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Y 술 예찬

by Momanf


며칠 전 나는, 미국으로 와 처음으로 다니던 한국 Baptist 교회를 그만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교회는 특히 술 마시는 것을 죄로 치부하는 탓에 그동안 온라인 설교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었다.

그러다 최근에 미국계 장로교회의 성경 공부를 다니며 교회마다 성경의 해석이 다르고 술에 관한 잣대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신을 믿는다.

하지만 성경을 쓴 것도 인간, 교회를 만든 것도 인간이기에 성경과 교회에 대해서 만큼은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어릴 때 친구들과 놀 수 있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교회의 이중적인 모습에 거부감이 생겨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작년 미국에 오기 전, 책 ‘지선아, 사랑해’를 통해 다시 교회 나갈 결심을 굳혔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종파의 교회를 다니며 나와 가장 결이 닮은 곳을 찾고자 했다.

그 처음이 Baptist였고 한국계 교회라 술을 금지했기에 나와 맞지 않았다.


나에겐 술에 대한 철학이 있다.

나는 사실 술고래 집안에서 태어난 유일하게 술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맥주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고 얼굴도 붓고 두통도 심했다. 소위 알코올에 알레르기가 있다.

하지만 이런 내가 요즘에 매일 와인을 두 세잔 마시는 애주가로 변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술은 불편하거나 힘든 일상을 즐거운 일로 각색해준다.

매트릭스 영화를 보면 네오가 파란색 알약을 먹을지 빨간색 알약을 먹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빨간색 약은 현실을 똑바르게 보게 하고 파란색 약은 그 반대다.

내게 일종의 파란색 약 역할을 하는 것이 술이다.

가끔 너무 긴장한 상황, 쓸데없는 걱정과 생각이 많은 현실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나는 술을 마심으로 예민한 신경 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마비시킨다.

때론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도, 쌓인 집안일을 해내는 일도, 지루한 일상이나, 미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거나 외로울 때도 있다.

그럴 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술로 조금 마비시키면 아이들과 함께 사소한 일에도 웃고 장난치며 놀 수 있고,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즐겁게 집안 일도 할 수 있다. 술 한잔 마시며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과 스토리에 빠져 울고 웃으며 단순하게 내 감정에 충실하기도 하고, 술 한잔 들이켜면 그동안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전화 걸어 수다 떨기도 한다.


술은 친구이다.

나는 특히 와인을 좋아하는데 와인은 출생지와 성격, 음식과의 궁합이 있기에 내가 특히 즐겨 마시는 술이다. 출생지와 나이,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새 친구를 사귀는 것 같다. 혼자 음식을 먹을지라도 와인과 함께 한다면 친구와 밥을 먹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나는 가끔 특별한 날이나 여행할 때면 와인을 곁들여 혼자 식사를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그곳에서 마시는 와인은 나에게 그 나라를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주기도 한다.


술은 부부의 대화의 시간이다.

내 남편은 애주가이기에 그와 나누는 술 한잔은 우리 부부만의 시간이 된다. 술을 마시면서 정치, 문화 얘기, 우리의 어린 시절, 친구 얘기, 나의 고충 등을 나눌 수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한다. 특히나 생각이 너무 많은 우리 부부는 술을 한잔 마심으로써 걱정을 맡고 있는 부분을 마비시키고 인생은 즐겁고 단순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술을 또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매개체이다.

물론 술에만 의지해 표현하는 감정은 다소 문제가 있겠지만 나이, 사회적 체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감정을 원초적으로 표현해주기에 술은 사람을 순수하게도 만든다. 나는 특히 술을 마시면 내 곁에 있는 모든 이를 사랑한다고 느낀다. 내가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마저 이해할 수 있으며 모르는 타인에게도 친근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과 밖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옆 테이블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테이블을 합치고 결국 모두가 어우러져 술을 마시는 일이 종종 있다.

술 한잔을 하면 나를 가로막던 경계들이 허물어지며 우리 모두는 한 인류라는 것에 인류애를 느낀다.

때로는 그동안 섭섭했던 일, 내 깊은 감정 속에 있던 내 수치심이나 자책감을 끄집어 내 상대에게 진정한 속마음을 묻기도 하고 내가 사과를 할 때도 많다. 그렇게 타인과 진솔한 관계를 맺게 돕는다.


술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문화와 언어, 나이와 성별, 직업과 관계없이 모두 친구가 된다. 그리고 술을 한 잔 마시면 노래하고 춤을 춘다. 그리고 많이 웃는다. 우리는 모두 아이로 돌아간다. 그것이 진정한 즐거움이다. 다름을 이해하고, 다른 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본능적인 웃음과 제스처로 서로가 말이 통하고 함께 즐거우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놀게 된다.

때론 술 한잔을 마시면 왜 그런지 내 영어가 평소보다 더 자연스럽다. 잘 들리고 잘 말하게 된다.


나는 절대로 술이 죄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모든 감정이나 행동과 마찬가지로 술을 가지고 나쁘게 활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술에 의해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것이 죄이지 술이 죄는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술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렇기에 적당한 술은 나이가 들수록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 것 같다.

오늘도 술친구와 인생 이야기를 이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