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재밌는 것이 관계 속에서 주님이 없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 죄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기에 바쁘다.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장착하고 살아간다. 아이들도 가만히 잘 살펴보면 잘 놀다가 온통 잘잘못을 따지면서 싸우기 시작한다. 이 싸움은 끝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옳고 나와 관련해서는 모든 것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좀 냉정하게 잣대를 들이밀며 그릇되었다고 생각하고 이유를 변명이나 핑계라고 치부한다.
그러니 관계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기준이 죄성 있는, 매일 기분 따라 생각 따라 변하는 한 개인에게 있는데 어떻게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서로의 옳고 그름의 기준이 각자에게 있기에 옳고 그름을 따르는 자체가 잘못된 것 같다.
그럼 관계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첫째, 기준이 모두 죄성과 시시때때로 변하는 나나 상대가 아니라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우리의 기준이 변하는 사람 마음에 두었기에 아무리 옳고 그름을 따져본다고 해도 사실 거기서 누가 맞고 틀리고는 의미가 없다.
둘째,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 상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얼마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옳고 그름은 오직 주님만이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수 있다. 그러기에 나와 상대를 바라보지 않고 기준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주님과 나의 관계를 살펴보며 깊은 죄를 가진 죄인인 나를 주님이 어떻게, 얼마나 사랑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지를 되새긴다. 그 후, 내게 중요한 것만 남게 된다.
"날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던, 값을 치르셨던 주님처럼 저는 저 죄인을 어떻게 사랑하고 얼마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바꾼다.
"누가 옳아요? 너무 억울해요"의 기도에서 "주님, 저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데 정말 어떻게 사랑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얼마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제발 저에게는 미운 마음뿐이니 제게 능력과 힘을 주세요."
너무 억울해 복수해달라는 기도가 아닌, 사랑할 수 없으니 도와주세요 하는 기도는 주님의 마음과 연합을 이루어 즉각적인 응답이 있다.
복수하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가 이렇게 대상과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 성도에게 주신 '사랑'하라는 계명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