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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빵 Oct 22. 2024

비자발적 캠린이의 캠핑 입문기

제가요? 캠핑을요?      



치열한 2년간의 연애를 끝내고 결혼에 골인한 커플. 내 눈앞에는 이 사람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이 구만리 펼쳐져 있었다. 연애할 때 싸움이란 걸 거의 안 하고 결혼해서일까. 장기적금 들어놓았던 것을 한 번에 탄 목돈처럼 싸우게 되었다. ‘이 사람과는 더 이상 살 수가 없겠구나. 언제 헤어짐을 이야기할까.’ 타이밍을 보던 시기였다.     


“캠핑 갈래?” 불쑥 나에게 던진 한마디였다. 이혼하려는데 무슨 캠핑이야, 캠핑은. 

남편과의 사이는 끝이라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던 시기에 캠핑 가자는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아이가 없었으면 캠핑이고 나발이고 때려치우자고 했을 텐데 우리에겐 갓 두 돌 지난 아이가 있었다. 아이 앞에서는 무표정으로나마 부부 행색을 하려고 노력했던 우리 부부는 아이를 위해서 캠핑을 가기로 했다. 남편의 얼굴은 보지 않고 아이의 얼굴만 보고 떠났다.     



그렇게 도착한 첫 캠핑지는 여수. 

연애, 결혼생활을 통틀어서 경상도를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 (지박령이 씐 건지 남편은 경상도를 나가면 죽는 줄 아는 경상도 남자였다) 여수를 가자고?      



여수 밤바다 노래 불렀던 나를 위해 여수로 캠핑지를 정했다던 남편은 캄캄한 밤에 캠핑지에서 바다가 안 보일 거란 생각은 못했나 보다. 캠핑의 꽃이라는 불멍을 하기 위해 불을 지폈다가 두 돌배기 아이는 옷을 태웠고 캠핑사이트 바로 옆 높은 비탈길은 아이가 뛰다가 딱 빠지기 좋은 구조여서 아이 뒷덜미를 항시 잡고 있어야 했다. 텐트에서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배겨서 아팠고 세차게 부는 바닷바람에 세수를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캠핑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삐걱거리지만 처음보다는 좀 나아진 캠핑을 다니고 있다. 아이도 제법 자라서 제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고 아이만 바라보았던 우리 부부는 차츰 서로의 눈을 보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캠핑이란 단어는 없을 줄 알았다. 여행 가면 항상 호텔을 가야 하는 호텔형 인간인 남편과 캠핑은 어렸을 때나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캠핑은 부지런하고 사이좋은 커플들이나 가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해보니 아니었어.     



부지런하지 않아도, 사이가 좋지 않아도, 캠핑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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