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영적인 거리가 하나님과의 거리

by Momanf

로마서 7:18-25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맺으며 사랑하고 살고 싶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주셨다.

그런데 거짓말이 주님과 우리 관계에 들어와 죄를 지음으로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죄가 들어온 후, 우리는 육신에 갇혀 육체의 본능인 죄성대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주님 아는 은혜를 받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고 주님의 성령으로 우리가 진리를 이해할 수는 있으나 우리에게는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만 있을 뿐, 우리의 의지대로 주님을 따를 수가 없게 되었다.


마음은 있는데 되지 않는다.

그것이 참 이상하게 여겨진다. 내 마음이니 내 마음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 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내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더 높은 존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기에 주님을 따르고자 한다. 하지만 따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안다. 죄가 내 의지보다 더 큰 존재임을. 그래서 내 힘으로는 그 죄를 이기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음을.

그래서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주님이시다.

나는 죄를 이길 수 없지만 나는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하고 매달릴 수는 있다.


잠깐,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를 역사적으로 보면, 에덴동산에서는 주님과 우리는 연합된 존재였다.

죄가 들어와 분리되면서 우리는 멀어졌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성막을 짓게 하시고 그곳을 물리적으로 두어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깝게 하셨다. 그 후, 성전이 지어지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후에는 성령님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시간상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셨다.

우리의 최종 거리는 주님과 완전한 연합이다.


우리의 이 육적인 죄를 이기지 못함에 매일 알면서도, 혹은 모르면서도 죄에 넘어지고 회개한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과 육신적인 나약함과 죄를 좋아하는 본성 사이의 틈이 클수록 우리의 삶은 고통이 수반된다.

주님은 육신과 함께 사는 우리의 고통을 잘 아신다. 그리고 약속하셨다.

고통으로 사망하는 것이 우리의 최후가 아니게 하시겠다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고린도전서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 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요한계시록 22:1-5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나의 목적대로. 인디언처럼? ) 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육이 심기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지금은 하나님을 볼 수 없으나 참모습 그대로 보게 되고, 다시 저주가 없고 주님의 빛으로 밤이 없는 곳에 사는 것이 영생이라.

영생이란 결국 주님과 완전히 한 몸 되는, 연합체라는 의미다.



지금은 육신을 다스리는 주인과 영적인 주인이 달라 고통스럽고 괴롭다. 이것은 주님과 우리의 거리와도 같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주님의 뜻대로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주님을 듣고 느끼고 보는, 성령 충만이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영생에 이르러 우리가 육신을 벗고 부활채가 되었을 때, 주님과 우리는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우리에게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하나가 된다.

그때에 우리는 주님이 나고 내가 주님인 상태, 환한 빛으로 주님의 영광 안에 온전히 거하는 상태, 그래서 주님과 모든 순간에 동행하고 바라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주님과 나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온전히 연합할수록 그곳에는 더 이상 고통도 아픔도 괴로움도 미움도 슬픔도 분노도 없는 천국이 되는 것이다.


육신의 노예로 살아가지만 그것을 부단히 통제하고 괴로워도 세상의 법보다 주님의 말씀을 우선시하고 육신의 욕심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주님과 가장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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