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진정한 거룩함은 초막절을 누리는 일이다.

by Momanf

먼저 '거룩함'이란 용어를 정확히 정리하고 싶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키라고 한 세 절기 중 '초막절'의 의미를 정리하겠다.

그리고 이 '거룩함'이 결국 '초막절'을 누리는 일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리하겠다.


1. 거룩함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법을 어기고 계명을 어기는 것을 우리는 흔히 죄라고 한다. 세상의 법규를 어겨도 죄를 짓고 벌금을 물거나 법원에 가고 감옥을 간다. 죄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드시 벌 (penalty)이라는 결과가 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인 선악과를 먹었고 십계명을 어기고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기고 사는 것이 '죄'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지킬 수 없는 것이 이런 '율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으로 영적으로 사망에 처하게 되었다.

거룩함은 이 '죄'와 상반된 개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과 계명을 잘 지키는 상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상태가 이 '거룩함'인 것이다. 우리가 거룩하려면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안된다.

사망에 처한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고 구원받고도 죄의 힘으로부터 이기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성령'을 보내 주셨다. 우리 안에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돕고 진리가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다. 결국 예수님의 구원과 성령의 힘으로 우리의 존재는 '죄인'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예수님과 완전히 연합되는 것이 우리의 회복이고 우리의 태초에 모습, 인간이 하나님 닮은 형상을 온전히 되찾는 것이다. 결국 거룩함은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가능하다.


2. 초막절은 성경에서 말하는 3대 절기 중 하나다.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올라가 지켜야 했던 절기로 이 절기들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깊이 연결된 절기다.

출애굽기 23:14–17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앞에 보일지니라.”


-유월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죽음이 "넘어갔다. (Pass over)" *구원

-오순절: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절기.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이라서 오순절=50일. 신약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한 날이 바로 오순절이다. -교회의 시작, 성령의 임재 *성령과 새 공동체

-초막절: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보호받으며 살았던 것을 기억하는 절기. 사람들은 초막 (임시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지낸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한신다는 의미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초막절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영생이라는 의미가 있고 이 땅은 광야처럼 잠시 지나가는 곳임을 의미한다.

초막절은 곧 '임마누엘'을 기억하는 것이다.


자, 그러니 이 초막절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영원한 주님'을 누릴 때, 거룩하게 살 수 있다는 결론에 닿는다.

물론 유월절의 의미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넘어가게 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 오순절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공급에 감사 절기를 누리고, 성령을 받아 구원 후, 죄를 이길 수 없는 우리를 사는 동안, 광야를 걷는 동안 우리가 죄에 빠지면 회개하고 돌아오고 악을 싫어하며 죄를 짓지 않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신 사실을 통해 우리는 성막으로, 성전으로, 우리의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을 누리는 것. 그것이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된다.


거룩함은 성령충만을 누리는 것, 온전히 주님께 의지해 내가 악과 싸우려 하지 않고 물리적인 해석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영적 전쟁을 주님께 맡기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내 힘과 의지로는 죄를 지울 수 없고 율법을 지킬 수 없지만 내 안에 성령이 충만해 온전히 주님과 내가 연합할 때는, 주님이 나를 통해 그 율법을 지키신다. 그것이 결국 거룩하게 , 세상과 구별되어 사는 삶이다. 불순물 없이 온전히 깨끗해진 상태. 육신과 세상으로부터 괴롭지 않은 새 땅, 새 날. 영생에서 우리가 누릴 완전한 거룩함이 우리의 소망이다.


거룩함은 내 통제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질서와 자유의 빛의 회복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누리고 두려움 없이 사는 삶에 초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가 아니라 주님을 충분히 누리는 것이 곧 거룩함이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향력을 억누르고 방해하며 살고 있다.

-생각의 영역: 비교와 질투, 정당화, 은밀한 상상, 계속 붙들고 있는 분노- 생각은 거룩한 행동 이전에 통과하는 첫 관문이다. 우리는 함부로 생각함으로 이것에서부터 막힌다.

-말의 영역: 집안에서는 날 서고 빈정거리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말을 자주 하고 야단치고 가까울수록 은혜롭지 않는 말을 내뱉는다. 함부로 내뱉는 말이 거룩을 가장 쉽게 막는 영역이다.

-돈과 소비의 영역: 재정 결정에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안전과 성공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한다. 돈은 종종 우리가 가장 마지막까지 붙드는 '통제권'이다.

-관계의 영역: 용서하지 않고 남겨둔 감정, 끊지 못하는 건강하지 않은 관계, 사람의 인정이 하나님의 인정보다 더 중요한 자리는 관계에서 가장 선명히 드러난다.

-통제의 영역: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하는 자리에는 자녀문제, 미래계획, 명예, 사역등이 있다. 하나님은 믿지만 결정권은 내가 쥐고 싶은 영역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우리를 주님을 누릴 수 있는 거룩함에서 방해하는 영역으로 깨달아야 한다. 통제권을 놓아야 주님의 온전한 통제력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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