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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우리의 믿음의 목적지와 삶의 상관관계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by Momanf

창세기 49장을 보면, 야곱이 자기 자녀에게 하는 유언인데 아들 중 몇 명은 축복이기보다는 저주를 듣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가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유언하는 자리에서 못난 자식이라도 축복하는 것이 맞을 텐데 장남과 둘째, 셋째 아들, 그리고 몇 아들에게는 오히려 벌 받을 것 같은 유언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우리의 믿음의 목적지에 야곱이 닿았다는 증거다.

우리의 믿음의 목적지란 어디인가? 머리 되시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대로 자라는 것=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예수님이 하나님과 연합해 공생애 하셨듯 우리가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것이다.

야곱은 더 이상 야곱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보면 야곱의 입을 통해 주님의 뜻이 온전히 말 되어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야곱이 말하지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이 그의 입을 타고 나오는 것이다.


이 믿음의 목적지와 한 인간의 삶의 상관관계는 어떠한가?

믿음의 목적지가 주님과의 연합이고 우리 전 생애가 그 길로 가는 순례의 여정이라면,

우리는 말씀이라는 지도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는 가만히 지켜보면 그가 하는 반복된 선택과 행보로 그가 향하는 목적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한 선택과 행보의 결과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는 선택과 행보의 결과가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목적지를 분명히 정하고 자기 삶의 여정의 선택과 행보를 그 목적에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을 하는 것이 믿음의 최종목적지고 우리의 삶에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내가 오늘 심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미래에 주님과 마음이 합한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속에 사는 우리의 목적지가 자꾸 흔들리기에 최종 목적지를 세상과 나 자신에게 두게 된다면 내가 오늘 심는 것은 죄성이요 미래에 열매 맺게 될 것도 죄성으로 맺은 열매임이 분명하다.
내가 심지 않은 것을 거두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 내가 무엇을 심을지 선택의 기준이 되고 분명하게 선택할 수 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간구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 내가 비록 싫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목적을 분명히 하고 미래의 열매를 생각한다면 오늘날 내가 무엇을 과감히 포기하고 무엇을 심어야 할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순례길은 그 선택들이 쌓여 나의 행보가 되고 그 언젠가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목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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