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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Mar 30. 2023

67. 이때를 위한 믿음이라

에스더 4장 13-14절 말씀에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왕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한 믿음이라.라는 구절이 눈에 띈다.


오늘 유튜브 잘 믿고 잘 사는 법에서 사순절 묵상 말씀 중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열왕기상 17장 17-24절, 사도행전 20장 7-12절 말씀을 들었다.


열왕기상 17장 17-24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 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 지나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방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사도행전 20장 7-12절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믿는데 왜 불행이 끊이지 않냐고 불만을 갖거나  이토록 하나님을 잘 믿는데 이런 불행을 왜 막아주지 않느냐? 고 원망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고 전보다 더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의 저변에는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만사형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만사형통이란 결국 돈, 명예, 인기, 건강, 장수, 가족이 잘 되는 것 같은 것이다.

열왕기상이나 사도행전에서 나온 과부의 아들이나 유도고가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금방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과부의 말처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내가 아는 분의 어머님은 새벽 기도에 갔다가 차사고를 당해 즉사하셨다. 그때에도 그렇게 질문했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주님 섬기러 가는 길을 왜 지켜주시지 않으셨냐고. 새벽기도 가지 않고 집에서 자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주님의 생각과 다르고 주님의 길이 우리의 길과 다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닥치는 어떤 고난과 불행이라도 그것은 결국 해피엔딩이라는 것, 주님의 계획은 선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했듯이 주님에 대한 믿음은 불행이 닥쳤을 때,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고 진정으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주님의 예비하심이다. 이때를 위한 믿음이었다.


인생은 고난이다. 주님을 떠난 우리에게 들어온 죄와 죽음은 우리가 처한 영적상태이다. 고난이 일상이란 얘기다. 하지만 주님을 믿는 은혜를 주심으로 그 아프고 힘든 상황에 범퍼로 만들어 주셨다. 그 고난 속에 의미를 주시고 주의 뜻과 섭리를 밝혀 주셨다.


열왕기상과 사도행전에서 죽은 두 사람은 주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다.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다.

우리 육신의 눈에는 비록 불행으로 여기는 사건일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직 구원해 영생을 주시는데 관심 밖에 없으신 하나님은 선으로, 해피엔딩으로 우리를 결국 그의 목적대로 이끄신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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