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수경이 사람들에게 그녀의 마음을 전해 줄 차례였다. 수경은 몸이 불편해 자리에 앉은 채, 준비해 온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모두를 둘러보며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보리와 준이는 친구들의 무릎 위에 앉아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사진사는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세워 그녀의 영상을 담을 준비를 끝낸 후, 다른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저를 위해 모두 여기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내 인생에서 함께 해주셨던 고마운 분들, 내 삶 속에서 가장 의지했고 사랑했기에 여기 오신 분들은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흔히들 죽음을 우리 인생에서 떨어져 나가는, 떠나는 여행으로 비유하지만 저는 죽음이 우리 삶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은 제 삶의 완전한 목적지이며 제 인생이 완전히 완성되는 장소입니다. 저의 시작부터 말해볼까 해요? 저는 보건소에서 1981년 3월 5일 새벽 4시 40분에 태어났어요. 탄생은 저에게 그저 우연 같았고 그때 미성숙하셨던 아버지도 그저 제게 잘못 걸린 더러운 팔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제 운명을 아주 많이 원망했었죠. 제가 갖지 못한 가정과 좋은 부모님에 대한 동경이 컸고 바람이 컸어요. 그 바램은 어느새 소중한 가족을 만들고 싶은 꿈이 되어버렸죠. 그 꿈을 가지고 아무것도 없이 스무 살에 집을 나왔어요. 저에겐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때라 콤플렉스가 심했었어요. 콤플렉스라는 것은 자기의 바램이 실현되지 못했을 때, 갖는 감정이죠. 하지만 꼭 콤플렉스가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자상하고 나를 많이 사랑하는 부모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게 했고, 내가 갖고 싶어 했던 물질에 대한 욕망은 나를 게으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게 했으며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주어진 상황과 맞닥드릴 때면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저의 바램들이 하나씩 실현됨으로써 내 마음속에 열등감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어요. 하나, 둘 크고 작은 꿈이 이루어 지자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꿈을 향해 수많은 선택을 해왔어요.”
수경은 말을 멈추고 긴 숨을 한번 내뱉었다.
“5월 초쯤, 의사에게 시한부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그리고 제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죠. 돌아보니 원망하고 미워하기만 했던 부모라는 운명이 오히려 저를 꿈꾸게 했고 그 꿈을 열망해 최선을 다해 부지런하게 살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시련인 줄로만 알았던 내 운명이 사실은 나를 단련시키고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도요.”
수경이 말을 멈추고 Ryan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미정이 Ryan에게 통역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더욱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2012년 7월 12일. 나의 가장 큰 꿈이던 소중한 가정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우리의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애정결핍으로 상처받을까 봐 오랫동안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단단한 껍질들이 나를 단단하게 에워싸고 있었어요. 그 단단한 알 속에 나를 숨겨두었기에 저 조차도 스스로가 어떤 상태인지 미처 몰랐던 것 같아요. 남편은 내가 알던 세상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데려다 주려 했지만 작은 세상에서 발버둥 치며 살았던 나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얼마나 단단한 거짓말로 성숙한 척하고 살았는지 껍질을 깨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껍질을 깨고 나온 나는 완전히 아기 새였어요. 알을 깨고 나온 새가 가장 처음 본 사람을 어미로 여기듯 저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배워야 했지요. 아내라는 존재의 실상이 아기새였으니 남편은 얼마나 충격적이고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남편은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상처를 감추고 콤플렉스를 감추려고 열심히 만들어 온 껍질들을 이해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위로해 주었어요. 남편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안전한 곳, 마음 편히 쉴 곳인 내 집을 만들어 주었어요. 그 둥지에서 나와 Ryan을 꼭 닮은 우리 보리와 준이 태어났어요.”
수경은 보리와 준이를 쳐다보았다. 둘은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고 수경은 그들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2016년 7월 7일 저는 아이들과 함께 세상에 또다시 태어났어요. 죽을 만큼 힘든 임신 과정과 출산, 육아를 통해 제가 성숙한 엄마로 짜~안 아이와 함께 준비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오히려 내 아이와 함께 태어나 내 과거로 한 발 한 발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내 부모를 조우하고 미성숙했던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내 자식에게 부모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미성숙한 내면의 아이의 엄마 역할도 해주었어요. 내게 있었던 결핍을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얻은 후, 그렇게 상처는 치유되었고 모자람은 채워지며 성숙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자식이란 한 가정의 완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정을 이룬 한 여자와 남자를 진정으로 성숙시키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아이들은 매 순간 내게 가장 큰 스승이 되어 주었어요. 아이들을 통해 나를 비추어보고 반성할 수 있었죠. 아이들을 통해 나는 매일매일 거듭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수경은 옆에 놓인 물을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모두에게 닥칠 죽음을 앞두고 있어요. 어떤 이는 죽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젊다고, 또 어떤 이는 엄마 없이 남겨질 어린아이들을 안타까워했죠. 사실 저도 처음에 이런 운명에 놓인 것을 비난하고 분노했었어요. 하지만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죽음은 늘 함께 했었다는 걸 깜빡한 건 나였어요. 누군가와 비교하면 너무 이르고 자식이 어리기에 안타깝지만 또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면 오래 살았고 시한부였기에 이렇게 준비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세상 그 어떤 것에 우리는 부분만 보고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만 전체의 이야기는 우리는 알 수 없어요. 그저 제가 깨닫게 된 것은 주어진 운명과 관계, 크고 작은 사건, 많은 우연과 인연들 모두가 한 사람이 갖게 되는 다양한 재료이고 그 생을 완성시키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재료들을 선택해 만들게 되는 무엇인가는 그 사람 전체의 생애가 되죠.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서도 결과물이 볼품없을 수도 있고 나쁜 재료들을 가지고서도 작품으로 만들 수도 있어요. 여기 이곳에서 저와 함께 한 모든 인연들이 오늘날의 저를, 제 삶을 완성시켜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곳에서 삶을 잘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이 안타깝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분명히 이런 시련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분명히 작품으로 만들 소재도 될 거예요. 되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은 것 없는 삶이었지만 그것조차도 인생은 잘 짜인 스토리처럼 완전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과 엄연히 공존하는 삶의 일부예요. 삶 속에 죽음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매 순간 떠올린다면 매일, 매 순간, 그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죠. 곧 그것이 이 땅 위에서의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파랑새가 곁에 있어도 알지 못하고 파랑새를 찾아 떠난 치르치르 미치르처럼 행복을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파랑새는 우리와 함께 사는 죽음이랍니다. 여러분이 꼭 잊지 말고 사시길 바래요.”
모두들 수경의 말에 숙연해져 침묵했다.
“지원 언니. 한 동네에서 함께 아이들 키우며 소소한 고민을 나누었던 시간들이 저는 참 좋았어요. 언니랑 브런치 먹으며 가끔 부리던 사치는 더 좋았고요. 언니와 보낸 시간이 짧아 아쉽지만 우리에게 좋은 추억들도 많았죠? 우리 아이들 먹거리까지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언니가 용기 있는 결정을 한 것에 진심으로 존경과 박수를 보내요. 언니의 삶을 늘 응원합니다.”
수경은 지원과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었다.
“명경, 은정, 혜진아, 아무것도 몰랐던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맙다. 우리 참 많은 추억들을 가졌고 만나기만 하면 엄청 웃었다. 그렇지? 비록 다음 모임에서는 내가 물리적으로는 함께 할 수 없지만 너희들 얘기 속에 나는 영원히 살아갈 테고 그 얘기 속에서 너희들과 함께 울고 웃을 거야. 사랑해. 내 오래된 친구들.”
수경은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은주야. 고등학교 2학년 때 짝꿍으로 만나 평생 내 단짝이 되어준 네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싶어. 돈 한 푼 없이 집을 나왔을 때, 너는 나를 위해 너희 집에서 살림살이와 쌀과 반찬을 가져와 배고팠던 나를 챙겨주었어.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너는 나를 일으켜주던 큰 힘이었어. 콤플렉스 투성이에 마음속에 화가 가득해 까다롭고 모가 났던 나를 맞춰주고받아주어 늘 고맙게 생각해. 사랑한다.”
은주랑 수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수경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은주에게 눈물에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
“미정 선생님. 선생님 말처럼 어느 인연도 사소한 인연이 없었어요. 함께 일하던 동료 사이로 지나칠 수 있던 우리가 이렇게 마지막에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도 모두 준비되어 있었겠죠? 선생님 덕분에 나는 고통스럽지 않은 마지막을 보낼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가족 여행도, 그리고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선생님 덕분이에요. 무엇보다 선생님 덕분에 하나님도 만나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드릴 게 없네요.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신 인연이기에 그저 감격스럽습니다.”
미정과 수경도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었다.
“목사님, 세례를 해주시려고 일부러 먼 걸음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교회에 자주 가지 못한 저를 위해 병원에 오셔서 기도해주시고 문자로 보내주신 많은 말씀에 고통 속에서도 마음만은 기쁨으로 넘쳐났답니다. 처음 교회에 방문했던 날, 목사님의 첫 설교 혼자 아파하지 말라, 우리 모두는 한 지체다라는 말씀. 외로웠던 제게 많은 힘이 되었어요. 다시 한번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경이 목사에게 미소를 짓자 목사는 두 손을 모은 기도하는 자세로 흐뭇하게 미소로 답했다.
수경은 부모님을 한번 보고는 길게 한번 숨을 내뱉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해요. 무엇보다 오늘 이 자리 참석해 주심에 감사드려요. 자식이 부모님을 앞서는 불효를 저지른 저를 용서해주세요.”
수경은 울음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그동안 두 분 고생 많았으니 남은 시간은 마음 편안히, 행복하게 사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두 분도 그동안 못 다하신 가슴속의 말들을 서로 꼭 나누시길 바래요. 아이들과 남편을 잘 돌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어 진심으로 기뻐요. 두 분 사랑합니다.”
수경의 떨리는 목소리에 새어머니는 또다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는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경을 바라보았다. 수경은 Ryan을 쳐다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Ryan.”
수경이 곁에 앉은 Ryan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침묵했다.
“I love you. You are my husband and my kids’ father. You are miracle in my life. You helped my biggest dream came true, and the dream was my family. Thank you for everything you’ve done for me. I love you so much, Ryan. I’m so sorry that I leave you with this burden.” (사랑해. 당신은 내 남편이고 내 아이들의 아빠야. 당신은 내 인생의 기적이야. 당신은 내 가장 큰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왔고, 그 꿈은 가족이었어. 당신이 내게 해 준 모든 것이 고마워.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Ryan. 이런 큰 부담을 주고 내가 떠나서 미안해.)
수경의 손을 잡고 있던 Ryan이 수경이 울면서 말하자 고개를 저었다.
“No. Don’t say sorry.” (아니야. 미안하다고 하지 마.)
그가 나지막하게 그녀를 보며 속삭였다.
“Ryan, I want to ask one thing.” (Ryan. 나는 당신에게 하나를 부탁하고 싶어.)
Ryan이 수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Please forget about me. And I wish you can meet better woman than me. I don’t want you to live only as a father in rest of your life. You are too young for that. Please find a good woman and be happy for me.” (제발 나를 잊어요. 그리고 나보다 더 나은 여자를 만나길 바래. 난 당신이 남은 생을 단지 아빠로 사는 걸 원치 않아. 당신은 그러기에 너무 젊어. 제발 좋은 여자 만나 나를 위해 행복해줘요.)
Ryan은 수경의 말을 듣는 동안 계속 고개를 흔들었고 수경은 그런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다시 말했다.
“I love you Ryan. That’s why I am telling you. Forget about me.” (사랑해 Ryan. 그래서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나를 잊어.)
수경의 말에 Ryan은 그녀의 눈을 보며 울었고 수경도 눈물을 흘렸다.
“I love you, Sukyeong. But, I can’t promise. I am sorry.” (사랑해, 수경. 하지만 난 약속 못해. 미안해.)
Ryan은 수경을 꼭 끌어안았고 둘은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수경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곧 눈물로 번졌다.
“목숨보다 사랑하는 내 딸 보리, 내 아들 준아. 엄마가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부모가 부모의 자리에 있어주는 게 당연한 것인데 엄마가 그 자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이렇게 빨리 떠나게 되어 너무 미안해.”
수경은 아이들을 한번 끌어안고 말을 이었다.
“전에 병원에서 만난 재욱이 삼촌이 그러더라? 너희들이 웃는 모습이 엄마랑 똑 닮았대. 그러니 보리 준이!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거울을 보고 웃어봐. 그 웃음 속에 엄마가 있으니 언제나 많이 웃길 바래. 울면 엄마 안 보인다. 알았지? 비록 엄마가 너희들 곁에서 챙겨주지 못하더라도 너희들 마음속에서 항상 함께 있을 거라던 말 잊지 마.”
수경은 아이들을 보며 당부했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너희를 낳은 게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너희들은 엄마 인생에서 일어난 최고의 사건이며 엄마 인생은 너희들로 인해 눈부시게 빛났단다. 엄마의 아들로, 딸로 와주어 너무 고마워. 너희들은 존재만으로도 엄마의 큰 기쁨이었으며 행복이었단다. 우리 보리 준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기에 앞으로도 그 사랑 속에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란 걸 엄마는 믿어. 사랑해. 사랑하고 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