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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Aug 30. 2022

43. 각자의 자리

며칠 전, 내가 속한 단체에 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좋은 의견을 낸 적이 있다. 나는 그 아이디어가 현실상 불가능해도 이루어지면 반드시 큰 효과가 있다는 걸 알기에 이번에 사람들이 반대해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의견을 나누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각자가 앞으로 생각하는 단체의 발전을 위한 계획과 바람을 나누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의견을 받은 리더는 메일을 보내주어 감사하다, 의논해보자고 했지만 그 이후 더 이상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실망했다.

의견을 냈던 시간이 무의미하게 여겨졌으며 상대에게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좋은 의견이 있어도 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단체 발전을 위해 사람들이 애정을 갖고 내놓은 의견을 이런 식으로 묵살한다면 앞으로 누가 좋은 의견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상대가 독재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워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췄다.

모두에게는 자기 자리가 있고 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과 인간의 자리. 각 사람의 자리는 정체성이다. 자기의 정체성을 먼저 똑바로 정비해보자 싶었다.

각자의 정체성으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서로를 존중한다면 ,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때론 한쪽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정체성을 뒤바꿔 생각하기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 정체성 사이에 그어 놓은 선,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 선을 넘게 되면 정체성이 뒤바뀌어 혼란해진다. 다툼이 생기기 시작된 때도 그 지점이다.

선을 넘는 신호는 '나라면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나의 경우, 나는 단체의 위원회 중 한 사람이고 그는 단체의 리더이다. 나는 단체의 위원회로서 단체 발전을 위해 고민했고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내 자리, 정체성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을 다했다. 그 문제를 받아 들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그 리더의 자리이다. 그 리더의 정체성으로 처리할 수 있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고 그 나머지는 리더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번 일로 ‘또다시 무시당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의견 내지 않겠다!’ 고 하는 것은 내 자리에서 내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리더에게 화가 났다고 리더를 돕지 않는 것은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선을 넘어 “내가 리더였다면 이렇게 이렇게 했을 거야.” 하며 리더가 할 일을 판단하고 정죄하려 한다면 반드시 이 단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리더를 욕하고 다니면 그 단체는 분열에 이르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 오히려 쇠퇴하게 된다.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은 것에 만족하고 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끊임없이 생각해 제출하고 리더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게 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하는 내 몫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 정체성을 더욱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아니 반드시 해야만 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자이시고 인간을 지으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순전히 우리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기에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데 내 정체성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의 경계선은 선악과였다.


창세기 3장에서 이브는 사탄의 거짓말을 통해 자신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정체성을 뒤바꿀 수 있다는 거짓말을 믿게 되어 선악과를 따먹는다.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따 먹고 수치심을 느끼자 몸을 가려 숨고 아담은 이브를 보내준 하나님 탓이라고 한다.

결국 벌을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사망을 한다.


그 이후 인류는 정체성이 뒤바뀐 상태로 태어났다. 처음에 선물처럼 받은 자율의지도 타락한 채로 태어났기에 우리는 우리가 삶의 주인이고 주인공, 왕이라 여긴다. 그리고 내 마음이 시키는 타락한 자율의지를 따른다. 인간이 마음이 시키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이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을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도록 세상은 부추긴다. 그리고 현재에 이것이 만연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매일 인생에서 겪는 크고 작은 문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지 않고 그 선을 끊임없이 넘어 남의 정체성, 하나님의 정체성을 넘어가는 데에 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서로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기에 한쪽을 서운해하기도, 화가 나게 만들기도 한다. 또, 상대의 자리까지 침범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더 이상 돕지 않아 분쟁이 생기고 분열된다.

“네가 하나님이야. 네가 다 옳아” 사탄은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자리,  정체성을 분명히 생각하고  몫의 자리만 생각해 최선을 다하겠다. 상대방의 몫은 상대방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기대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길 바라지 않겠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상대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 관계에 발전이 없다면  중심에서 심판하시는 분은 내가 아닌 하나님 한분임을 기억하겠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것을 가져가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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