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2
한 달 5K 연습한 친구와 공원에서 달리기를 했다.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비는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왕 달리기로 한 것이라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말 그대로 폭풍우였다.
바람도 불고 빗줄기는 굵어서 땅은 금세 웅덩이가 여럿 생겼다.
그런데 무슨 오기인지 멈추고 싶지 않았다. 차갑게 내리는 비에 얼굴이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얼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뛰고 싶었다.
달리다 보니 비가 와 시원해서 좋았다. 물론 웅덩이에 발이 젖은 찝찝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폭풍우를 뚫고 뛰는 일이 뭔가 큰 시련이 닥쳐와도 핑계 대지 않고 목적을 향해 분명히 뛰어가는 내 모습에 어쩐지 스스로 뿌듯했다.
안경을 낀 친구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만하자고 했고 나는 안경을 벗고 뛰라고 말했다.
또 한참 뛰는데 친구가 공원에서 어떤 차가 따라와서 무섭다고 했고 나는 그냥 얼른 뛰어라고 했다.
목적을 향한 나의 집념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앞이 보이지 않고 무서움 따위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주어진 거리를 묵묵히 뛸 뿐이었다.
세상에는 우리가 뛸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목적으로 향하는 사람은 그것들이 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그것에서 장점을 발견하고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점점 단련된다. 그야말로 나의 훈련 도구이자 어려움 속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장점이자 나만 아는 비밀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날 최고의 기록을 이루었다. 35분 달리기가 마치자 거짓말 같이 비가 그쳤다.
나는 성취감과 비를 뚫고 달린데 대한 승리감에 도취되었고 그 어느 것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듯 목표와 가는 방향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방해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신념이 누구보다 높았고 앞으로도 그 목적을 향해 열심히 뛰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친구는 끝끝내 잘 따라오지 못해 뒤쳐졌고 다음 날 무릎이 상해서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나는 거기서 내가 다 성공한 게 아니라 반만 성공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단련되어 강해지고 성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건 나 혼자만이 이룬 성공이었다.
정작 나를 따라오던 친구를 돕지 못하고 몇 번이나 어려움을 호소해도 내 가는 길만 바빠서 핑계 대지 말고 달리라고 종용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결국 실력 차이가 큰 친구는 나를 따라오다가 자기 페이스를 잃고 무릎이 망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내 목표에 눈멀어 다른 사람을 너무 배려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협의하고 도와주며 함께 결승전으로 들어왔어야 했는데 나 혼자 목표를 정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운 상황은 돌봐주지 않고 앞만 보고 뛰었다.
얼마나 이기적으로 보였을까?
그래서 우리 인간은 잘하고 있는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목표에 대한 집착이 친구가 몇 번이나 도움을 청했지만 무시하고 그냥 뛰어가게 했다.
그러면서 내 목표에 다가가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페이스까지 너무 푸시해 버린 셈이 되었다. 나를 따라오던 친구가 무릎이 아프게 되었듯이 경험이 많은 내가 쉽다고 다른 사람을 목표에 집중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독려한다고 착각했던 나의 이기심을 봤다.
그냥 나처럼 뛰면 된다고 그렇게 뛸 수 없는 친구를 자극하며 무리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성취한 목표는 나에게는 좋겠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과 육체를 다치게 하고 슬프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유 없이 루저로 만들어 버리고 내 성취의 기쁨에 젖어 다른 사람이 그런 나 때문에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승리감에 도취되고 그 이면에 무슨 그림자가 있는 줄 모르고 이런 경험만 쌓여간다면 점점 교만해지고 이런 습관은 강화되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된다.
나는 먼저 친구를 돌보고 친구의 어려움을 듣고 도와줬어야 했다. 친구를 차까지 바래다주고 뛰고 싶으면 계속 뛰었어야 했다. 그것이 함께 성취하는 방법이었다.
또 그날은 안 뛰면 또 뭐 좀 어떤가? 함께 하려고 나온 그 마음이 중요하고 함께 뛸 사람이 있다는 것이 고마운 거지. 또 비가 와서 못 뛰니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좋은 추억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날은 잘 휴식하고 다음 날부터 다시 각자 열심히 목표로 뛰면 되는 것이었다.
달리기는 참 많은 것을 깨닫게 도와준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많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