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을 아무리 중요하게 생각해도 우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함부로 한다.
함부로 하는 이유는 말이 가진 생명력을 진짜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 야"라고 말하는 것은 선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부정적으로 나는 바보야, 나는 진짜 엉망진창이야 이렇게 말하면 귀가 듣고 뇌로 보내
내가 바보로, 진짜 엉망진창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받은 감정과 생각은 거기에 상응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무엇이든 작은 것이라도 자기가 바보라는 것과 연관 지으며 바보가 되어야만 하는 증거를 수집하기 바빠진다.
몸은 또 평소에 잘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잘해오는 것도 자꾸 실수하고 떨어뜨리고 엉망진창으로 만들게 된다.
왜? 자기에게 자기가 바보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늙었어' '나는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늙어가게 된다.
'말'은 분명히 생명력을 가지고 행동한다. 우리가 명령한 대로 움직인다.
그러니 입 밖으로 뱉는 말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뱉아서는 큰일난다.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두어야 한다.
본능적으로 뱉으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고치기 힘들다. 우리의 본능은 무엇보다 죄성으로 오염되었기에 사랑도 없고 존중도 배려와 용서도 없는 말들을 한다.
무엇보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말을 내뱉아 상처를 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우리는 관계가 가깝지 않을 때는 어느 정도 조심을 하고 다 말하지 않는다. 거리감 때문에 예의도 지키고 절제하고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 대로, 감정을 느끼는 대로 파수꾼 없이 마구 쏟아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말로 인해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 내 가족, 그리고 친구, 이웃, 내 사회, 내 나라에게까지 함부로 말한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가족이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한다.
말이 잘못된 것은 사실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말의 파수꾼인 셈이다.
부모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만 이용할 뿐이지, 결국 '사랑'이 아니라 내가 만든 규칙이나 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협박을 하고 위협을 주며 가스라이팅을 하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 마음에서 하는 사랑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미 보여주셨다.
우리를 끝없이 용서하시고 기다려주시며 인내하시고 기회를 주시고 경험으로 가르쳐 주시며 반복하시는 그 사랑. 배려하고 이해하며 존중하고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하며 내가 맞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그 부분이 답일 수 있겠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랑.
마음이라는 파수꾼을 세우고 말을 하자.
또 말을 할 때는 이 세 가지를 잊지 말자.
메시지로 전달될 때 사용되는 단어, 말의 톤, 말의 어투.
여기서 말의 톤은 감정을 실는다. 화난 말투, 슬픈 말투, 즐거운 말투.
말의 어투는 말의 스타일과 문체, 딱딱한 말투, 반말, 정중한 말투.
가능한 바른 단어, 정확한 단어를 쓰기를 노력하고 때에 적절한 감정을 상대가 읽을 수 있는 말투, 그리고 말을 할 때는 늘 정중한 말투로 쓸 수 있다면 말은 영혼육이 일치한 정확한 말로 상대에게 의도한 바 대로 잘 전달될 수가 있다.
긍정적이고 정확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며 관계를 존중하는 말은 결국 행동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긍정적이고 생각과 감정을 정확한 방향으로 이끌며 모든 관계에 평화를 가져오고 사랑을 가져온다.
그리고 결국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말이 가진 생명력, 말이 가진 힘과 방향을 생각해 늘 좋은 말을 선포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