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잔치로 반복하는 것은 좋은 기도가 아니다
창세기 49장의 야곱의 기도를 보면, 주님과 온전히 연합해 말하는 야곱의 유언이 우리가 듣기에는 좋은 말만 가득한 축복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막연하게 축복이나 뭔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부탁하거나 힘든 일을 겪는 사람에게 쉽게 기도해 주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이루어지고 무엇이든 세상적으로 봤을 때의 축복을 들어달라고 주님께 기도한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면 무턱대고 해결해서 근심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최고인 줄 안다.
하지만 야곱이 하는 기도를 가만히 살펴보면, 자신의 자녀의 생애를 한 명 한 명 꼼꼼히 지켜보는 가운데 그 사람의 선택과 행보를 통해, 각 사람을 통한 주님의 주권적인 뜻을 보고 이해하고 기도해주고 있다.
비록 우리 눈에는 저주 같아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과 행보의 방향을 짚어주고 그것이 지금 죄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반드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인 벌이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주고 있다.
경고란 지금 하고 있는 선택과 행보의 방향은 반드시 '벌'이라는 결과로 맞을 테니 자신의 죄를 깨닫고, 얼른 방향을 바꾸어 회개하여 주님과의 연합의 목적으로 돌아오라는 회유, 기다림, 기회, 사랑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도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것이다.
좋은 말 잔치로 축복하는 기도가 좋은 기도가 아니다. 그 사람을 살피지 않고 막연히 좋은 말을 다 하는 기도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시선으로 한 사람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대충 하는 기도가 될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해 기도 해줬다는 그 사실에 중요성을 두고 자기가 그런 시간을 내주었다는, 결국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줬다는 자기만족이고 자기 자랑이다.
그것은 결코 그 사람의 형편이나 주님의 뜻을 살피는 기도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 사람의 선택과 행보를 통해 그 사람이 지금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지, 또 그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은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고 주님께 여쭈어보면서 그 사람의 형편이나 주님의 뜻을 충분히 살피는 기도가 진정으로 좋은 기도인 것이다.
이와 같은 기도가 주님의 뜻과 부합되는 진정한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