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인간의 한계

by Momanf

요나서를 읽어보면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이것이 우리의 한계임을 잘 보여준다.


먼저 주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해 저 큰 성읍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 경고하라고 했다.

요나는 니느웨가 벌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에 주님의 말을 거슬러 도망간다.

그러다 폭풍우를 만나고 바다에 빠지지만 주님이 큰 물고기로 요나를 살리신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자신을 살려주신 여호와께 삼일 동안 감사하고 주님께 순종하겠다 서원한다.


다시 세상 밖으로 온 요나에게 같은 명령이 주어지고 요나는 하는 수 없이 니느웨로 가서 주신 말씀을 선포하자 니느웨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개한다.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화를 거두시고 용서하신다.

요나는 이것이 너무 화가 난다.

그래서 "내가 이럴 줄 알고 고국에서 도망친 것이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내가 알았다." 하며 빈정 거린다.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다." 하며 화를 낸다.

요나는 니느웨에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이 몹시 못마땅하고 화가 났다.


요나는 자기가 이 세상의 중심이고 정의였기에 니느웨의 잔인한 행동이 벌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께 서운하고 화가 났으며 억울했다.


요나는 성읍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려고 초막을 짓고 앉았는데 여호와가 박넝쿨을 준비해 그늘지게 하셨다. 요나가 그 박넝쿨을 심히 기뻐했는데 다음 날 새벽 벌레를 준비하사 그것을 죽게 하니 해가 뜨자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해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죽는 것이 내게 더 나으니이 다하며 또 화를 낸다.


주님은 네가 성냄이 합당하냐 하고 요나는 내가 성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다고 말하며 화를 낸다. 주님은 그런 요나에게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신다.


요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정의라고 생각하기에 내 죄는 생각지 못하고 남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내가 옳다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벌을 주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내가 합당하다고 생각하기에 남을 쉽게 용서할 수 없고 끝까지 따지고 내 성질을 주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주여 주여'하면서도 내가 화내는 것을 주님이 당연히 이해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벌을 주시라고 기도할 때가 많고 그 사람이 영적으로 깨어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할 때가 더 많다.


우리는 박넝쿨처럼 우리가 가진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심고 우리가 배양하며 키운 수고도 없는 것들은 당연히 우리 몫이고 우리가 잘나서 획득한 내 것인 줄 알며 살아간다.

공기도 건강도 가족도 내가 가진 모든 소유물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님에도 나는 그것들이 당연히 내게 주어지는 내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기에 감사함도 잊고 오히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에 짜증 내고 화를 낸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이 주님의 것이고 우리도 주님의 권세 아래에 있고 주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는다. 또 우리는 물리적인 죄를 짓는 사람들과 똑같이 속으로도 형제를 미움으로 죽이고 판단과 정죄로 때리고 치는 죄인임에는 똑같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심판의 권세는 오직 한 분, 예수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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