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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랑 (시)

끝까지 오르는 것이 사랑. 우아하게 사는 것은 시를 담는 것

by Momanf

산초입에 들어섰다.

한들거리는 초록풀, 알록달록한 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살랑이는 바람은 심장을 간지럽혔다.


작은 오르막 길을 오르고 내리며 한참을 걸으니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먼 정상을 바라보며 그냥 내려갈까?

고민이 된다.


결단을 할 수 없어 머릿속은 시끄러운 채 그냥 걷는다.

들고 있던 짐가방이 무거워지고

등은 찝찝하게 젖어든다.

한참 힘들다는 생각만 되뇌며 걷는다.


어차피 내려올 산, 시작을 한 내가 바보지

언제 저 산 꼭대기에 올라가나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다

벌레는 왜 이리 꼬이나

나무를 붙잡으며 엉기엉기 기어오른다


그루터기 발견하고 지친 다리 쉬며 주위를 본다

초록색 황토색으로 뭉개졌던 산이 다시 선명히 분리된다

초록색도 각종 모양이 다른, 이름도 다른 식물이었고 나무였다.

그 속에 간간히 여러 가지 색의 다양한 꽃도 있다

키가 다른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황토색에는 사람의 발자국과 종류가 다른 돌들이 박혀 있다


속까지 시원한 바람 한 점 불자 땀이 식는다

얼마큼 걸어왔나 산 아래 한번 보고

정상을 한번 더 올려다본다.

딱 중간쯤이다.

내려가기는 아깝고 더 올라가기는 버겁다.

까짓것 올라왔으니 끝까지 올라가 보자!


오르막은 더 가파르고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이제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머릿속 군중들은 하나 둘 입을 닫는다.

걷고 걷고 무거워지는 다리 들어 한 걸음 또 걷고

정상에 오른다.


이곳에 발그레한 미소만으로도 나를 아는 꽃들이 있었고

힘겨운 손 내밀어 잡으니 든든하게 버텨주는 나무가 있었다

속에 있는 먼지까지 날려버리는 바람이 있었고

탁 트인 파란 하늘이 구겨진 것 없이 쫙 펼쳐져 있었다.

처음으로 잡념하나 없이 산 정상 모든 것이

오롯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내려가고 싶은 온갖 잡념과 육체의 피곤함으로

산과 내가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끝까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 정상에 올라

이 산과 물아일체를 이루어 누리는 것들 때문이다.

내려올 산이라도 끊임없이 오르고 또 오르며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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