 그전에 함께 일한 적은 있지만 그리 친하게 지내진 못했죠. 그날 선생님이 아프다고 제게 고백했고 선생님은 하나님이 있다면 따지겠다며 저희 교회에 처음 가시게 되었죠. 따지러 간 교회에서 선생님은 누군가가 선생님을 껴안고 위로하시는 느낌에 사로잡혀 많이 우셨다고 하셨죠? 그때 선생님께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셨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예정된 것이었어요. 제가 일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저는 참 많이 배워요. 호스피스 뜻이 여관이란 뜻인데 긴 여행 떠나시는 손님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다 가시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많은 분을 만나 삶을 배우고 있지만 수경 선생님이 더욱 특별한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암을 받아들이는 선생님은 그 고통들과 대적해 싸우는 대신 그것들을 통해 지난 과거와 화해하고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셨어요. 저는 그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에 잠식되기 일쑤죠. 환자들의 불안을 돕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건넸지만 사실 저 조차 죽음은 두려웠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고통스러웠던 과거나 두려운 죽음을 담대히 받아들이는 전사 같았어요. 죽음마저 삶으로 완성시키는 이 파티를 계획하시는 것에도 놀라웠고 진짜 존경스러웠어요. 과거의 아픔이나 암의 고통, 죽음 따위가 선생님을 쓰러 뜨리기는커녕 선생님이 오히려 그것들을 밟고 위엄 있게 올라서 계셨어요. 남해 가족여행을 통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모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을 봤어요. 제 마음에 여전사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 있을 거예요. 삶을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미정은 편지 낭독이 끝나자 수경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았고 수경은 미정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두 시누들도 차례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비록 영상이었지만 사랑하는 동생인 Ryan의 아내가 되어 주었고, 아름다운 아이들 보리와 준이를 낳아주어 감사하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수경에게 잘 전달되었다. 눈물과 함께 편지를 읽으며 그녀들이 얼마나 수경을 사랑하는지 고백했고 다시 한번 수경에게 조카들과 Ryan을 잘 보살피겠노라 약속했다. Shelly는 모두가 울고 있는 것을 보자 농담을 해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마침 자신이 이혼도 했고 아이들도 모두 떠나 집안이 빈 둥지처럼 쓸쓸했었다고 말했다. 우울증으로 알코올 중독에 걸릴 직전에 Ryan과 쌍둥이들이 미국에 오게 되었다면 수경에게 고맙다고 실없는 농담을 했다. 수경은 재치 있는 그녀의 농담이 너무 마음에 들어 큰 소리로 웃었다.

“자. 이제 부모님.”

미정의 말에 이미 눈물을 많이 흘린 새어머니가 편지를 들고일어났다.

“처녀의 몸으로 네 아버지에게 시집와 너를 만났을 때, ‘비록 너는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내 가슴으로 낳은 딸이다라고 생각하자’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막상 내 배 아파 자식을 낳고 보니 내 새끼가 더 이쁘더라. 내가 참 어른이었지만 모자라서..., 너희들을 차별했었다. 미안하다 수경아.”

새어머니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다시 찾아와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을 때, 내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나는 네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네가 너무 잘 살아 주어 고맙기만 한데.... 너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네가 아프다고 했을 때, 다 내 잘못만 같았다. 내가 키울 때, 너를 신경 써주지 못한 것 같아서, 좋은 걸 먹이지 못하고 키운 것 같아서, 네 한 많은 마음 들어주지 못해 병이 낫나 싶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것은 네가 아버지한테 맞을 때, 너를 막아주지 못하고 맞게 해서 네가 그 큰 병에 걸린 것 같아 내가 면목이 없었다. 그때는 내가 어른인데.... 너한테는 유일한 어른이었는데.... 나도 네 아버지가 겁이나 어린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내 새끼였다면 목숨 걸고 내가 막아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많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러니 계모 소리를 듣는가 보다.”

새어머니가 목놓아 울자 미정이 티슈를 건네며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새어머니는 간신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수경을 보며 말했다.

“다음번에 다시 태어나거든 꼭 내 딸로 태어나라. 내가 최선을 다해 너를 지켜주마. 너를 공주같이 키우마. 고생 안 시키고 눈물 안 흘리게 키우마. 너무너무 미안하다 수경아. 네게 미안한 이 마음을 보리 준이에게 갚으며 살게. 우리 보리 준이에게 네게 못다 한 몫까지 최선을 다할게. 내가 힘닿는 데까지 네 금쪽같은 이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할게. 맛있는 것 많이 해먹이고 누가 우리 보리 준이 괴롭힐라 치면 내 목숨 걸고 막아줄 테니 아이들 걱정하지 마라 수경아. 어린 너를 지켜주지 못한 이 죄 많은 어미를 용서해다오. 사랑한다.”

새어머니는 편지를 거머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울었다. 수경도 눈물을 흘리며 새어머니에게로 걸어가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런 말 마세요. 어머니는 저를 정말 잘 키워주셨어요. 감사해요. 제가 어머니 입장이 되어도 어머니보다 더 잘할 수 없었을 거예요. 원망하지 않아요. 어머니도 그때 아버지가 무서웠잖아요. 어머니 마음 다 알아요. 그러니 부디 죄책감 갖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보리 준이 잘 보살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정말 어머니께는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둘은 한참 껴안고 울었다. 두 사람의 우는 모습에 아버지도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마음을 진정시킨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새어머니는 망설이는 아버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수경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라고 용기를 주었다.

“수경아, “

아버지는 수경을 차마 보지 못했고 편지를 잡은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네가 아픈 거는 다 내 책임이다.”

수경의 마음속에 ‘쿵’ 소리가 났다. 그 말을 들을까 두려워했었다.

“내가 그때는 미쳤었다. 내가 정신 나간 인간처럼 인생을 마구 살았다. 그래서 너의 친모도 떠났고 어린 너에게 사랑은커녕 너를 때리기만 했었다. 술을 마시고 내 인생이 불행한 탓을 어린 너와 네 엄마에게 한 것이었다. 그때는 나는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부모에게 사랑 한번 받지 못하고 집을 나가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교도 가지 못하고 일만 했던 너를 생각할 때마다 내가....”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하다 수경아. 내가 아비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하다. 자격 없는 아비 밑에 태어나 고생시켜 너무 미안하다. 인생을 시궁창으로 만든 건 모두 다 내 선택이었음을 다 늙고야 깨달았다. 이런 못난 아비를 찾아와 용서해주어 고맙다.”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걱정마라. 내가 잘하마. 수경아.”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수경을 쳐다보았다.

“내가 너를 아프게 한 죄인이다. 지옥에 가서 그 벌을 달게 받으마.”

아버지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고 수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아버지. 아버지도 그때는 뭘 잘 몰랐던 거예요.”

수경이 아버지에게 다가와 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잘못한 일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고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용기 있는 사과에 제 마음이 다 풀어졌어요 아버지.”

수경은 조심스레 아버지를 안았다.

“아버지.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수경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수경의 기억에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그렇게 그녀를 어루만져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경은 그런 아버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얼굴을 기대 울었다. 모두들 한참을 그렇게 함께 울었다. 잠시 후, 미정이 앞으로 나와 분위기를 수습했다.

“보리, 준이도 엄마에게 줄 편지 준비했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Ryan이 아이들의 그림을 들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도왔다. 보리가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 이건 엄마 얼굴이야. 엄마 얼굴이 너무 예뻐서 꽃을 그렸어. 그리고 엄마가 무지개를 좋아해서 무지개 그린 거야. 빨주노초파남보야.”

수경은 눈물로 젖은 얼굴을 손으로 닦아내고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고마워 보리야. 어쩜 이렇게 잘 그렸을까? 엄마 예뻐서 꽃을 그려줬다니 너무 근사해.”

준이는 그림을 들고 멀뚱하게 서 있자 수경이 물었다.

“준아, 그림 뭐 그린 거야? 엄마야?”

준이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보자 부끄러운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잘 그렸네? 그 옆에 건 뭐야?”

“로켓”

“로켓?”

수경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응. 엄마랑 준이랑 보리랑 아빠랑 시월이랑 타고 달에 가는 거야.”

준이가 말했다.

“우와. 정말 멋있다.”

수경은 두 아이에게 입을 맞추었다.

“보리와 준이가 엄마를 위해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주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수경은 다시 한번 두 아이들을 품에 꼭 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Ryan이 편지를 들고일어났다.

“Hey. My love, my best friend, Sukyeong.” (헤이. 내 사랑, 나의 베스트 프렌드, 수경)

Ryan은 수경을 한참을 보았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울기 시작했다.

“When I came to Korea first time, it didn’t mean that much to me. I just wanted to experience something new in my life and it changed my whole life. I met you, fell in love to you, made a home with you, and had children. I experienced everything new in Korea. Korea is special and Sukyeong, you are special and the best in my life. Sometimes, I was not the best husband to you, and I am regretting about that. I should have tried to understand more, and I should have tried to speak Korean better. I am sorry that it was not fair to you speaking only my language.”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그것은 내게 별 의미가 없었어. 나는 그저 내 인생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길 원했고, 그것이 내 인생 전체를 바꾸었지. 나는 너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가정을 이루었고 아이들을 가졌어. 나는 한국에서 그 모든 새로운 경험들을 했지. 한국은 특별하고, 수경, 내 인생에서 당신은 특별하고 가장 최고야. 때로 나는 너에게 최고의 남편은 아니었고 나는 그것을 후회해. 나는 너를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고 한국말을 더 잘하길 노력했어야 했어. 당신이 내 언어로만 말한 것은 공평하지 못했어, 미안해.)

Ryan은 수경의 눈을 보며 다시 한번 “Sorry”라고 말했고 수경은 고개를 저었다.

“I regret a lot of stuff, but I know I must stop it. Instead of focusing on what I can’t do, I need to focus what I can do right now. Sukyeong, I know that kids are the most your concern, but don’t worry about it, O.K? I will do my best because I don’t want to feel regret like now anymore. I will do my best for your and my kids.” (나는 많은 것을 후회 하지만 그만둬야 한다는 걸 알아. 내가 하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하지. 수경, 당신의 가장 큰 걱정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걱정하지 마. 알았지? 나는 지금처럼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지 않기에 최선을 다할 거야. 당신과 나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할게.)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Sukyeong, I love you. Thank you for coming in my life. You are the best happening in my life.” (수경, 사랑해. 내 인생에 와줘서 고마워.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야.)

Ryan은 편지를 다 읽고 종이를 접었다. 그리고 수경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I love you, too. Ryan.” (사랑해. Ryan.)

수경도 나지막하게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을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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