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 다니엘에게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먼저 그는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한 소년 중에 한 사람으로 뽑혀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배우고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먹으며 삼 년 동안 훈련을 받고 왕 앞에 서야 할 운명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바벨론은 다니엘을 포함해 그 친구들의 이름도 바벨론 식으로 바꾸며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처럼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했다.
이에 어린 다니엘과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와 함께 뜻을 정해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했다.
이때 다니엘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이렇게 주님이 개입하셔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믿음으로 내린 결단을 도우신다.
하지만 환관장은 얼굴이 다른 소년보다 초췌해지면 자신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말하며 거절한다.
하지만 이때, 다니엘은 우리의 믿음 때문에 절대로 먹지 못한다 하며 격렬하게 싸우기보다는
그럼 열흘 동안 채식과 물만 먹고 마시게 한 후에 진미를 먹는 소년과 비교해 보이는 대로 처분하라고 예의 바른 태도로 그에게 여전히 선택권을 준다.
열흘 후, 실험한 환관장이 그들의 얼굴이 진미를 먹는 소년보다 더 나아 보여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주지 않고 소년들에게 채식을 주었다.
이에 하나님께서,
1:17절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내가 눈여겨 본 첫 번째는 다니엘이 자신의 믿음을 위해 강력하게 대적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자신이 원하는 바, 즉 주님을 섬기는 마음을 위해서 상대에게 친절한 태도로 간구하고 여전히 선택권을 상대에게 주는 태도로 적일지라도 순종한다.
나였다면 내 믿음을 위해서 고기와 술을 마실 수 없고 이름도 바꾸지 말라고 상대에게 맞서 싸웠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두 번째는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내용까지도 말하지 못하면 모든 지혜로운 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명령대로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러 나갈 때, 다니엘이 아이옥을 찾아가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으니 기한만 좀 달라고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시간을 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시랴에게 이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구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그날 밤 이 은밀한 것을 주님이 보여주신다.
다니엘은 어려운 일 앞에서 사람들과 중보기도를 한다. 그에게 친구들은 한 주인을 섬기고 함께 협력하고 그 주인을 위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협력자다.
다니엘 2: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러하나이다
이렇듯 서슬 퍼런 왕 느부갓네살 앞에서도 용감하게 모든 권세의 주인이신 주님, 이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정확하게 선포한다.
이와 같이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주권자 되신 주님께 그 영광을 돌리고 용감히 주님을 선포할 때,
47절 :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권능 앞에 놀라워하고 엎드릴 수 있게 만든다.
이렇듯 선지자 다니엘은 사랑할 수 없는 상대인 바벨론 사람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예의를 다하고 사랑한다. 그것은 마음 중심이 자신이라 상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판단대로 사람을 구별하며 예의를 다하거나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주님이 기준되시고 상대가 누구든지 '사랑'으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춘다. 거기에 자신의 개인적인 미움이 없다. 온전하게 주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로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고 주님만 섬기는 자세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부인하였기에 상대가 적이든 누구든 일관된 태도로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주님의 뜻대로 섬길 수 있었다.
이런 자세로 주님 앞에 나갈 때, 주님이 환관장의 마음을 간섭하시고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보이시고 해석까지 하시며 온전히 주님이 일하시고 그래서 주님의 사람을 지켜주실 수 있다.
내가 나서서, 사람의 방법으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으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그렇게 살지만 선지자 다니엘은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고 비참한 포로 시간에도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한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앞섰다면 이렇게 평화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무엇인가 얻는 대신 격렬하게 맞서 싸우고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지도 모른다.
다니엘을 통해 전적으로 주님께 순종하는 자의 정체성과 그 태도를 배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