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달빛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고 진우와 우람이는 제일 먼저 가방을 들고 뛰어나갔다. 복도가 미끄러우니 뛰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다 다치면 선생님 마음이 아프니 절대 뛰지 말라고 부탁도 해봤지만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있는지 아이들은 복도를 마치 육상선수처럼 뛰어다닌다. 그렇게 두 녀석이 서둘러 나가고 오늘도 단오와 연두가 같이 집에 가겠다며 나를 기다린다. 오늘 했던 수업자료를 정리하고 아이들이 사용한 책상과 의자를 닦고 달고나 게임을 하겠다며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조각을 낸 우람이 덕분에 바닥을 쓸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또 연두가 울었다. 1시간 반을 수업하는 동안 습관처럼 징징거리는 것을 서른 번쯤 듣다 보면 나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정말 들을 때마다 속상하다. 연두는 아직도 세 살 어린애처럼 우는 소리로 감정을 표현한다. 문제가 있으면 충분히 말로 표현할 수 있음에도 아이는 언제나 눈물이 무기다. 잉잉, 징징……. 달래도 보고 설득도 해봤지만 아이는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빗자루를 정리하며 단오와 연두를 불렀다.
“왜 그래요?”
이번에는 그냥 우는 소리뿐만이 아니다. 연두는 뭐가 문제인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소리친다.
“쟤가 거짓말했어요!”
“누가?”
“단오가요! 단오가 거짓말했어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단오를 쳐다보니 단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무슨 일인데?”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는 단오에게 물으니 연두가 먼저 소리친다.
“나는 양말 안 두고 갔는데, 자꾸 양말 두고 간다고 거짓말했어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도 황당해서 쳐다보니 단오가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한다.
“아니, 연두가 점퍼 안 입어서 너 왜 점퍼 두고 가냐고 했는데…….”
단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두를 쳐다보니 이제는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른다.
“나 양말 안 두고 갔는데 왜 거짓말하냐고!”
순간 나도 연두를 향해 소리 질렀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디 선생님 앞에서 소리를 질러?”
내가 큰소리를 쳐도 연두는 분이 안 풀렸는지 이번에는 발까지 구르며 소리를 지른다.
“왜 거짓말해! 왜! 왜! 왜!”
아이고, 대체 어떻게 들으면 점퍼를 양말로 들을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는 연두를 달래며 단오는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네가 점퍼를 두고 가서 챙겨가라고 한 것이니 네가 화낼 일이 아니라 설명했다. 연두는 내 말을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모르겠다는 것인지 연신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는 말뿐이다. 더 얘기하고 싶어도 연두의 어머니께서 밖에서 기다리시니 계속 말을 할 수도 없다. 티슈로 아이의 눈물을 닦고 앞으로 그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울고 소리 지르던 녀석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번에는 별일 아닌 일에 방긋 방긋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집에 가겠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으며 인사하고 집에 가는 연두 때문에 나와 단오만 얼이 빠졌다.
연두가 먼저 어머님과 집에 가고 단오와 함께 후문 쪽으로 같이 걸어갔다. 안 그래도 아이한테 소리를 질러 속상한 마음에 나도 풀이 죽어 걷는데 단오의 표정이 굳었다.
아뿔싸! 정작 내가 소리 지른 상대는 아무 일 없이 웃으며 집에 갔는데 내가 소리를 지른 것을 본 단오는 충격이 컸나 보다. 미안한 마음에 단오에게 선생님이 큰소리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단오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다.
“선생님, 연두는 왜 그래요? 왜 맨날 울고 징징거려요?”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까? 연두는 학습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아니다. 자기의 마음을 어찌할지 모르는 아이, 그저 기초 학력 강사인 나로서는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 나는 단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단오야,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스무 살이면서 서른 살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지금 스무 살인데 아직 열 살 밖에 자라지 못한 사람도 있어. 연두는 지금 여덟 살이지만 마음속의 연두는 아직 어린가 봐. 그래서 자꾸 울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선생님이랑 단오가 같이 연두가 여덟 살의 마음까지 자랄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자. 알았지?”
단오는 내 눈을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한다.
단오의 손을 붙잡고 돌아가는 길, 내가 지른 소리의 무게만큼 가는 길이 더디다. 정말 힘든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