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나침반
느헤미야 1장을 보자.
친구 하나니를 통해 수산궁에 사는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성은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느헤미야의 기도 1:4-11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 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 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헤미야의 중보기도 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본다.
먼저, 주님이 누구신지를 똑바로 인지하고 찬양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선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해 달라는 자세로 주님이 명령하셨던 말씀을 상기해 왜 자신들이 벌을 받고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심판에 대한 약속보다 더 중요한 이스라엘과 하나님 관계의 언약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죄에서 돌아오는 자녀들이 주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면 죄가 깊어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주님이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를 형통케 하셔서 주님의 나라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은혜 입게 하소서.
느헤미야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기도를 하고 있지 않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회개하고 회복되기 위한 힘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기도의 힘이 여기에 있다. 기도의 가장 큰 핵심은 '방향의 수정과 전환'에 있다.
1. 먼저 개인의 꿈과 목적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목적으로 변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2. 개인적인 욕구에서 공동체의 욕구로 변한다.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3. 나와 다른 사람관계의 문제가 나와 하나님의 관계로 방향이 바뀐다. (하나님 앞에서 내 문제를 바로 본다)
4. 상대가 나와 생각이 다르면 비난과 판단이 일어나고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중보기도를 통해 비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제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은 이성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거나 바른 판단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기도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이 내가 알바를 모르고 기도할 때, 나의 중보자가 되어 주셔서 나 대신 바른 기도를 해주시는 것처럼 나도 틀렸다고 비난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 주님께 대신 바른 길로 기도해 줄 수 있다.)
5. 주체자가 나에게서 주님이 된다. 기도는 내가 일방적으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내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간구에 집중하지 않고 주님께서 내게 목적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Yes , No, Wait, Go, Grow."
주님은 이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로 반드시 응답하시고 내 마음의 방향을 바른 목적으로 수정하신다.
특히 네 번째 내용은 '중보기도'의 핵심 내용이 된다.
어떤 상대와 내 생각이 다를 때, 상대를 위해 비난하는 대신 상대를 위해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길을 기도해 준다. 입으로 내 생각을 뱉어서 말하면 상대는 고난 중에 더 심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잠잠히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내가 생각했을 때, 비난하고 싶고 틀린 부분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바른 해결책을 상대를 위해 기도로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이다. 상대에게 말로 비난하거나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게 된다. 또, 나도 틀릴 수가 있다. 그래서 최종 선택은 상대와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이 판단하셔서 가장 좋은 것을 그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나는 틀렸을지도 모를 내 방법을 주면서 서로 불편하고 감정이 상하는 대신 창조주 하나님의 가장 좋은 선택을 간구할 수 있다.
내가 정말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끊임없이 반복하기보다는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주님께 예배하는 시간에 그 기도 제목을 제물 삼아 올려드리자. 사랑하는 만큼 정성을 들여 기도하자.
그것이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중보기도는 비난과 정죄에서 그 사람을 위하는 최고의 방향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된다.
자칫 해결해 주고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말로 상처 줄 수 있는 상황을 그 사람을 마음으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생각하는 상황으로 변한다.
결국, 기도는 이기적이고 목적에서 멀어진 마음을 바른 방향으로 바꿔준다. 주님의 날아와 의의 방향으로 맞춰주고 예수님과 일치하는 기도를 통해 주님의 응답의 주파수에 맞춰진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목적과 내게 주신 가이드라인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결국 기도가 나를 바른 방향을 향해 순종할 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