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Y 삶과 죽음에 관한 정의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최고인가에 대한 고찰

by Momanf

Memento Mori. Carpe Diem 내 왼쪽 팔 문신이다.

모두 죽는다는 불변의 진실. 그러니 인생을 즐겨라.

이것은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생각이며 이것을 통해 나는 사실 삶과 죽음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 자신을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요즘 삶과 죽음에 정의를 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많은 문학을 읽었고 많은 강연을 듣고 통찰력을 키웠지만 늘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이 삶이다.


죽음에 대한 정의

사람들은 각기 평생을 살 것처럼 산다. 우리의 착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우리가 만든 이미지 속의 죽음은 무섭고 괴기하고 어둡고 음산하다.

그래서 죽음을 거부하고 두려워하고 부정해버리며 매일을 살아간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모든 삶의 문제는 이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우리가 하루를 힘겹게 여기는 문제도 죽음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하지만 그럴수록 문제는 더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가까스로 그 문제에 벗어나도 머지않아 또 다른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삶은 모두 문제가 되고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냥 반복된 하루 쳇바퀴 속에서 버겁게 살아간다. 그러가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은 때론 누군가에게는 급작스럽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시간의 한계가 의사로부터 주어지기도 하고 죽음이 언제인지 모르는 삶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가?

그 어떤 것을 선택한다 해도 완벽한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거창한 준비가 아니다.

이 삶을 현존하는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고 그 결과로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삶으로 마감하고 있는지를.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그것이 죽음의 준비이다.

사실 생의 마감이 죽음이기에 이것은 최고 경지의 깨달음이고 이것이 준비된 이의 마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죽음준비가 잘 된 사람의 죽음의 이미지는 풍성하고 근심 없는 낙원처럼 여겨질 것이다.


죽음을 바로 알고 제대로 된 준비를 하는 것이 삶을 대하는 첫 단계이자 삶의 마지막 단계이다. 이것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실마리였다.

이것이 매 순간 놓인 자신의 삶을 바로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육아로 몸과 마음이 지쳐도 아이와 자신이 건강한 것에 감사할 수 있고 아이의 존재만으로 감사할 수 있다.

배우자와 의견 충돌로 다투고 싸워도 함께 가정을 꾸려 만들어 가는 배우자가 가정을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해하게 되고 감사할 수 있다.

부모가 어린 시절 한 잘못을 기억하며 아파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미울 때에도 건강한 신체로 낳아주고 길러준 것과 곁에 있어 준 것에 감사할 수 있다.

또 이런 식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연민을 갖고 공감할 수 있다. 그것은 서로 돕고 베풀고 감사함을 주고받으며 평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가족과 친구와 더 자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으며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또 건강한 신체가 있어 일을 할 수 있음과 나의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벌어 나와 내 가정을 책임지는 일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인가 자랑스럽고 감사할 수 있다.

천국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축복임을 느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사랑을 느끼는 그 마음이 천국이다.


죽음의 준비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죽음은 내가 왜 존재하는지 이유와 내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삶의 시간 동안 거쳐간 과정에서 참 자아를 알고 이해하게 되며 자신의 전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셋째, 죽음을 매일 매 순간 상기한다면 후회를 줄일 선택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넷째, 매일 똑같은 일상이 아니라 새로운 날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섯째, 나를 둘러싼 우연이 인연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소한 것이 큰 의미가 있는 사건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내 존재와 내 일상과 우연과 인연이 모두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곱째, 죽음은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해결해야 할 것인지 깨닫게 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여덟째, 내 주위 사람들에게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하게 한다.

아홉째, 일상을 매지컬 하고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다.

열 번째,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맨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한다.


삶의 정의

우리는 늘 운명인지 의지인지를 놓고 인생을 논할 때가 많다. 아주 오랫동안 그래 왔다.

그것은 정확히 반반이고 어우러져 있고 서로 원인과 결과라는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죽는다는 배경이 이미 세팅된 것이라면 죽음은 운명이다.

삶은 의지이다. 죽음은 내 능력 밖의 일이지만 삶은 내 능력 안이다라는 말이다.

물론 그 삶의 현장과 환경에서 이미 세팅된 무수히 많은 것들은 존재한다. 가령 어느 나라에 태어났는지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살고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 등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다. 심지어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것도 운명이다. 그렇지만 늘 선택의 여지, 즉 의지는 남아있고 그 의지에 따라 운명에 영향을 주는데 이것이 삶이다.

삶은 주어진 환경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해 주어진 운명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는지의 이야기들이다. 태어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늘 도전을 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들과 도전은 옳은 것도 잘못된 것도 없다.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게 나쁜 것이기도 하고 나쁜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은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야만 알 수 있기에, 혹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많기에 우리의 선택은 맞고 틀리고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으로 부를 누리고 권력을 갖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잣대로 나 자신과 상대를 판단하고 충돌하기도 대접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조언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기도 질투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다.

좋은 것, 나쁜 것조차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 해서 그것이 삶의 정의라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거기다 주어진 운명은 각기 다르고 사람마다 그들의 의지도 다르다. 이렇듯 일상과 삶은 모호하기에 우리는 삶이 힘들고 고통이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명백하지 않기에 혼란스럽고 기준이 없기에 늘 형평성 맞지 않는 타인과 비교하고 욕구와 의무 사이에서 줄다리기해야 하고 옳은 건지 그른 건지 선택의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듣는 뉴스도, 내가 믿는 신념, 내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다 옳다는 생각 자체가 그래서 문제를 야기시킨다.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것이 그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없고 좋고 나쁘고 가 없는데 우리는 둘 중 하나를 기준 잡아 내것은 옳고 나머지 하나는 틀리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러한 기준은 늘 인간의 의지에 영향을 미쳐 선택을 하게 만들기에 중요하다.

선택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없는데 선택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삶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연속은 분명히 운명을 바꾼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과 불변하는 진리를 갖고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삶인가?

첫째, 기본적인 것은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냥 죽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죽는 준비를 매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는 준비란 완전히 내가 누군지를 깨닫고 받아들이고 감정의 좋고 나쁜 상태가 아닌 만족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그리고 죽음은 매일, 매 순간 생각해야 한다. 정말로 우리는 언제 죽을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정답은 없으니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내가 맞는지 타인이 맞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내가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삶이기 때문이다.

셋째, 내가 의도하는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고 상대의 감정도 정확히 이해하는 과정의 대화를 해야 한다. 말과 행동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뭘 하는지, 상대가 뭘 원하는지 의도를 명확히 알아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에너지는 감정의 소모에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도를 명확히 하는 대화에 써야 한다.

넷째,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천천히 행동하고 관찰해야 한다.

다섯째, 주어진 것을 충분히 음미하고 감상하고 감사하는 여유를 습관화해야 한다.

여섯째, 시간과 습관은 내가 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법칙이 있다. 사소하고 작은 것부터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꿈을 이루게 한다.

일곱째, 과거를 통해 지금 내가 있듯, 지금에 내가 사는 방식이 내 미래가 된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고 현재에 내게 집중해 나를 가꾸고 다듬는데 신경 쓰자.

여덟째, 자기 평가는 타인이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이 즐겁고 만족스러웠고 충분하다 여기면 되는 것이다.

아홉째,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와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는 상태의 에너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하다. 그러니 행복 기쁨을 쫓기보다는, 혹은 실패와 좌절을 피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적당히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을 하고 행동을 하다가 마음이 시키지 않으면 몇 번이고 수정을 하며 편안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 번째, 가능한 하고 싶은 말, 행동을 미루지 않는다. 당장 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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