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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Apr 24. 2021

#06 어찌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마리아 칼라스 -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1958년 실황)

여기, 곤경에 빠진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토스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1800년 로마. 오페라 가수 토스카의 연인 카라바도시는 전제군주에 충성하는 경찰청장 스카르피아에 항거하다 체포된다. 토스카에게 음흉한 마음을 품은 스카르피아는 자신을 허락하면 카라바도시를 처형하지 않겠다는 (거짓) 약속으로 토스카를 압박한다. 이것이 지금 토스카가 처한 절망적 상황이다. 사랑을 지키려면 사랑을 저버려야 하는 절망 말이다.


이 자극적인 드라마는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2막의 한 장면이다.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혹한 상황에 처한 우리의 토스카는 신을 향해 절규한다. 그 고통의 아리아가 바로 Vissi d'arte.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이다.


나는 예술로 살았고, 사랑으로 살았네.

살아있는 영혼에 해를 가한 적도 없어!

어떤 역경을 마주해도

불쌍한 이들을 돕고자 노력했는데. (...)

주여, 왜, 대체 왜,

제게 이런 고통의 시간으로 되갚으시나요?


코로나의 시대가 오기 직전 여름, 나는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 '토스카'를 관람했다. 1900년, 이 오페라가 초연된 곳이다. 나는 많은 노래를 레코딩과 라디오를 통해 배웠지만, 직접 보고 듣는 감동은 비할 수 없이 강렬하다. 500배 쯤 빠르게 다가와 500배 쯤 선명한 느낌을 전한다. 특히 오페라가 그렇다. 이야기가 있는데다 근거리에서 연기를 마주하게 되는 극이라서 그런가 싶다. '토스카'를 보기 한 해 전에는 같은 극장에서 푸치니 '라 보엠'을 봤다.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좋아서, 같이 봤던 엄마, 이모와 나 모두는 미미가 죽을 때 결국 약간의 눈물을 흘렸다. 언어를 뛰어넘는 감정의 교류였다. 이미 스포일 된 유명한 결말에도 눈물을 흘리게 하는 힘, 노래와 연기가 결합했을 때 일어나는 마법이다.


다시 2019년 여름밤 로마로 돌아가자. 이번에도 훌륭한 (노래 뿐 아니라) 연기에 힘입어, 나는 처음으로 이 아리아를 맥락 속에서 보는 데 성공했다. CD로 듣던 마리아 칼라스가 왜 그렇게 비극적으로 울부짖는지 마침내 이해에 이른 것이다. 서울에서 그날의 감동을 되살리고 싶었던 어느 날, 나는 유튜브에서 이 공연 영상을 찾게 된다. 그리고 완벽한 Vissi d'arte, 완벽한 토스카를 만나고 만다. 유튜브 만세!


https://youtu.be/pAqZ6TgW8AA

마리아 칼라스, 1958년 12월 19일, 파리 오페라 극장 실황


1958년 파리 오페라 극장. 막 서른 다섯 살이 되었을 마리아 칼라스는 여기서 비통하고 괴로운 토스카를 연기한다. 가녀린 목소리로 (워낙 성량이 풍부하고 선이 굵은 칼라스 특유의 목소리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자기에게 닥친 시련에 대해 신에게 묻는다.


노래와 선행으로 착실하게 신의 영광을 밝히고자 한 제게 왜 이러시나요?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고 누구를 원망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 모든 인간이 던질 법한 공허한 질문이다. 아니면 감히 항의도 할 수 없는 신이라는 대상을 향한 애원이랄까? 영상 속 칼라스는 토스카(들)의 고통을 그대로 받아 안는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저항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의 애처롭고 허망한 손짓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가녀린 손을 기도하듯 맞잡고 절정의 대사를 노래할 때, 그녀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나는 동시에, 칼라스의 육체가 그 자신의 노래 소리 때문에 산산이 찢어져버리는 건 아닐까 잠시 걱정한다. 마침내 노래가 끝나고 토스카가 운명 앞에 무릎 꿇는 순간, 파리 오페라 극장의 관중들은 나를 대신해 우뢰와 같은 박수와 끝없는 브라보로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아, 유튜브 만세.


이 이야기는 주인공 셋이 다 죽어버리는 그랜드 비극으로 끝난다. 그래서인지 초연 당시에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싸구려"라는 악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토스카'에서 영화 '타인의 삶'의 여주인공을 떠올리곤 한다. 또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할 법한 (가상의) 영화나 드라마를 연상하게 된다. 토스카가 미모와 재능 때문에 희생 당하는 여자의 전형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물론 토스카는 순순히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흠. 어떤 면에서 운명에 대적하는, 놀라울 정도로 강한 여성이다.


한편, 오페라 '토스카'는 로마의 실제 장소들을 배경으로 해서 로마 광인 나에게 아련한 그리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1막의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 2막의 파르네세 궁전, 3막의 산탄젤로. 다음에 오면 성당에도 궁전에도 가보겠다 마음 먹었는데, 이렇게 발이 묶이니 그리움이 커진다. 처형을 앞둔 카라바도시가 밤의 산탄젤로에서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을 들으면 이 그리움이 좀 달래지려나.




참고자료

푸치니 '토스카', 월간 객석 2019년 7월호 :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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