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서로에게 담길 때, 큰 바다를 이룬다.

by Momanf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면서 우리 세상에 담기셨고 이 한계가 있는 장소와 시간에 담기셨고 인간의 육체에 담기셨다.

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에 온전히 담기신 것이다.

온전히 죄인인 우리에게 담기셨기에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는 온전히 예수님께 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예수님이 이 담김으로 구원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담기기는커녕, 남과 나를 구별하기 살기 바쁘다.

내 영역에 침범했다고 불쾌해하고 싸우고, 내게 손해를 줄까 봐 감시하고 나에게 피해가 될까 봐 상대를 밀어내기 바쁘다.

그러니 상대의 입장이 돼 보지 못하고 상대를 도와줄 수도 없으며 상대에게 온전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없다.

또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육신과 세상에 담기셔서 우리가 주님께 담길 수 있었음에도 우리는 주님께 담기길 거부하고 나 자신에만 여전히 담기고 싶어 하는 이기심이 있다.


나 자신에게 담기기만을 고집하면 주님의 그 희생, 나를 위하신 구원은 아무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말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자기에게 담긴 사람은 예수님을,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누구에게도 담기지 못하고 그 어느 누구도 담을 수 없는 고립을 자초한다.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 서로에게 담기고 싶은, 이기적인 자신을 기꺼이 담아주고 싶은 주위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담겨 결국 주님께 담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고야 만다.

그것은 영원한 죽음이며 영벌이다.


자기에게만 담기는 것을 '자기 연민'이라 부를 수도 있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에게 빠져갈수록 오염된 고인 물에 갇혀 결국 죽고 만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담긴다는 것은 소통하고 이동하는 물로 확장하고

예수님께 담긴다는 것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마르지 않는 큰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시내천이 강을 이루고 강이 바다로 흘러가듯, 우리가 서로에게 담기고 주님께로 향하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큰 바다에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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