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고 걷다 보면 언젠가 거기에 도착하겠지
아이들 프리스쿨에서 오늘부터 1주 동안 inspiration week이라 월요일인 오늘 future career의 주제로 옷을 입고 갔다.
딸은 발레리나, 아들은 우주비행사.
분주하게 코스튬을 챙겨 아이들을 학교 보낸 후, 산책을 나서는데 내 꿈은 뭐였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주 어릴 때는 가수도 원했고 대통령도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 란에는 선생님도 있었고 경찰도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해 내 꿈은 작가였고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그 후 학업성적에 맞게 육아 교육과 진학을 하려다가 20살에는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있어 합격한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빠의 미래 전망에 맞춰 떠밀려 들어간 학교와 과에서 꿈을 잃었다.
그리고 몇 년 방황하다 영어 선생님이 되었고 행복했다.
하지만 11년 동안 영어 선생님으로 지내면서 뉴욕 브로드웨이로 가서 연극을 연출을 소망했다. 그때가 내 나이 30살이었고 진로 고민으로 교수님과 상담하던 중 교수님께서 국제회의 전문가가 돼보라고 하셨고 전문가들과 만남도 주선해주셨다.
나는 유학을 하면서 국제회의 전문가로서 영어실력 쌓는 것에 몰두했고 돌아와서 아주 짧게 국제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기에 대학원으로 들어갔다.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또 다른 꿈을 갖지 못한 채,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한 번도 바뀌기 않았던 작가의 꿈.
아이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기 위해 처음으로 마음먹고 소설을 썼고 수정 중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다른 꿈이 생겼다.
사실 MBA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MBA를 권유했기에 그때도 좌절되었던 꿈이었다.
나는 가족, 결혼 상담자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내년 미국에서 다시 학부에 들어가 관련학을 전공하기로 했고 남편이 적극 후원해주기로 했다.
한 7~8년 대학, 대학원 과정을 마쳐야 전문가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가슴이 뛴다.
그동안 작가라는 꿈도 꼭 이루겠다.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로서, 또 상담전문가가 되어 그 누군가의 인생도 헤피 앤딩으로 수정하는 일을 하고 싶다.
상담은 글쓰기의 연속이기도 하다.
엄마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내년 만 40에 다시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생이 된다. 우리 블레어, 제임스 꿈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늘 지지해주어야지.
꿈이 없는 것보단 꿈을 위해 살아가는 날들이 즐겁고 꿈을 꾸고 걷다 보면 언젠가 거기에 닿을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