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 너의 성장을 응원해

아이들과 엄마는 함께 성장한다.

by Momanf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은 엄마를 자꾸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한다.

어른이었지만 어른답지 못했던 내가 아이들을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졸이고 걱정하고 나 자신보다 그 누구를 위하면서 나 자신이 바뀌어감을 느낀다.

겉모습보다 속이 알찬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그 누군가의 불편한 감정에 이해심을 가지게 되어다. 작고 사소한 일에 무한한 감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이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제임스 덕분에 나는 요즘 격세지감을 느낀다.

작년 이 맘 때, 나는 미국에서 정착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8월 중순.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언어도 통하지 않은 채 보내지게 되었다. 배변훈련도 강조를 안 했기에 블레어와 제임스는 기저귀까지 하고 있었다.

작년에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시간을 거슬러 올려본다.

제임스가 24개월 무렵 자폐스펙트럼을 의심해 가슴이 무너져 내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 병원 두 곳의 검사 결과 또래보다 발달지연으로 10개월이 뒤쳐져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어린 시기에 10개월은 함께 키우는 블레어와 비교했을 때, 완전히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것 같아 늘 마음이 쓰였다.

제임스는 한국어로도 자기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했고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도 몰랐다. 겨우 30개월쯤에 “엄마”라는 말도 의미를 갖고 말했기에 제임스는 내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제임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가 산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아이를 감각통합수업과 언어와 사회성 치료를 받으며 미국으로 오는 일정까지 미뤄가며 신경 썼다.

아이의 감각통합수업은 완료가 되었고 언어치료 전문가도 오히려 아이가 천재성이 있다는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미국으로 왔기에 나는 제임스가 잘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보낸 첫 주부터 약 10일 동안 기저귀 벗는 것조차 낯설어하는 아이를 울리며 기저귀를 벗기며 배변훈련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실수하는 날에는 선생님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나는 감사하다고 꽃을 사드렸다.

다행히 배변훈련이 잘 끝나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그다음부터는 일종의 문제를 일으킨 아이에게 오는 편지가 계속되었다.

한 번은 집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면 친구들이 놀고 싶지 않아 할 거라고 가르치라는 선생님 말에 마음이 아팠지만 제임스를 혼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가 친구가 좋아 세게 안고 장난치는 행위라는 것은 엄마인 나만 아는 것이었다.

그다음 날은 옆반 선생님으로부터 집에서 뭘 가르치냐는 다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때 제임스는 학교에 들어간 지 한 달도 채 안되었다.

나는 그 편지를 받고 억장이 무너져서 울고 또 울었다.

거의 1년 동안 한국에서 아이에게 신경 쓰며 고생했던 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그날 밤, 그 선생 자격도 없는 옆반 선생님께 다음날 어떤 복수의 말로 그녀를 아프게 해 줄지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새벽 무렵, 나는 그것을 포기했다.

아이를 이런 학교에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아이는 학교가 좋다고 했다.

나는 그날 욕 대신에 꽃을 사서 아이의 선생님들에게 카드를 써서 드렸다.

제임스를 스트레스로 보지 말고 이 꽃처럼 봐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그다음 주부터 내 마음이 통했는지, 아이도 한 달이 되니 적응이 되었는지 학교에서 디렉터부터 선생님들까지 제임스를 너무 사랑한다며 잘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생님 말을 잘 안 듣고 제멋대로 하는 제임스는 학교의 권유로 발달검사를 한 달 동안 진행하게 되었고 다행히 다른 것을 제외하고 사회성 치료를 위해 프리스쿨 후, 1주일에 3회 특수학교에서 2시간씩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 학기를 마치고 이번해 학기가 시작된 한 달만에 코로나바이러스로 문을 닫았다.

나는 3월에서 8월까지 그저 애들을 놀릴 수만은 없어서 이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엄마표 놀이를 찾기 시작해 아이들과 그냥 놀기 시작했다.

엄마표 놀이는 아이들보다 나를 더 많이 가르쳐 준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의외로 집중하고 기억하는 모습에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싫고 재미가 없어 그저 아이들과 홈스쿨이라는 명목으로 책을 읽고 그것을 주제로 그리고 만들고 놀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이번 학기 8월에 중순, 아이들은 6개월 만에 학교로 돌아갔다.

제임스는 예전 그대로의 만 3세 반에 보냈고 블레어는 Pre-K로 한 단계 올려 보냈다.

처음으로 두 아이들은 분리되었고 블레어는 블레어대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며 더 이상 제임스를 챙겨주지 않고 자신만의 친구를 만들었다.

제임스는 또래보다 한 학기는 거쳤으니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 그 클래스에 머물게 했는데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로였다.

제임스는 이미 자기가 잘 알고 있으니 대답도 잘했고, 그것은 수업 참여도를 높였다.

학교 갈 때마다 선생님께서 내게 제임스가 너무 잘하고 있단 말을 하며 나에게 다 내가 잘 가르쳐서 그렇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지난주, 남편이 특수학교 선생님을 만나 중간점검을 받고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께서도 이제 일반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다며 이제 특수학교도 자주 올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엄마가 대단하다고 전해주라고 했다. 아이가 6개월 만에 눈부신 발전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제임스가 영재인 것 같다고 검사를 해봐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제 제임스는 이곳에서 적극적으로 영어를 하며 신나게 생활하며 지낸다.

그래도 엄마인 내 눈에는 또래보다 여전히 말귀를 못 알아듣고 집중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상황을 이해하는가에 의심이 있었다.

그런데 어제, 제임스가 나를 울렸다.

블레어가 냉장고 문을 열다 언 닭고기에 발이 찧여 엉엉 울자, 블레어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Calm Down, Blair,”하더니 밴드를 가지고 와 붙여주었다.

나는 그 상황을 남편에게 전하며 울컥 눈물이 나왔다.

아이는 느리지만 자라고 있었다.

눈치가 없이 장난만 쳐 걱정스러웠는데, 어떨 때는 제임스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싶기도 했고, 밖에 나가서 눈치 없이 굴어 천덕꾸러기가 될까 봐 노심초사했었는데

아이가 느리긴 했지만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을 잘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 얘기에 공감 못할지 모른다.

나도 블레어만 키웠으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임스 덕분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장해나가는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남들에게 보통이라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 내게는 그렇게 되지 못할까 봐 마음을 졸인 날들이 많았고 다른 아이들처럼 행동하면 감격했다.

제임스가 또래와 비교했을 때는 여전히 느리겠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마음을 졸이지 않기로 했다.

제임스 곁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식사를 엄마와 함께 정성 들여 준비하는 아빠, 아이들의 목욕을 담당하고 잠자리를 준비하며 전 세계를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아빠가 있다. 아빠는 엄마에게 최적의 환경과 행복을 제공함으로써 엄마가 육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나보다 더 제임스를 챙기고 제임스가 더 말을 잘할 수 있게 매일 곁에서 쫑알거리며 놀아주는 블레어, 그림 그리는 방법,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 등 블레어는 제임스를 가장 많이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가끔 엄마에게 혼날 때는 온몸으로 제임스를 막아주는 블레어가 엄마인 나보다 제임스의 성장에 가장 많이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제임스의 눈부신 성장 일등공신은 단연코 블레어다.

시누 말대로 하나님이 블레어, 제임스를 함께 주신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 전 세계의 엄마 아빠의 친구들인 이모 삼촌들이 우리 제임스를 사랑하고 기도해주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블레어와 제임스는 정말로 내게 특별하다.

왜냐면 별 볼 일 없던 엄마를 진정으로 성장시키고 거듭나게 해 주며 감사와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건 진정 아이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