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처음 떠올랐을 때는, 데살로니가 바다를 보며 부두에서’ 나의 하나님’이라는 찬송을 들을 때였다.
“주의 사랑은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해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가끔 마음속에 지나간 사람들이 떠오른다.
좋은 인연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속상한 관계가 더 많이 떠오른다.' 왜 그때 그 사람은 내게 그렇게 행동해서 우리가 지금 보고 살고 있지 않은지, 왜 내 가족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런 종류의 말과 논리로 나를 힘들게 하는지...' 깊이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동시에 가족이라 좋은 기억, 분명히 감사했던 기억도 떠오르니 죄책감도 생긴다. 상대의 논리대로 내가 나쁜 건가 생각하다 억울함이 목 끝까지 쳐 오르기도 하고, '나도 할 만큼은 진짜 최선을 다했다'라고 따지고 싶기도 한다. 아무 정이 없고 상처만 준 관계라도 가족이라는 그 이름에 묶인다. 보지 않고 사는 게 서로에게 평화라 여겨 서로가 찾지 않는데도, 사실 옆집 아주머니보다 정이 없는데도, 남보다 더 깊이 상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란 이름 때문에 봐야 하는 의무를 많이 느낀다. 내가 원치 않아도 태어나 지어진 관계의 명칭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나를 본다.
상대 가족도 그런 듯, 볼 상황이 되면 쥐어 짜내듯 모든 정신력으로 최선을 다하다가 떠날 때는 늘 상처를 준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뭔가 의무와 책임감의 무게에 눌려, 이제는 내가 버린 관계처럼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될까?
"용서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내가 먼저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그래도 혈연은 그들밖에 없지 않나? 내 아이들에게 잘해주니 좋다. 몇 가지 견딜 수 없는 것들은 모른 척도 하고 그 끈을 유지하기 위해서 견디자."
나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해왔던 주문 같은 되새김이었나? 그렇게 갔다가 또 좋아서 나도 모르게 의지하게 되면 사정없이 부담 주지 마라 하며 나를 밀쳐 버렸던 사람들.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들지만 상처도 그만큼 크다.
“주의 사랑은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해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이 찬송을 반복해 듣고 또 듣고, 듣다가 이 구절을 다시 듣고 또다시 들으며 주님의 사랑에 감사했다.
지금까지도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도 내가 가장 필요한 그때에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이었다. 그들을 통해 나도 도움과 사랑을 받았고 상처도 받았다. 나 또한 그들에게 사랑과 도움을 받았고 상처도 줬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그 시즌은 끝났다.
우리 인생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눈다면 나는 그들과 봄, 여름을 보낸 셈이다. 나는 가을로 접어들었고 더 이상 봄, 여름에 머물지 않으며 그 시즌으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는다. 돌아갈 수도 없다.
가을에 맞는 기후와 환경이 변했고 추수하는 사람들, 단풍놀이 하는 사람들. 내 주위에 있는 환경과 사람들도 모두 바뀌었다. 나도 바뀌었다.
모든 인간은 계절대로 성장한다. 관계도 그렇다. 봄을 함께 보낸 사람이 있고 여름을 함께 보낸 사람이 있다. 가을로 가는 사람에게 봄으로 돌아와 달라, 여름에 머물러 달라 고집하는 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를 미성숙하게 붙잡는 미련함이다.
우리는 스스로도 흐르고 스스로가 흐름으로 관계도 흐른다. 모든 것이 흐른다. 모든 계절이 질서를 이루듯 우리에게도 이 질서는 적용된다.
이제,
그 아픈 관계를 억지로 잡으려 했던 내 마음을 풀어놓아도 된다.
과거를 반복하며 그때 상한 마음을 보상하라고 나를 잡아끌어내리는 그 관계들을 흘려보내도 괜찮다.
주님이 서로에게 어떠한 이유인지 우리는 몰라도 인연을 맺어줘 살아가게 하셨던 그때를, 내가 살아낼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을, 주님 목적에서 내가 탄생하고 아팠지만 배움이 있었음을, 또 분명히 보살핌을 받았던 그 모든 것에 감사하자.
지나간 시즌의 문제는 더 이상 따지지 말자.
다만 이 시즌에 지난 시즌에 만난 사람과 잠깐의 인연을 다시 주신다면, 그때 감사했다는 말, 그 시즌에서 내가 몰랐던 것에 나로부터 상처받은 것이 있다면 정말로 미안하다. 용서해 달라. 앞으로는 언제 어디에 있든 축복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기회가 되면 반드시 이렇게 이야기하고 관계의 멀어짐을 서로가 잘 받아들이고 잘 보내자.
성장과 성숙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명이 있다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주님이 인도하시는 다른 시즌에서, 다른 시간과 다른 사람과 다른 상황에서 계절을 보내며 상처와 작별을 고한다.
나는 새로운 가을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이 시간을 또 주님이 살고 견디고 기뻐하라 보내주신 인연들이 있다. 늘 때에 맞게 살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나는 이 시즌에 집중하며 열심을 다 할 필요가 있다.
봄과 여름에서 씨앗과 작은 싹이었던 나는 잘 몰랐고 서툴렀으며 부족했고 상처받기 쉬었으며 그래서 보호를 받았고 가르침이 필요했다. 그 모든 아픔이 나를 성장시키는 거름이었다.
그 시즌 덕분에 지금 시즌에서 조금 더 나은 통찰력과 성숙함으로, 조금 더 숙련된 사람처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참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다. 서툴고 부족한 사람들을 보면 나의 지난 시간을 보는 것 같아 연민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참아 줄 수 있게 되며 참아주는 동안 나의 봄, 여름을 참아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을 깨닫는다. 그렇게 지금은 볼 수 없어도 그 지나간 사람에게 깊이 감사하게 된다.
사람은 모든 계절의 풀과 꽃과 같다. 인간과 그 관계들은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드나 주의 사랑은 변치 않아 모든 계절을 돌보신다.
사람은 떠나보내야 한다. 붙잡지 않는 것이다. 그때 억울했더라도, 그때 미안했어도 억지로 그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갈 수는 없다.
내 생각도 자꾸 지나온 그곳으로 데려가 지금 이 시즌에서 해야 할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오직 모든 계절을 돌보시는 주님이 이끄는 지금 이 순간, 이 장소, 나와 관계 맺는 이 사람들과 최선을 다하고 이들도 마르고 지는 사람들과 관계이니 언젠가 이별하게 될 것을 기억하고 늘 사과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살면 된다.
또 다음 계절이 올 것이다. 그 모든 계절을 주님은 신실하게 실수 없이 나를 돌보실 것이기에 떠나는 인연에 연연하지 말고 축복하며 보내주고 새로운 인연을 두 팔 벌려 안아주자.
나는 더 이상 지금 이 시즌에 없는 지나간 사람들과 인연을 다시 맺기를 노력하며 억지로 연장하지 않겠다. 더 이상 가족 관계라는 명칭으로 묶이지 않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족은 지나갔다.
앞으로는 지금 현재 내가 일군, 주님 주신 이 가족에게 충실하고 이 시즌에 함께 사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겠다. 주님이 그래서 나를 이 시즌으로 옮겨놓으셨다는 사실만 집중하겠다.
모든 계절에 신실하신 주님 안에서 진정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