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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Aug 18. 2022

39.여자의 존재 의미와 목적

성경을 읽을 때, 여자로서 늘 불만이 많았다.

창세기부터 여자가 남자의 돕는 베필로 지어졌다는 구절은 남자가 하는 큰 일에 여자는 그저 소일거리 도와주는 존재처럼 들렸다. 특히 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셔서 여자를 만들어 여자의 근본이 남자에 있다는 뉘앙스를 풍길까? 불만이었다. 창세기 3장에는 사탄에 넘어가 아담에게까지 선악과를 먹여 인류를 죄인으로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 여자라는 것, 성경에 나오는 남자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신 다윗조차도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했는데  여자의 정조는 어째서 이토록 강조할까? 너무 불공평했다. 남자는 모든 것이 주도적이고 여자는 모든 것을 그저 순종적만해라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래서 성경을 받아 적던 그 시대와 중동 문화 때문이라며 이해하고 넘어가려 애썼다.


하지만 내 마음 안에서는 그렇다면 성경이 완벽하다는 전제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무슨 남편은 여자를 애완동물 사랑하듯 하고 여자는 남편을 주인에게 복종해야 하듯 순종해야 하나? 로마서를 쓴 바울이 이런 글을 썼다니, 바울의 믿음도 완전하다 할 수 없겠고 하나님이 여자를 이렇게 업신여기시다니? 아무리 노력해도 이 부분에서의 하나님은 이해되지  않았고 납득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 실망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예레미야 9장 20절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 하게 하고 각기 이웃에게 슬픈 노래를 가르치라’ Hear, O women, the word of the LORD, and let your ear receive the word of his mouth; teach to your daughters a lament, and each to her neighbor a dirge.

그 구절을 반복해서 읽으며 나는 한참 동안 꼼짝하지 못했다.

뭐?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받아 딸들에게, 이웃에게 가르치라고?


그 구절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있던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풀어 주었다.

여자는 다음 세대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전달하고 가르칠 막중한 책임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자식 교육은 전적으로 엄마에게 달려있다. 또 아빠와 상관없이 엄마가 유대인 이어야지만 자식이 유대인으로 인정받는다는 말도 떠올랐다. 열왕기상이나 역대상/하를 읽을 때, 어떤 인물이 누구의 자식인지, 굳이 왜 엄마의 이름이 나오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 부분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창세기 1장, 26-31절 ‘하나님 형상을 따라 남자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먹을 것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구절이 있다. 남자, 여자가 하나님 형상으로 지어져 함께 똑같은 복을 받은 것이다.


창세기 2장 20-25절 더 구체적인 남녀 관계가 나오는데  아담이 하나님께 흙으로 먼저 만들어져 생물에 이름을 주며 살았다. 그런데 돕는 베필이 없으므로 보기 좋지 않아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고  그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셔서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다. 아담이 이르되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며 여자라는 이름을 주었고 그때부터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고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there was not found a helper fit for him이 말을 반복해 보니 Help가 중요한 일에 조금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담의 일에 꼭 맞게 완성시키는 일이라는 단어로 다시 읽혔다. 하나님은 여자가 열등해서 도움을 주라고 보내신 게 아니라 아담 혼자 완성할 수 없는 일을 완성시키라고 보내신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와 모든 일에 꼭 맞춰 하나님이 명령을 완성하라고 지어짐을 받았다.

앞으로 Help는 그저 ‘돕다’가 아닌, 더하여져 완성시키다’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창세기 3장 여자에게 간교한 뱀이 온 이유도 여자가 열등해서가 아니라 뱀이 하나님 계획을 완성시키는 여자의 중요한 임무를 알았기에 여자에게 접근한 것이다는 재해석을 하게 되었다.  여자가 하나님 일을 완성시키기 위해 지어짐을 받은 만큼 자신이 하나님 형상대로 완벽하게 지어졌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다만 하나님처럼 완벽하다는 생각이 그녀의 가장 큰 약점이 되어 간교한 뱀에게 넘어가게 된 것 같다. (억지 같은 말이지만 남자는 자기가 완벽하지 못해 자신을 돕는 베필로 아내를 얻은 것을 이브가 올 때 은연중에 깨달았을 것이다. )  

그래서 뱀은 자신이 작품 완성에 마지막 정점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여자에게로 간 것이다.  여자에게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는 뱀의 말이 먹힌 것이다.

이미 하나님 형상으로 일의 완전함을 이루려고 자신이 지어짐을 깨달은 여자는 선악과를 먹으면 이제 완전히 주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무시해서라기보다 자신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욕심과 완전히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브는 아담에게 사과를 건네 먹게 했는데 이렇게 선악과를 먹는 순간부터 죄가 들어와 하나님의 질서를 어지럽혔다. 하나님의 질서에서 시작은 남자였고 완성은 여자였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었을 때는 이브가 시작하고 아담이 나중에 먹었다. 하나님의 질서가 성취되기는커녕 파괴가 되었다.

가장 큰 죄는 자연의 질서와 함께 인간과 하나님의 정체성도 뒤바뀌게 되었다.

인간이 선악을 판단해 옳고 그름이 생겼고 자기 옳음대로 살기 시작했다. 자기가 주인이 된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벌을 받아 에덴에서 쫓겨났지만 남녀를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온다. 남자의 정자가 여자의 자궁으로 들어오면 10 동안 품어 여자는 아이를 생산한다.   기간 동안 여자의 몸에서 자라는 아이와 여자 사이에는 모성애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다. 남자는 부여받은 일들로 밖에 나가서 사물에 의미를 붙이고 경작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일과 관계되는 모든 생산 활동을 한다. 여자는 다음 세대 출생과 교육을 도맡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음세대 전달하는 일은 여자가 한다.


여자가 모든 일의 완성을 위한 존재라는 것은 교만해질 확률과 남자를 열등하게 볼 확률이 높아 성경은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남자는 생산, 창조의 시작을, 여자는 그것을 양육하고 가르치고 전달해 완성시킨다.

그렇기에 남녀는 우열이 아닌 동등하게 주님께 지음을 받고 함께 복과 할 일을 받았다. 다만 여성에게 순결이 강조되는 이유는 여성의 몸은 아이가 창조되는 신성한 몸이고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가르치고 전달하며 한 생명을 양육시키는 성스러운 임무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탄생도 아버지는 성령이 될 수 있었기에 인간의 아버지가 필요 없었지만 어머니의 경우는 달랐다.  어머니의 육신, 곧 인간 여자는 반드시 필요했기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돼 출산되셨다.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이 해석이 도움이 된다. 하나님의 이 거대한 임무를 받고 여자로 태어난 나의 이 여성성이 너무도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주님의 말씀을 유산으로 전달하는 일이 나의 의무라면 자식 교육에 대해 한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주님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성경책에서 새로 이해하게 된 여자는 결코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남자와 함께 하나님께 복 받은 존재고 남자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완성시키라 만들어졌으며 다음 세대를 출산하고 영육으로 그 자녀를 키우는 일, 특히 주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메신저”이다.



Hear, O women, the word of the LORD, and let your ear receive the word of his mouth; teach to your daughters a lament, and each to her neighbor a di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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