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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Mar 25. 2023

65. 모든 자리를 잡고 옮기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요한복음을 8장을 보면 음행 한 여자를 데려온 군중들 사이에서 예수님이 두 번 반복적으로 하시는 행동이 있다. 몸을 구부려 땅에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신다.

사람들의 음행 한 여인으로 향한 분노와 정죄를 예수님 자신에게 시선을 옮기신 후, “너희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먼저 치라” 말씀 후, 또 같은 동작을 반복해 그 사람들의 시선을  그들 각자의 마음으로 옮기셨다. 처음에는 그 시선을 예수님께 옮기고 그리고 인간의 자기 마음으로 옮기셨다. 성경에 주님이 자리를 바꾸신 경우는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다. 예수님의 이 구원 사역 자체가 자리 옮기심에 있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인간으로서 가장 허름한 말 구유에서 태어나셔서 가장 아프고 힘들고 슬프고 외로운 자들 곁에 계셨으며 죄인 된 우리 자리에 대신 앉으시고 그 모욕과 고통을 견디시다 죽으셨다. 그 죽음을 믿는 죄인들을 본인의 자리인 하나님의 아들 자리로 옮겨주셨다.


우리 피조물이 스스로 주인이 되고 주님과 같아 지려하는 것은 죄이다. 하지만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님 앞에 나가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피로 구속을 하신 후 말씀으로 그 죄된 마음을 씻고 성령을 채워 진리를 바르게 알고 믿음을 성장시켜 결국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하신다. 우리 스스로가 주님 되려 하는 것은 죄지만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자세로 순종할 때, 우리를 주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복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높아지는 내 모습을 본다.

다른 사람에게 화가 나고 다른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 짜증과 화의 원인들은 하나같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옳다.  내 방식과 내 생각이 맞다’. 는 것에 있다. 거듭거듭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 높이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보다 내 감정이나 생각을 앞세워 인간관계나 일상을 처리하며 살아간다. 주님께 전혀 물어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계획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주님은 창조주라는 왕의 신분에서 죄인인 나의 밑바닥 자리까지 내려오신 분인데 나는 정작 그런 주님을 무시하고 주님의 자리만을 향해,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을 갖고 살아온 것만 같다. 정작 예수님은 지금 바로 여기, 내 옆에, 내 일상에서 내가 만나고 지나치는 모든 사람 속에서  계신데 나는 주님을 밟고  올라서서 주님을 내려다보거나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때로는 내 옆에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하고 그 주님의 보좌를 향해 다가가겠다면서 내 열심으로만 종교생활을 하며 보내진 않았던가?


자리를 지정하시고 옮기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주님뿐이어야 하는데 나는 여태껏 내 마음대로 내 자리를 높이고 사람들의 자리를 낮추고 주의 자리를 낮추며 살아왔다. 이런 자의 손을 붙들고 어떻게 예수님이 함께 걸어갈 수가 있었겠는가? 내 손을 붙들고 싶은 자리로 주님이 몸소 내려오셨는데도 주님보다 매번 앞서서 높은 곳을 향해 걸어갔으니.

때로는 내가 억울한 자리에 놓이고, 슬픔과 외로운 자리에, 사람들에 외면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자리에 놓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곳에 주님이 계신다. 주님이 그 모든 밑바닥까지 내려오셔서 나와 함께 계신다.

주님이 계신 그 자리가 내가 자랑할 수 있는 자리다. 주님의 손을 잡고 약하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에 감사히 여길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만이 주님이 내 손을 잡고 영광의 자리로 옮겨 주실 수 있다.


이사야 55장 8-9절 말씀.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우리 육신의 눈에는 낮은 자리가 비천하고 초라하지만 세상의 가치와 주님의 생각은 반대이다. 그 자리가 주님이 나를 기쁘게 생각하는 자리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세상의 명예와 돈, 인기에서 벗어난 자리, 그 아플 것만 같은 자리에서 주님의 오른손은 우리를 붙들고 도와주신다.


이사야 45:7

[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주님은 처음과 마지막, 평안과 환난. 모든 것 중의 가장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런 주님이 우리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초청하심에는 이유가 있다. 그 자리에서만이 주님과 동행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인간을 주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11:23-12:10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외의 일은 과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


12:10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잇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니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마지막 바울 사도는 우리가 가장 약할 때 주님이 나의 진정한 강함이 되실 수 있다고 말했다.

주님은 우리가 낮은 자리에서 우리의 약함을 자랑할 때,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옮겨주신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곳은 억울하고 무시당하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그 낮은 자리. 그곳에 언제나 계신다.


세상은 높은 자리, 인기 있고 돈이 많은 자리가 좋다고 모두가 말한다. 우리가 그렇게 교육받아왔고 자식을 그 가치로 교육시키기에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경쟁한다.

그것이 높은 가치로 당연하게 여기기에 어디에서든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고 싶어 하고 자랑하고 싶어 한다. 내가 했다고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기에 때로는 남을 슬쩍 빼기도 하고 그 공을 자신에게로만 돌린다. 빼앗을 때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주님은 계시지 않는다.

내가 강해서 내 자랑을 할 때, 주님은 거기 나와 함께 계시지 않고 저 밑바닥에서 홀로 나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신다.

‘자랑하는 나를 용서해 달라’고, ‘내가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내 대신 나를 위해가장 낮은 자리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

주님과 그 낮은 자리에서 동행해야만 나를 피로 구속하시고 말씀으로 내 겉사람을 닦고 씻기시는 예수님.  그 후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회복시켜 주셔서 내 속사람을 새로워지게 하시는 예수님.

그때, 내 손을 이끌고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보이시고 주님 얼굴을 보고  살 수 있는 새로운 땅에 나를 인도해 주실 예수님. 우리들의 이마에 그분의 이름을 새기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비치셔서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을 그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회보 시키고 세세토록 왕노릇 하게 하실 우리 주 예수님.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요한계시록 22:1-5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이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계신 예수님.

그곳에서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주님을 따르는 길이 그토록 내가 올라가고 싶어서 발버둥 치던 그 자리다. 예수님의 보좌는 내 힘으로는 절대로 올라갈 수 없는 자리이다. 내가 열심을 내면 낼 수록 주님께 멀어지는 자리이다.

가만히 그 낮은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약하기 때문에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에 감사할 수 있다.

예수님은 나의 눈물과 아픔, 좌절, 인내와 고통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내 억울함과 모멸, 조롱과 박해를 모두 갚아 주시고 그 모든 고난을 통해 나를 영광의 자리로 옮겨 주신다.

낮은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살면서 주님 닮은 형상으로 회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기를...

내 힘으로 주님께 오르려는 길은 오히려 주님을 밟고 서는 길임을 기억하고 내 영광, 내 자랑을 세우는 곳에는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음을 명심하며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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