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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Mar 10. 2023

58. 네가 성냄이 옳으냐?

악독한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외치라고 명령하자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욥바로 내려갔다.

하지만 다시스로 향하는 배는 큰 폭풍 속에서 거의 깨지게 되었다.  요나는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인 줄 알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하고 던져질 때, 주님이 예비하신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밤낮 삼 일을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고백한다. 삼일 밤 낮 주님을 깊이 만나고 주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라고 당찬 포부를 보일 때, 요나를 삼킨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했다.

주님은 요나에게 두 번째로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고 말씀하셨다. 사흘 걸어야 할 만큼 큰 성읍을 요나는 하루동안 돌아다니며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고 외친다. 이 말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는다.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이다음이다.

요나는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며 악독한 니느웨를 벌주길 기대했던 요나는 용서하시는 주님께 화가 나서 못 살겠는 것 마냥  죽여달라고 말했다.


그때, 주님은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요나에게 물으셨다.

하지만 요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성읍 동쪽에 앉아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기 위해 앉았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예비해 요나를 가리게 하셨고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해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요나는 그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했다.

그다음 날,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박넝쿨을 갉아먹게 했더니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시자 요나가 정신이 혼미해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했다.


하나님은 또다시 그런 요나에게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라고 하셨고 요나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라고 되받아친다.

여호와는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 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셨다.”


나는 요나의 말씀 속에서 우리가 니느웨 사람이고 동시에 요나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악하고 주를 모르는 사람을 손가락을 가리키며 정죄하고 혀를 찰 테지만 왜 정작 그들이 우리인지는 왜 모를까? 아니, 왜 자신은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는가? 시시비비를 가릴 때부터 자기 마음의 주인은 자신이다. 주인 된 생각으로 끊임없이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 마음을 넘겨짚고서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기도 한다.

니느웨의 큰 성읍에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는 매일 죄에 넘어지는 우리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우리를 불쌍히 생각해 선지자 요나를 보내 회개하게 하시고 진정으로 회개할 때, 완전한 용서를 해주신다. 죄성을 가진 모든 인간은 니느웨의 사람들이다. 또,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듣지 않고 악한 자라 치부하며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는 요나도 우리 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저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바람과는 반대로 니느웨 사람들이 온 마음으로 회개하고  주님이 회개하는 니느웨를 용서하신다고 했다.

요나는 주님께 빈정거리며 죽는 것이 낫겠다고까지 하며 화를 낸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기본적으로 늘 자신이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밭 위에 서있다. 우리가 잘 못할 때는 불가피했던 일, 사정이 있는 일이라 변명하기 바쁘다. 하지만 남에게 가리키는 잣대는 살벌해서 조그만 실수에도 나쁘다고 비난하고, 상대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대해서도 욕을 하고 미워할 때도 있다.

모든 인간이 이와 같기에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물으시는 주님 앞에서 나는 그동안 잘못했다고 회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니느웨이라 타인을 괴롭히고 죽이면서도 상대를 니느웨라 비난하기에 바쁜 요나처럼 내 분노는 정당하다고 하나님께 소리 질렀다.


주님이 주시는 박넝쿨 같은 사랑은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없어질 때는 주님 주신 것임을 알고 그 소중함을 깨닫고 반성하기보다는 가져가신 주님을 원망하고 화를 낸다.

그때에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숨을 쉬는 것부터 무엇 하나 주님 주시지 않은 것 없고, 말로, 행동과 눈빛으로, 사람에게 부단히도 많은  상처를 주며 사는 나는 니느웨 사람이다. 그런 나를 주님은 가엽게 여기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주님 알게 하신 큰 은혜를 주셨다. 주님의 일을 동참시켜주기까지 하셨다.

죄인을 이토록 귀하게 여겨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 나의 옳음은 하나도 없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의 온전한 순종이 가능하고 주님 계명인 “사랑하라”를 행동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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