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인생은 해석이고 신앙의 유무에 따라 나뉜다.

by Momanf

우리의 시각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마리아는 비싼 향유로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카락을 닦고 이것을 본 가롯 유다는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예수님은 그녀를 내버려 두게 하시고 내 장례를 위한 것이다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목적을 같이 하시기에 자신의 죽음의 의미와 그것 때문에 세상에 오심을 분명히 아신다. 또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그렇게 행위했고 , 가롯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먹일 수 있는 돈이라 하지만 돈 자체에 목적이 있다.


또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에도 예수님은 구약의 기록대로 오신 것으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했고 사람들은 주를 향해 호산나를 외치지만 죽었다 살리신 나사로의 표적 행하심을 들었기 때문이다. 또 바리새인들은 세상이 그를 따른다며 권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같은 상황을 두고 모두의 관점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다.

예수님을 제외한 모두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해석하고 저마다의 욕심과 욕구로 행위하고 말한다.

예수님만이 모든 사건이나 말씀을 하나님의 목적에 두시고 그때를 알고 인간적으로는 두렵지만 자신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건지 정확히 알고 계신다.

구약의 약속대로 나귀를 타시고 20절을 보면 이방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주님께서는 드러내놓고 이제 그 목적을 분명히 밝히신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온 열국으로 복음이 전파되리라는 약속이 기억나는 구절이다.


23절: 내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그것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영원히 보존할 것이다.

27절: 지금 내 마음이 몹시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버지,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피하게 해 주소서. 그러나 나는 이 일 때문에 이때에 왔습니다.

28절: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31-33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받을 때이다. 이제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은 쫓겨날 것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하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것에 온전히 순종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이나 자기의 본성에 의한 시선으로 사건과 상황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말씀을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를 통해 아셨다.

이와 같이 주님의 모든 계획은 말씀 속에 있고 우리는 이 교제를 통해 우리에 대한 계획과 목적을 제시해 주심을 알게 된다.

성령충만할 때만이 말씀을 통한 나에 대한 계획과 목적을 볼 수 있고 영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주님의 시선을 갖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는 말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아무리 스스로 노력해서 주님을 알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지식이고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가 여전히 자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종교가 스스로 노력하게 만든다. 이것이 타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이다.

기독교는 절대로 스스로 성령 충만함을 받고 주님의 시각으로 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 마음의 시각은 내 영적상태가 바뀌어야 하고 내가 죄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 즉 성령충만만이 하나님의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해석할 때, 그 기준이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린다고 해도 그 속에 신앙이 없으면 세상적으로, 본능적으로 보고 듣고 판단하게 된다.

고통을 그저 단순한 고통으로 보고 피하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계획으로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

당장은 고통과 고난처럼 보여도 그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루실 목적과 꿈을 보기에 자신의 상처가 곧 자신의 사역지가 되고 그 상처로 인해 상처받은 자에서 끝나지 않고 치유자로 본질이 바뀜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좋은 인생이란 겉으로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그 안에 든 해석이고 그 해석이 주님의 관점이냐 세상의 관점이냐에 따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주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진리고 진정한 가치이며 목적과 계획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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